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오일에 살인죄 적용해야’ 주장 담은 논문에 이목, 현실성은 있을까?

법률계 ‘이론적으로 통찰력 있는 주장’…‘실현 가능성에는 의문’

2023-03-24     양윤혁 editor
'기후 살인: 기후 관련 사망에 대해 빅오일을 고발한다'는 제목의 논문이 SSRN에 발표됐다./ SSRN

사전출판논문 공유집인 ‘SSRN’에 ‘기후 살인: 기후 관련 사망에 대해 빅오일을 고발한다’는 제목의 논문이 지난 1월에 발표됐다. 논문은 미국의 석유 기업이 수많은 인명을 빼앗았다며 법적 고발을 통해 대중에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버스 로스쿨의 환경 관련 법률평론지인 HELR(Harvard Environmental Law Review)까지 해당 논문을 출판하기로 결정하면서 가디언(The Guardian) 등 외신도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논문에 따르면 석유 기업들은 투자자 기만 및 공갈로 최근 각종 법적 조사를 받거나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데, 추가적으로 이들을 살인죄로 고발하는 방안도 있다고 제시했다. 또한 화석연료 기업들이 단순히 대중을 기만할 뿐 아니라 실제로 엄청나게 많은 목숨을 빼앗고 있다며 고발을 통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외 비영리단체인 퍼블릭 시티즌(Public Citizen)의 기후 프로그램 이사이자 논문의 공동 저자인 데이비드 아쿠쉬(David Arkush)는 ‘석유기업이 인류에 끼친 피해는 지금껏 인류 역사에 유례없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논문의 공동저자인 데이비드 아쿠쉬가 속한 환경 관련 비영리단체인 퍼블릭 시티즌./ Public Citizen

석유기업에서 후 관련 연구와 규제를 방해하는 행위가 인류에 해를 끼치는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아쿠쉬의 공동 저자이자 조지워싱턴대학의 법학 교수인 도날드 브라만(Donald Braman)은 “온전한 정신 상태에서 피해를 끼치는 행위는 범죄다”며 “게다가 그 행위로 누군가가 목숨을 잃는다면 살인으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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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만 교수는 현재 논의되는 기만이나 공갈 혐의보다 살인 혐의의 처벌 수위가 강한 만큼 석유기업에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살인 혐의가 적용되면 벌금을 내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기업의 운영 방식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법상 살인 혐의는 ‘과실치사’부터 ‘계획적인 살인’을 포괄한다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아쿠쉬는 석유기업에서 진행하는 사업이 기후 위기를 악화시킨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자원을 지속적으로 추출한 행위가 살인 혐의가 적용된 여러 유형의 사례와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기후위기로 인한 사망을 이유로 석유기업을 살인 혐의로 기소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지만, 이전에 살인 혐의로 기소된 기업의 사례가 있다고 소개했다. 지난 2010년 미국 멕시코만에서 영국 석유기업인 BP의 시추선이 폭발한 ‘딥워터 호라이즌 참사’ 이후 연방 검찰은 BP를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BP는 잘못을 인정하고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벌금을 지불했다고 가디언은 밝혔다.

한편 이론적으로는 ‘기후 살인’을 다룰 수 있지만, 실제로 적용하기에는 만만치 않다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지방 검사가 자산규모 수조 원에 달하는 기업에 맞서기에는 현실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탓이다.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의 크리스토퍼 쿠츠(Christopher Kutz) 교수는 “화석연료 기업에서 지난 수십 년간 진행한 행위에서 도덕적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명확해졌다”면서도 “기후위기를 초래한 행위가 석유기업 외에도 다른 요소와 혼재된 만큼 실제로 혐의를 적용하기에는 까다로운 지점이 있다”고 밝혔다.

쿠츠 교수는 “석유기업에 살인 혐의를 적용할만한 행위들이 지난 150년간 사회적으로 용인됐다”며 “보조금을 지급받으며 전 세계 경제에서 중심적인 부분을 차지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해당 논문을 읽을 때 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있다. 버팔로 대학의 구요라 빈더(Guyora Binder) 교수는 “여러 지점에서 흥미롭고 통찰력이 있는 논문”이라면서도 “기후 살인에 대해 책임을 묻기 어려운 이유는 이것이 여러 행위자의 행동이 확산되면서 사망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빈더 교수는 “기후 살인이 담배나 오피오이드(마약성 진통제 감기약) 관련 사건과 유사점이 있다”며 “담배와 오피오이드 역시 제조에 여러 기업이 관계돼 어떤 기업에서 얼마나 사망에 기여하는지 추적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만약 화석연료 기업이 모두 없어진다고 해도 기후로 인한 사망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빈더 교수는 석유기업들이 담합해 기후위기 관련 연구를 방해한다는 증거를 확보해 처벌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빈더 교수는 “화석연료 기업들이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기후변화 관련 연구를 억압하기로 담합했다는 증거가 있다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