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세계 IT부품, 러시아 전쟁 무기에 쓰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 양상으로 흘러가는 가운데 인텔, AMD, 모토롤라 등 서방세계의 주요 IT업체 부품이 러시아 무기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7일 인권단체 국제인권파트너십(IPHR)과 우크라이나의 비영리기관 독립반부패위원회(NAKO)는 보고서를 발간해 러시아 무기 체계에 활용된 서방세계의 IT부품을 상세 분석하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에도 미국과 유럽의 주요 IT부품들이 러시아에 지속적으로 공급된 것으로 밝혀져 “서방 기업들이 전쟁범죄에 기여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방세계 IT부품, 제3국 판매업체 통해 러시아에 공급돼
러시아 전쟁이 발발한 후, 다수의 싱크탱크는 러시아산 무기의 서방부품 의존도에 대해 분석하는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일례로 영국의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의 주요 무기체계 27개에 약450여개의 서방 부품이 사용된다고 분석했다. 실제 지난 11월, 우크라이나 비상사태부가 러시아에서 사용한 미사일, 드론 등의 잔해를 수집한 결과, 다수의 서방IT기업 부품을 발견하면서 러시아의 서방부품 의존이 사실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번 보고서를 통해 서방 IT제품의 러시아 수출 정보가 드러나면서 글로벌IT업계의 전쟁범죄 연루 의혹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서방 세계의 IT제품이 어떻게 러시아에 공급되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군수산업의 공급망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군수품의 경우, 완성품의 형태가 아니라 부품 단위로 판매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제작사가 고객에게 제품을 직접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군수품 판매 대리업체나 제3국의 공급업체를 거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판매업체가 물품을 대량으로 사들인 후 장기간에 걸쳐 재고를 판매하기 때문에, 제작사가 제품 최종사용자를 파악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군수분야에 활용되는 IT부품의 경우 해킹, 대국민감시, 살상 등 비인도적 목적으로 오남용 될 여지가 크다. 때문에 글로벌 네트워크 이니셔티브(Global Network Initiative)에 따르면, IT산업의 인권침해 중 약 70%는 제품 사용 단계에서 발생한다.
실제, 미국의 IT업체 트림블(Trimble)은 지난 6월 러시아로의 직접 수출을 전면 중단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전자제품 유통업체 프로소프트(Prosoft)가 제3국을 통해 이들의 부품을구매한 후, 러시아 군부 측에 부품을 공급하는 것이 밝혀졌다. 보고서는 터키, 홍콩, 인도, 대만 등 다양한 국가를 통해 서방세계의 IT부품이 러시아로 공급된다고 분석했다.
서방세계의 IT부품 사용이 확인된 무기로는 다연장로켓포 토네이도-S, 칼리브르(Kalibr) 장거리 미사일, Kh-101 공급용 미사일 등이 있으며, 여기에는 메모리칩, 네비게이션 시스템, 통신 케이블 등 다양한 부품이 포함되어 있다.
러시아 경제제재 우회할 수 있는 방법 존재…
IT기업들의 인권실사 및 최종사용자 파악 필수적
IPHR은 기업의 계약서나 거래기록을 입수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서방IT기업이 러시아 경제재재 조치를 위반했는지에 대한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명확한 것은 러시아가 경제제재 조치에 참여하지 않은 제3국을 통해 제품을 수입할 경우, 경제제재를 우회해 원하는 전쟁물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보고서는 기업들이 다운스트림(Downstream∙물품 제조에서부터 판매까지) 공급망의 전쟁범죄 기여 리스크를 인지하고 이를 경감하기 위한 심층 인권실사가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제품의 최종사용자를 파악하는 것만으로 인권 리스크를 눈에 띄게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공급망 내 유통업체 및 판매대리점과의 협업을 통해 최종소비자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