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채권시장 그린워싱 단속한다... 국제 표준 채택 야망도

2023-03-07     박지영 editor

유럽연합(EU)이 채권시장의 그린워싱을 제재하기 위한 규정을 신설했다. EU가 채권시장 그린워싱 규제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EU는 이번 규정이 국제 녹색채권 시장의 표준이 되길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언론 유랙티브와 IFR 등에 따르면 지난 1일 EU이사회와 집행위원회, EU의회 3차 협의 결과 ‘EU 녹색채권(EuGB)’ 규정을 신설하고 관련 표준을 제정하는 방안에 잠정 합의했다. 이들은 “특히 과도기에서, 발행인은 그린워싱에 대한 잠재적 고발로 인해 평판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며 이번 규정의 취지를 설명했다. 

EU는 채권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 중 85%를 EU 택소노미에 부합한 활동에 투자해야 ‘녹색채권’이라는 명칭을 쓸 수 있도록 했다. 채권 발행사들은 녹색채권을 통해 발행한 자금이 발행사가 추진하는 기후전환 활동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나머지 15% 자금은 EU 택소노미 적용에서 자유롭다. 다만 환경 목표에 기여하고 목표에 심각한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DNSH 원칙은 지켜야 한다. 

실제적인 또는 잠재적인 이해 상충을 식별, 관리 및 공개하기 위한 외부 감독에 대한 합의도 이뤄졌다. 각 회원국 관할 당국에서 채권 발행인이 새 표준에 따른 의무를 준수하는지 감독·관리한다. 

이번에 타결된 잠정 합의안이 EU 이사회와 유럽의회에서 각각 승인되면 시행이 확정되며, 시행일로부터 12개월 뒤 시장에 본격 적용될 예정이다.

유럽연합(EU)의 폴 탕(Paul Tang) 의원은 "EU는 녹색채권에 대한 세계 최초의 규제를 채택해 채권시장을 녹색화하기 위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투명성 향상, EU 택소노미로 흐르는 자금, 독립적인 외부 검토자, 녹색 채권이 회사의 전환 계획에 기여하는 방식에 대한 명확성 등이 오늘 합의의 진전된 내용"이라며 "이 규제는 녹색채권 시장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것이며, 규정을 지키지 않는 녹색 채권에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일부 투자자는 녹색 채권 시장의 축소를 우려했다. EU 택소노미의 불명확성 때문이다. 택소노미에는 원자력과 천연가스가 포함되기 때문에 녹색채권 시장의 신용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택소노미의 복잡성도 문제다. 영국 로펌 링크레이터스(Linklaters)의 지속가능채권 부문 파트너인 데이비드 발레지어는 “EU 택소노미는 발행자가 현재 형태로 준수하기 어려운 강압적인 규정(straitjacket)”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EU의 지속 가능한 금융 플랫폼(Platform on Sustainable Finance)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경제 활동의 3% 미만이 분류 체계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발레지어는 “모든 상장기업과 대기업이 택소노미에 따른 활동 내역을 공개하기 시작하는 2026년부터는 EU의 녹색채권 마크를 획득하기 더 쉬워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EU는 자국의 녹색채권 규정이 국제 표준으로 채택되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 녹색채권 시장에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는 기후채권이니셔티브(CBI)의 션 키드니 대표는 “새로운 규정은 환영하지만, EU 택소노미가 친환경에 대한 분류를 명확히 하기 전에는 녹색채권 발행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키드니 대표는 “우리는 무엇을 하든 녹색채권의 성공을 목표로 해야 한다”며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녹색채권 기준을 만든 ICMA는 “임시 합의를 환영하지만, EU 택소노미의 유용성 문제는 전세계적인 채택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EU 택소노미는 유럽 중심적이고, 협소하며 현재 목적에 적합하지 않다기 때문에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주류가 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ICMA의 니콜라스 파프 지속가능채권 담당자는 “EU 택소노미는 모든 영역을 포괄하지 않고, 가용성 및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점이 지속되고 있다”며 “택소노미는 현재 상징적 가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평했다. 

또 “외부 감독자의 역할, 그린워싱 완화 조치에 대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며 “녹색채권이 기지개를 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른 관할권에서는 이미 녹색채권 기준이 명확해지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은 작년에 녹색채권에 대한 자발적 기준을 발표했으며, 녹색채권으로 발행된 자금은 자체 또는 해외 분류 체계에서 녹색으로 정의된 프로젝트에 사용되어야 한다고 규정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