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의 ESG적 생각】 그린 리스, 임대차 계약도 이제 친환경적으로
‘그린 리스(Green Lease)’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리스면 리스지, 왜 ‘그린’이라는 말이 앞에 붙은 것일까? 이유 없는 수식은 없을 터이다. 그린 리스란 표준 임대차 약관이나 조항 외에 부동산을 둘러싼 여러 경제적·사회적 환경을 고려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과 운용을 독려해 자연환경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방점이 찍힌 임대차 동의서다.
그린 리스는 임대차 계약 시 건물의 친환경적 운영에 대해 임대인·임차인 양측 모두의 자발적인 협조를 유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부동산 자산의 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상호 책임성도 제고하고자 한다.
그린 리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초기에는 분명 환경 요소(ESG 중 E)에 무게중심이 실렸었다. 최근에는 친환경을 넘어서, 사회적인 측면(ESG 중 S)도 강조되고 있다. 건물의 포용적 디자인(inclusive design) 체계 구축, 임차인의 건강권 고려, 지역 커뮤니티 조성에 기여, 공급망의 지속 가능성 점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글로벌 부동산 자산 ESG 벤치마크인 GRESB(Global Real Estate Sustainability Benchmark) 또한 평가 과정에서 ‘사회적 이니셔티브(social initiatives)’에 대한 근거를 요구하고 있다.
친환경 슬로건이 아닌, 운영비용 절감 등 경제적 선순환을 이끄는 그린 리스
해외에서는 그린 리스에 대한 논의가 국내보다 훨씬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미국 내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기후변화 이슈에 대처하고 있는 비영리 단체(NPO) IMT(Institute of Market Transformation)는 그린 리스를 통해 미국 오피스 빌딩의 공공요금을 평방피트당 약 22% 절감할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그린 리스가 그저 친환경적인 슬로건이 아닌, 경제적으로도 이로운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로움은 임대인, 임차인 모두에게 적용된다. 임대인은 그린 리스를 도입함으로써 최근 화두가 되는 ‘브라운 디스카운트(brown discount)’의 위험을 사전에 차근히 대비할 수 있다. 임차인은 보다 친환경적인 건물에서 비즈니스를 영위할 수 있게 되고, 유틸리티 비용 절감의 혜택도 누릴 수 있다.
선순환을 불러일으킨다. 친환경적인 건물에 입주 의사가 강한 곳들은 대부분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 혹은 글로벌 금융사이기에, 임대인은 우량한 임차인을 확보하기가 더욱 용이해진다. ESG 어젠다에 참여도가 높은 우량 임차인과 협업하면서 에너지 비용을 낮추고, 부동산의 탈탄소화에도 속도를 내 건물의 순운영소득(NOI)을 제고할 수 있다. 임차인 입장에서도 임직원의 근무 만족도를 높이고, 인재 유치에도 힘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규제 압력, 그린 리스의 도입을 가속하다
그린 리스의 도입은 또 다른 맥락에서도 가속화될 수 있다. 바로 규제 압력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싱가포르 건설청(BCA, Building and Construction Authority)의 친환경 건물 등급 시스템에 따라 친환경 인증을 받아야 한다. 모든 신축 건물은 이전보다 더욱 엄격해진 지속가능성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영국에서는 앞으로 EPC(Energy Performance Certificates, 에너지 효율 인증) 등급이 표준 이하인 건물의 임대가 금지된다. EPC는 에너지 효율에 따라 건물을 A~G 등급으로 분류해서 평가하는데,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EPC 등급 중간값은 D로 추정된다. 이는 규제의 영향을 받는 건물의 수가 상당할 것임을 시사한다. 게다가 영국 그린빌딩위원회(UKGBC, UK Green Building Council)에 따르면, 영국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0%는 건축 환경에 기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임대차 계약에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물론 그린 리스의 도입과 적용이 말처럼 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조항의 강제력, 구속력에 대한 의견이 아직 분분하고, 빌딩 에너지 효율 개선에 대한 비용 분담 문제도 간단치 않다. 또 임대인이 ‘정량화할 수 있는 손실(quantifiable loss)’을 제시하기 어려운 구조이기에, 그린 리스 조항 위반에 대한 객관적인 손실 입증이 어렵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그럼에도 도저한 ESG 물결은 상업용 부동산 업계에서 임대차 계약의 문법을 바꾸고 있다. 조항의 해석과 적용은 ‘각론’이다. ‘총론’ 차원에서 그린 리스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회사 존스랑라살(Jones Lang LaSalle·JLL)은 2025년까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주요 임차인의 약 85%는 어떤 형태로든 그린 리스를 체결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아태 지역에서 지속가능성 기준을 충족하는 상업용 빌딩에 대한 수요는 공급을 앞지를 수 있다. 글로벌 부동산 투자운용사인 세빌스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Savills Investment Management)는 전 세계 기관 투자자의 70% 이상이 몇 년 안으로 임차인과 임대인 혹은 부동산 운용사 사이에 그린 리스 조항이 보편적으로 도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에서는 2014년부터 ‘그린 리스 리더스(Green Lease Leaders)’라는 단체가 임대인과 임차인에게 그린 리스 조항을 위해 협력하는 방법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마스턴투자운용과 같은 대체투자 전문 자산운용사가 올해 그린 리스를 도입했다. 건물의 지속 가능성을 증진하기 위함이다. 필자가 속해 있는 마스턴투자운용 ESG LAB은 그린 리스에 불필요한 에너지·물 사용량 감축, 태양광 등 대체 에너지 사용, 건물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오염수, 폐기물 감축 등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운영 방식을 명문화했다. 더불어 지역사회 공동체를 고려한 공익행사 유치 등과 같은 S(Social) 요소도 보강했다.
‘그린 프리미엄(green premium)’ 현상으로 인해 그린 리스는 자산의 지속가능성뿐 아니라 수익성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그린 리스에 E(환경), S(사회)뿐 아니라 G(거버넌스) 요소까지 강화해 ‘ESG 리스’로 논의의 수준을 격상해 보면 어떨까 싶다. 이젠 임대차 계약서에도 ESG 철학이 스며들고 있다. 이 계약에 흔쾌히 서명하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 김민석 팀장은
김민석 팀장(listen-listen@nate.com)은 대체투자 전문 자산운용사인 마스턴투자운용에 재직 중이다. 브랜드전략팀 팀장과 ESG LAB의 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경영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행정학·정책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필명으로 몇 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서울에너지공사 시민위원,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외부전문가 자문위원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