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ESG ⑪】 이사회 등기임원 직무능력에 ESG 추가... 일본기업이 변하고 있다

시세이도, 기린홀딩스 등 이사회 직무매트릭스에 처음 ESG 항목 추가 ESG투자 1년 새 45% 늘어, 이사회 다양성 확보위해 여성이사 20% 증가

2020-10-14     박지영 junior editor

일본 상장기업의 이사회 흐름을 알려주는 최근 기사가 화제다. 

일본경제신문은 5일, "이사회 소속 등기임원들의 직무별 전문성을 매트릭스로 표시해서 보여주고, 이사회 내 부족한 면이 어느쪽인지 파악하도록 하고 있다"며 "올해 처음으로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항목을 매트릭스에 넣은 기업도 생겨났다"고 밝혔다.  

일본의 화장품 기업 시세이도는 올해 주주총회 소집에서 등기임원(이사 및 감사)의 기술 매트릭스를 소개했다. 이사회의 다양성과 중요한 직무기술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등기이사 8명 중 3명은 여성이다. 사외이사인 이시쿠라 요코, 오오이시 카노코 씨는 '글로벌 경영ㆍ사업전략'과 'ESG' 두 곳에 다이아몬드가 표시돼 있다. 글로벌 경영, 법무·위기관리, 재무·회계  등 기존 직무능력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추가했다. 

시세이도의 등기임원 역량 평가 매트릭스/일본경제신문

맥주 제조업체로 유명한 기린홀딩스도 8개 항목에 걸쳐 소개한 임원 직무능력에 올 들어 처음으로 ESG를 추가했다. 8명의 등기임원 중 유일한 여성인 츠보이 준코 씨는 9개 항목 중에서 'ESG 지속가능성(Sustainbility)'과 '브랜드 전략ㆍ마케팅 영업'에 전문성이 있는 것으로 표기돼있다. 

글로벌 기업의 경우 임원의 직무전문성에 관한 표기를 하는 흐름에 이어 ESG 전문가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일본 기업 또한 이 흐름에 따라가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기린홀딩스의 등기임원 평가 항목/일본경제신문

순서대로 ▲기업경영  ▲ESG Sustainability ▲재무, 회계  ▲인사, 노무, 인재개발 ▲법무, 리스크관리 ▲SCM
▲브랜드 전략, 마케팅 영업 ▲해외사업  ▲R&D 신규사업, 헬스 사이언스

 

일본 기업들이 변하고 있다

유리천장 깨고 다양성 고려하는 이사회

일본은 아시아 국가 중 ESG 투자에 가장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기업에게 ESG 인식은 생소한 영역이었다. 그러나 흐름이 바뀌고 있다. 일본지속가능한투자포럼(JSIF)에 따르면, 작년 3월 말 기준 일본 ESG 투자 총액은 336조엔(약3경6590조원). 1년 새 절반에 가까운 45%가 늘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ESG 자금 유입을 의식해 일본 기업들도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ESG 관련 투자 규모/일본지속가능성포럼

대표적으로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이사가 증가하고 있다. 올해 7월 도쿄 증권 거래소 1부 상장기업 2170개를 대상으로 남여 임원 성비를 조사한 결과 여성 이사(사내·사외)는 1354명으로 7.1%를 차지했다. 지난해 대비 20% 증가했다. 국내의 경우 작년 기준 매출액 500대 기업 여성임원은 3.6%(518명)로, 유리천장이 견고하다고 평가되는 일본에 비해서도 저조하다. 

일본경제신문은 “다양성에 대한 주주나 투자자의 관심이 늘고 있다”며 “남성 중심인 이사회에서는 기업에게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기업의 인식이 증가하며 여성·인종·역량 관점에서 다양성의 확보를 중시하는 경향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주총에서 "임원에 여성이 한명도 없다. 임원과 관리직에 여성 인재 기용에 대한 계획을 밝혀라"(서비스업),"장기적으로 여성 임원 비율이 50%까지 증가하길 바란다"(전자기기업), "이사진은 일본인 남자 뿐이다. 여성이나 외국인 등용 등 다양성 확보에 대해서 회사는 어떻게 생각하나"(증권업)와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양성 확보는 대외 평가로도 이어져 기업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는 효과로까지 이어진다. 이사 8명 가운데 여성이사가 3명인 시세이도는 “여성 이사 기용과 등기임원의 직무능력 평가는 성평등 실현, 나이, 국적 등 다양성을 폭넓게 고려하기 위한 기업의 책무”라고 밝혔다. 시세이도는 올해 처음 일본경제신문에서 조사한 ESG 브랜드 조사에서 8위를 차지한 바 있다. 

 

단기 실적이 아닌 '장기 계획' 발표

살아남기 위한 기업의 지속가능성 증명

ES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10년 장기 계획’을 발표하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기업의 안정성을 고려하려는 주주들의 움직임이 거세지자,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지속가능성’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도요타 자동차의 Environmental Challenge 2050/도요타 홈페이지 갈무리

도요타 자동차는 사람과 자동차와 자연이 공생하는 2050년 비전을 내걸고 전기 자동차 보급 확대로 탄소 배출을 삭감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반도체 등을 생산하는 히타치 제작소(Hitachi) 또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늘리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명 제약회사인 시오노기 제약은 5년 중기 계획을 비롯, 10년 장기 계획을 내놓으면서 자사의 위험과 경영 전략을 소개하기도 했다. 시오노기 제약은 “제약 업계의 특성상 제품의 특허가 만료되면 로열티 수입이 급감한다”며 “지속적인 수익 모델을 만드는 데는 신약 개발 의존에서 탈피하여 여러가지 기업과 제휴하면서 예방 및 진단 등 다양한 접근으로 고객에게 정보나 제품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테시로기 이사오 사장은 “앞으로 10년은 사회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기”라며 “지속적으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음을 보여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안정적인 장기 투자자를 유치하는 게 중요한 과제가 됐다는 설명이다. 

부동산 업계에서도 리스크를 언급한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 하다. 미츠비시 토지와 휴릭(Hulic)은 올해 1월 향후 10년의 장기 경영 계획을 발표하며 “지진 등 잦아진 자연 재해나 저출산 고령화 등 인구 감소가 리스크가 될 것”이라며 환경 오염이 덜한 부동산 개발을 목표로 삼겠다고 밝혔다. 

BNP파리바 증권 나카코 마나 글로벌 마켓 총괄본부 부회장은 “기업들은 미래에 대비해 ESG 관점에서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며 "위험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며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ESG 정보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상장기업 늘어나 

ESG 정보를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일본 기업도 증가하고 있다. 일본경제신문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도쿄 증권 거래소에 상장된 1470개사 중 220개 기업(15%)이 유가증권 보고서에 ESG와 SDGs(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 정보를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3년 전보다 13%p 늘어난 수치다. 

부동산 업종은 새로운 기후변화와 환경에 대한 위협(미츠이 부동산)을, 식품 업종에선 탄소세로 인한 경제리스크(아지노모도)와 글로벌 공급망에서 아동·강제노동(후지 제유)을, 금융권에선 지속가능성 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