독일의 반발, "합성연료 허용 없이는 EU 내연기관 금지에 기권"
EU 이사회, 내연기관 퇴출 법안 두고 오는 7일 표결 예정
유럽연합(EU)이 오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지난 14일 통과시킨 가운데, 독일이 합성연료(e-fuel)로 운영되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허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최종안에 따르면, 자동차 제조업체는 2030년까지 새로 나오는 승용차 등의 탄소 배출량을 2021년 대비 50% 이상 줄여야 하고, 2035년부터는 내연기관차를 시장에서 퇴출하고 전기차만 생산할 수 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독일 교통부 볼커 위싱(Volker Wissing) 장관은 2035년 이후 합성연료를 사용한 신규 내연기관 자동차에 대한 허가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오는 7일에 예정된 EU 이사회 최종 투표에서 기권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EU 내에서 내연기관 자동차를 금지하는 방안은 내부 심의를 거친 사항이라 통과될 공산이 크다고 외신은 전망하고 있다.
법안에는 오는 2035년까지 신규 차량의 탄소 배출을 ‘제로화’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통과되면 사실상 내연기관 자동차의 신규 등록은 금지된다.
독일 볼커 위싱 장관은 “EU의 그린딜 책임자인 프랜스 티머만스(Frans Timmermans)에게 대화를 제의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독일은 수개월 동안 합성연료 자동차에 대한 면제를 요구해왔다”고 밝혔다. 또한 “독일이 찬성표를 던지려면 합성연료 자동차에 대한 구속력 있는 답변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독일이 주장하는 '이퓨얼'(e-Fuel)은 재생합성연료다. 물을 전기분해 해서 얻은 그린수소(H₂)와 이산화탄소(CO₂)로 제조한 액체 연료인데, 탄소 발생량을 줄이지는 못해도 더 늘리지는 않는다. 연소 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되지만, 탄소를 다시 포집해 사용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 탄소 순배출이 제로가 된다.
합성연료는 내연기관 연료로 쓰일 수 있고, 일반적인 온도와 압력에서 쉽게 보관·수송이 가능해 전기차 시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브릿지 역할이 기대된다. 이 때문에 내연기관에 경쟁력이 있는 독일과 일본을 중심으로 합성연료 연구가 활발하다.
'내연기관 퇴출 찬반' 두고 독일서도 입장 엇갈려
한편, 독일뿐 아니라 이탈리아, 프랑스 정부도 공동 전선을 구축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일(현지시각) “독일과 이탈리아가 유럽의회의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법안에 대한 공식 승인을 저지하는 데 힘을 합친다”고 밝혔다.
이들 회원국은 “EU가 현실적인 제약을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급격한 목표치를 설정했다”고 반발한다. 독일 정부는 기존 내연기관 엔진에 합성연료를 사용하면 퇴출을 면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탈리아 환경부는 “전기차가 넷제로를 위한 유일한 길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는 “이번 법안은 중국 자동차 회사에 선물을 안겨주는 꼴이자 유럽의 자살행위"라고 비판했다.
독일 녹색당도 비슷한 입장이다. 독일 녹색당의 마이클 블로스(Michael Bloss) 의원은 “독일뿐 아니라 폴란드, 불가리아, 이탈리아도 내연기관의 종말을 원치 않는다”며 “독일의 찬성이 없으면 법안 채택도 위태로울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친기업 성향의 독일 자유민주당은 합성연료를 통해 내연기관을 유지하는 방안을 내세우는 가운데, 독일 내에서도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의 기후 관련 비영리단체인 교통과환경(Transport&Environment)의 독일 지부장인 세바스찬 보크(Sebastian Bock)는 “위싱 장관이 마지막 순간까지 내연기관 폐지를 위협하는 모습은 독일 자유민주당이 독일을 위험에 빠뜨리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 환경부 장관도 내연기관 폐지에 찬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독일 환경부 슈테피 렘케(Steffi Lemke) 장관은 독일 일간지 수드도이체차이퉁에 “독일은 유럽 내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한다”며 “오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를 금지한다는 EU의 약속에 함께해야 한다”고 지난 1일(현지시각) 밝혔다. 렘케 장관은 “이 법안이 오랜 협상을 거쳐 조정 및 합의된 사항”이라며 “독일은 해당 규제를 이행하고 마지막 순간에 물러서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독일의 자동차 기업은 EU의 내연기관 퇴출 목표에 따른 사업 방향을 내놨다. 폭스바겐(Volkswagen)은 오는 2033년부터 유럽 시장에는 EV만 생산하겠다고 밝혔고, BMW도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가 금지되는 시점을 소비자들에게 밝히기도 했다.
EU 교통국의 아디나 벌린(Adina Valean) 국장은 EU 전문매체인 유랙티브(Euractive)에 “독일의 우려에 여러 사람이 공유하고 있다”며 “투표를 마치더라도 토론의 과정은 계속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