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TalkTalk】실리콘밸리은행 파산과 ESG 리스크

2023-03-20     박란희 chief editor

미국 16대 은행인 실리콘밸리 은행(Silicon Valley Bank, 이하 SVB)의 파산에 관해 미디어에선 각종 분석과 해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기고한 안티ESG의 선봉자인 비벡 라마스와미의 주장입니다. 
“SVB의 진정한 ‘도덕적 해이’는 바이든 행정부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다. 2022년 SVB는 ‘더 건강한 지구를 돕기 위한 지속가능한 금융과 탄소중립 사업’에 50억달러(약 6조5000억원)를 공개 약속했다. 2022년 SVB의 ESG보고서는 ‘지속가능한 금융그룹’ 및 ‘온실가스 감축 이니셔티브를 운영하는 기후그룹’을 포함하고 있다. SVB는 기본적인 리스크 관리 관행을 적용하는 대신, 느슨한 리스크 관리를 위해 로비에 의존했다.” 
그는 SVB 파산의 원인을 ESG로 돌리고 있습니다. 리스크 관리 대신 ESG에 집중했다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지만, 파이낸셜타임즈는 이에 대해 “이러한 얄팍한 견해는 보다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는 ESG 문제를 모호하게 할 뿐”이라고 일축합니다. 저 또한 이 견해에 동의합니다. 한국도 마찬가지듯, 양극단의 선명한 정치성을 띤 주장의 경우 논리적인 근거는 빈약한 대신 포퓰리즘을 먹잇감 삼아 결국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때로는 이것이 경제적 이득으로 이어집니다)을 위해 작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 로컬은행이었다면 파산 안했다?"

뉴욕타임즈가 SVB의 파산에 대해 분석한 기사 중에는 두 가지가 눈에 띄었습니다. 하나는 SVB의 붕괴로 기후테크 산업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점입니다. 데이터제공업체 Holon IQ에 따르면, 지난해 기후테크 창업에 280억달러(약 36조원)이 투자되었는데 이는 전년 대비 급격히 증가한 규모라고 합니다. SVB와 거래중이었던 기후테크 스타트업은 태양광, 수소, 전기차 배터리 등 1550곳 이상으로 파악됐습니다. 특히 저소득층 주거지역에 주로 공급되는 소규모 지역사회 태양광 발전사업에 대한 융자 거래의 62%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5년차 탄소제거 스타트업인 참인더스트리얼 CEO는 뉴욕타임즈에 “우리는 지난주 은행에서 대부분의 현금을 인출했다”고 밝혔지만, 일부 스타트업은 발목이 잡혔습니다. 대기 중 탄소 제거 장치를 만드는 '캡처6'의 이선 코언-콜 CEO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제공한 보험금 덕분에 직원들 월급 문제는 해결했지만, 돈이 계속 묶이면 공급업체나 협력사와 관계가 틀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위기에 놓인 스타트업들은 연구실 운영과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걱정하고 있습니다. 
기후 기업들의 소규모 대출을 지원하는 기업인 ‘인듀어링 플래닛(Enduring Planet)’의 드미트리 게르센손 CEO는 “24시간 만에 거의 100건 이상의 지원 신청을 받았으며, 이번 사태로 영향을 받는 기업들에게 단기 자본을 제공할 펀드를 만들기 위해 다른 투자자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파산한 실리콘밸리 은행의 홈페이지

이번 사태의 원인을 3가지로 꼽은 뉴욕타임즈 기사 중 흥미로웠던 것은 “대부분의 일반적인 로컬은행들이었다면, 이번 SVB와 같은 사태가 벌어져도 쉽게 파산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엇습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들은 대부분 디지털과 블록체인에 익숙하며, 위험과 변동성에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인터넷에서 하루 종일 정보를 교환하는 이들입니다.

이 때문에 기술 분야의 몇몇 사람들이 SVB의 지불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자 슬랙 채널(기업용 사내 커뮤니케이션 채널)과 트위터 피드에는 ‘끔찍한 경고’가 불붙기 시작했고, 당황한 이들이 순식간에 뱅크런 사태를 갖고왔다는 것입니다.

보통 은행이었다면 유동성 부족에 처해도, 자산을 매각하거나 단기 자본을 조달하면서 위기를 해결할 동안 일반 고객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하거나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일각에선 이번 사태로 인해 “벤처투자자들이 무시해왔던 은행 규제 당국인 F.D.I.C(미연방예금보험공사)가 아니었으면, 모든 돈은 그냥 사라졌을 수도 있으며, 이러한 규제가 개입한 것은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반대주장도 있지요. 은행의 중앙집중화로 인해 불필요한 유동성 이슈가 더 큰 문제가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리스크 대응은 어땠을까?

파이낸셜타임즈의 분석은 좀 달랐습니다. 지배구조의 문제로 보았습니다. FT는 “SVB 사태는 ESG의 G(지배구조)가 없는 것이 실패의 원인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ESG의 G가 중요한 이유를 보여준다”고 설명합니다. 
“SVB은행에는 2022년 동안 최고 리스크책임자(CRO)가 없었다”고 합니다. 지난해 1월 3일 최고 리스크 책임자를 새롭게 발표했지만, 그해 4월 조용히 물러났습니다. 게다가 그레고리 베커(Gregory Becker) CEO는 지난달 꽤 타이밍 좋게 자사 주식을 매각했습니다. 베커는 2월 27일 이 은행 주식 360만달러(약 46억원)를 2억87달러(약 2500억원)에 매각했습니다. 회사 내부에서는 뭔가 문제가 있었음을 알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추후 은행감독 당국의 정밀 조사를 가져오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FT는 “SVB가 사라짐으로써, 클린테크 기업이 탈탄소 로드맵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 사라졌고 SVB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곧 알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이번 사태에서 ESG 리스크의 미래를 미리 본 듯했습니다. 기업 리스크의 형태와 구조, 패턴이 달라질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리스크의 스노우볼링(snowballing)화’라고 할까요. 
예를 들어, 현대차에서 로이터 아동노동 사태의 전개과정을 한번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2022.07.22    로이터 통신, 현대차 자회사 스마트 앨라배마LLC의 아동노동 착취 의혹 제기
2022.08.22    미 노동부, 현대차 협력사 SL앨라배마의 아동노동법 위반 소송 제기
2022.10.22    미 연방법원, 현대차 협력사 SL앨라배마(2021.11.29)의 아동노동법 위반 처벌 판결
2022.10.24    전미자동차노조(UAW), 바이든 행정부에 현대차가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 보조금 및 대출 지원 혜택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촉구
2023.02.11    민주당 댄 길디(미시간) 의원 등 미 하원의원 33명, 미 노동부에 현대차의 아동노동 근절을 위한 행동을 촉구하는 공동서한 서명
2023.02.23    현대차, 아동노동법 위반 혐의를 받은 2개의 자회사를 모두 매각
2023.02.28    백악관, 불법 아동노동 근절 전담팀 설치, 현대차 아동노동 문제 거론

현대차가 아동노동법 위반 혐의를 받은 2개의 자회사를 모두 매각하는데, 사건 발생 이후 무려 8개월 가량 걸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글로벌 사업장과 본사 사이의 리스크 민감도 차이, 소셜미디어와 NGO, 언론을 포함한 어드보커시(문제제기) 세력의 다변화와 동시다발적 전개, 본사의 리스크 담당 거버넌스 시스템의 부실 등이 원인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현대차에서는 기관투자자들이 잇따라 정의선 회장에게 ‘아동노동 문제 해결하라’는 레터를 보내고서야 이에 관한 대응 요구가 톱다운으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재 시스템으로는 SNS 시대의 리스크를 잘 대처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지금은 리스크가 비정형화돼있고, 가속화 속도를 예측할 수 없으며, 한번 터질 경우 때로 불가역적(회복 불가능하거나 회복이 매우 어려움)입니다. SVB가 이렇게 쉽게 파산할 줄 누가 알았을까요? 
지금의 모든 기업조직과 기업 바깥의 생태계는 리스크가 터지면 수습하는 것을 중심으로 구조화되어있고, KPI 또한 이렇게 맞춰져있습니다. 언론사 선배들 중에 기업의 커뮤니케이션팀으로 이직한 이들이 많은데,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큰 사건이 터져야 비로소 조직에서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다”고요.  
이러한 구조로는 미래의 리스크 패턴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리스크 예측 시스템 구축과 모니터링, 이해관계자와의 상시적인 커뮤니케이션 등 많은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 한 주도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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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란희 대표 &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