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TalkTalk】블랙록 래리핑크 회장 편지의 의미
임팩트온을 창간한 이후 블랙록 래리핑크 회장의 연례서한을 비롯해 워낙 많은 블랙록의 기사를 써오다보니, 어떤 순간에는 마치 래리핑크 회장의 마음 속에 들어가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다들 그런 경험이 있듯이, 누군가의 글이나 작품을 오래 보다 보면 그걸 만든 사람과 조우하고 싶고, 또 그 사람과 상당한 친밀감을 느끼게 됩니다. 저 또한 한창 유튜브를 찍었을 때, ESG업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연예인 보는 것 같다”고 말해 부끄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블랙록의 래리핑크 회장이 2023년 연례서한을 내보냈습니다. 원래 뉴스의 속성이란 게 ‘새롭고 신기한 것’이 아니면 보도하지 않다보니, 올해 서한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20쪽에 달하는, 매우 긴 래리핑크의 편지를 읽어보면 현재와 미래의 시장 흐름을 읽을 수 있어 유용합니다. CEO라면 알아야 할, 인상적인 키워드 몇 가지만 함께 공유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는 매년 고객사인 기업 CEO에게, 또하나는 블랙록 주주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두 통 써왔지만, “이해관계자들이 동일한 문제에 직면해있다”며 올해는 편지를 한통만 썼습니다.
#1. 도미노 하락이 시작됐나?
그는 “실리콘밸리은행(SVB)의 붕괴는 우리가 수십년 동안 쉬운 돈을 이용해온 것에 대한 대가”라고 밝혔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장은 매우 공격적인 재정 및 통화정책을 당연하게 생각해왔으며,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1980년대 이후 보기 힘든 수준으로 인플레이션이 심해졌으며,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 1년간 거의 500bp 가까이 금리를 인상했습니다.
래리핑크는 “우리가 수십년 동안 쉽게 벌어들인 돈 중 하나이며, (급등한 금리)는 도미노가 첫번째 하락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15년만에 가장 큰 은행의 파산, 즉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은 두 번째로 무너진 도미노”라는 것입니다.
그는 “다른 지역은행들과 레버리지에 의존하는 투자자들도 그 선례를 따를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는 최근의 사건들을 1,000개 이상의 대부업체들이 파산했던 1980년대 저축 및 대출 위기와 비교했습니다. 그는 "간단한 자금과 규제 변경의 결과가 (S&L 위기에 대한) 미국 지역 은행 섹터 전체에 걸쳐 확산될지 여부는 아직 모른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S&L(저축대부조합) 사태란 1980년대 미 연방준비제도(Fed)에서 인플레이션을 꺾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쓴 결과 1985년부터 10년 동안 1000곳이 넘는 저축대부조합이 파산한 사태를 말합니다. 이번에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쓴 결과 이번에 SVB와 시그니처은행이 파산하는 등 희생양이 되었듯이, 당시에도 모기지 대출에 크게 의존했던 저축대부조합이 파산하면서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수천 개의 주택이 압류되고 기업이 파산하는 등 막대한 피해가 생겼습니다.
래리핑크는 “은행들은 불가피하게 대출을 회수할 것이고, 이로 인해 더 많은 기업들이 자본 시장으로 눈을 돌려 투자자와 자산 관리자들에게 기회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그그는 “유동성이 낮은 투자에 투자된 펀드는 특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차입금을 사용했다면 세 번째 하락 도미노가 될 수 있다"고 예측했습니다다.
#2. 세계 경제의 극적인 변화…파편화
금융시장의 변화는 세계 경제 지형의 극적인 변화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게 래리핑크의 관측입니다. 그리고 세계화에 대한 반발의 씨앗은 유럽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훨씬 이전부터 일어나고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2017년 이후 세계화와 기술 변화, 브렉시트, 중동의 격변,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 등이 있었고, 코로나 이후 보호무역주의와 양극화 심화,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유대감 약화 등 양극화와 분열, 신뢰의 하락은 전체적인 흐름이었습니다.
래리 핑크는 “식품과 에너지, 반도체 칩과 AI 등 기업과 국가는 지정학적 긴장에 노출된 공급망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 결과 덜 통합된, 더 세분화된 세계 경제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이어 “ 그는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것이며, 은행가들이 이를 억제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은 앞으로 몇 년 동안 3.5%, 4%에 근접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또 에너지와 천연자원을 지니고 있으며 반도체칩 제조에 유리한 혜택을 주는 정부 정책, AI혁신 등으로 인해 북미가 이러한 파편화된 경제의 가장 큰 수혜국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3. 은퇴자와 노동 생산성
래리 핑크는 노동력과 노동 생산성에 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세계가 은퇴에 관해 조용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입니다. 뉴스매체에도 나오지 않고, 국가에서 정치적 대화로도 등장하지 않으며, 기업 리더 또한 이 문제를 논의하지 않지만, 이 문제는 위기라는 겁니다.
수명은 계속 연장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공개석상에서 논의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낮은 시장 수익률 기대치, 높은 주택 및 의료비용, 은퇴 리스크의 개인화 등 점점 문제 해결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유럽, 북미, 중국, 일본에서 인구와 수명 증가, 출산율 감소와 고령화되고 있으며, 출산율은 미국 1.7명, 유럽 1.5명, 중국 1.2명으로 최저 수준입니다.
래리 핑크는 “노동인구가 계속 줄어들면서, 소득은 더 느리게 증가하거나 심지어 감소하게 될 것”이라며 “이러한 현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각 시장에 매우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는 “국가와 기업은 ‘생산성 최우선화(productivity imperative)’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성공하는 나라는 건강한 기대수명이 높고 노동력 참여율이 높으며, 생산성이 높은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 “부유한 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저축할 능력이 부족하다”며 “은퇴자들을 위해 수십년 동안 저축한 돈을 투자하고, 자본시장 성장에 따른 장기적인 수익률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사람들이 장기 투자를 하려면 미래 전망을 낙관적으로 봐야 하는데, 지금은 상황은 정반대입니다. 사람들에게 “5년안에 자신의 가정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조사에서, 지난해 28개국 중 24개국에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도 58%만에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다고 합니다. 10년전 S&P500에 1000달러를 투자했다면, 그들은 지금 3000달러 이상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게 래리핑크의 주장입니다. 그는 “인터넷이 스트리밍을 통해 음악산업을 변화시켰듯이, 우리 사회는 사람들의 은퇴 계획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3. ESG와 대리 투표(proxy voting)
이번 편지에는 그가 ESG를 강조하지 않았고, 공화당의 눈치를 보았다는 의견도 있지만 편지를 자세히 읽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을 강조하고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임팩트온 기사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래리 핑크가 강조한 내용 중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지점은 일명 ‘프록시 보팅(proxy voting, 대리 투표)’에 관한 내용입니다. 래리핑크는 “관리대상인 인덱스 주식 자산의 거의 절반이 현재 ‘대리 투표’ 자격이 있다”며 “프록시 시즌 뿐만 아니라 몇 개뿐인 프록시 어드바이저(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ISS와 글래스루이스를 언급한 것이겠지요)에게만 의존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1년 내내 기업 지배구조에 대해 기업과 협력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려면 기업이 진화하는 리스크와 기회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이해해야 하고, 즉 세계화, 공급망, 지정학, 인플레이션, 통화 및 재정 정책, 기후변화 등 기업의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을 검토해야 합니다. 래리 핑크는 “블랙록의 스튜어드십 팀은 고객인 자산소유자를 대신해서, 기업이 재무적으로 중요한 요소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이해하고 관리하도록 요구한다”고 밝혔습니다.
동시에 기업 지배구조에 목소리를 더하는 것이 주주민주주의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프록시 어드바이저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잇으며, 이러한 어드바이저가 늘어나면 업계도 분명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향후 10년간 투표 생태계가 어떻게 변화하느냐는 기업 지배구조를 재편하는 혁신적인 힘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으로 대리 투표 업계의 다양한 변화를 예측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외에 그는 “FTX의 붕괴 등 디지털 자산 분야에서 흥미로운 발전이 일어나고 있으며, 인도, 브라질, 아프리카 등 많은 신흥시장에서도 디지털 지불이 극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금융통합이 이뤄지지만,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 시장은 혁신에 뒤쳐져 결제 비용이 훨씬 높다”고 설명합니다. 향후 자산관리 업계에서 허가된 블록체인, 자산 클래스의 토큰화 등 디지털 자산 생태계를 지속적으로 탐색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어떻습니까. 현재와 미래 시장의 흐름이 좀 읽혀지시나요? 2023년 올해 전 세계는 또 어떠한 흐름이 이어질지 모릅니다.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네요. 이번 한주도 평안하세요.
*지지난주에 내보냈던 <ESG 직무>에 관한 구독회원님들의 의견이 다양하네요. 함께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공유합니다.
독자 피드백의 포인트를 보면서 조금 아쉬운 마음에 글을 남깁니다. "이들은 본인들의 주장을 실무로 옮길 수 있는 이공계적 소양이 부족하죠. 여기서 능력의 한계를 상당 부분 절감하게 됩니다." 라고 하셨는데, 이공계적 소양이 부족한 것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해당 업무에서 중요한 점은 오히려 다양한 규제와 스탠다드를 빠르게 캐치업하고 깊이 이해하는 것이고 거기에서 조금 더 나아간다면 근거를 바탕으로 논리를 만들고 계산을 할 수 있는 논리적 비판적 사고 역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의 사업 전체를 이해하는 시각도 필요할 것이고요. 예시로 들어주신 탄소저감 방법론 개발과 사업 접목, 신규 사업모델 개발, 온실가스 배출 책정, 배출권 거래, 탄소발자국 산출을 위한 LCA 등의 대부분은 오히려 문과에 해당하는 회계/재무/전략, 그리고 맥킨지나 베인에서 일하는 컨설턴트 같은 사고에 가깝다고 할까요. 즉, 관련 업무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탄소포집 '기술' 자체를 전문가 수준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또한 금융계에서 ESG 관련 역할은 얼마나 많은지요. 아마도 홍보/CSR 베이스에 계신 분이라서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 싶지만, 문과의 영역은 충분히 넓기에 문과 베이스의 ESG 커리어패스가 충분히 강점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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