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가치에 값을 매길 수 있을까?”

국내 유일 사회적 가치(Social Value) 측정과 확산에 올인하는 연구원, CSES의 5년

2023-04-25     송준호 editor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선대회장께서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처음 세웠는데, 어느덧 50주년이 됐습니다. 뿌리가 깊어지면, 그 안의 열매, 사람, 네트워크, 관계가 점점 발전하게 되지요. 사회적 가치는 휴먼 네트워크(Human Network)로 이루어지고, 휴먼 네트워크끼리 어떻게 공생해서 잘 살지가 중요합니다. 사람끼리만이 아니라 자연과도 공생하고, 그 외 필요한 모든 것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지난 19일 저녁 6시, 서울 중구에 위치한 대한상공회의소 8층의 한 사무실에서 SK그룹과 대한상의 두 그룹의 수장을 맡고 있는 최태원 회장이 직접 발언대에 섰다. 설립 5주년을 맞이해 스탠딩 축하행사가 열린 이곳은 사회적가치연구원(CSES). 최 회장은 CSES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행사는 최태원 CSES 이사장과 나석권 CSES 원장을 비롯한 이사진이 연구원 설립 5주년을 기념하는 ‘글로리 월’ 제막식을 시작으로, ESG픽처북 전시와 기념 영상 상영 등 CSES의 5년 간의 발자취를 담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CSES

CSES는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는 조직이다. 기부금이 SK그룹 계열사들로부터 오는 공익재단이지만, 자금만 SK로부터 받을뿐 사업의 방향이나 주요 사업, 이해관계자 파트너들이 대부분 사회적가치를 배경으로 하는 조직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CSES의 가장 핵심적인 미션은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사회문제 해결방안을 연구하며, 함께 할 사람들을 연결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이날 설립 5주년을 기념한 ‘글로리 월’ 제막식을 시작으로, CSES가 예술가들과 함께 제작한 ‘ESG 픽처북’이 전시됐다. ESG픽처북은 ESG의 중요한 이슈, 성과, 노력을 30개의 그림으로 표현한 그림책이다. 나석권 원장은 “사회적가치연구원의 향후 5년에 대한 비전은 영어 5를 의미하는 FIVE로 답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나 원장은 “모든 구성원이 한 가족(Familyship)이라는 마음으로, 사회적 가치 생태계에서 국제적으로도 이상적인(Ideal) 연구원이 될 것이며, 경제적 가치를 포함한 의미있는 다양한 활동과 가치있는(Valuable) 경험도 만들어가는 영원한(Eternal) 연구원이 되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나석권 CSES원장이 ESG픽처북 작품을 하나씩 설명하고 있다. 그는 “물이 100도에서 끓듯,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ESG도 성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SG픽처북은 4월 말 시판될 예정이다./ⓒCSES

 

사회적 가치 측정이라는 무모한 도전…3275억원의 성과

그런데 사회적 가치를 왜 측정해야 하는 걸까. 이날 기념식에서 최 회장은 CSES의 설립 배경을 쉽게 설명했다. 

“어렸을 때 공부잘하는 것도 중요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는 것도 중요하고, 친구들과 잘 노는 것도 중요하고, 건강하게 밥 잘 먹는 것도 중요하죠. 뭐가 제일 중요한가요? 어떤 사람은 A를, 어떤 사람은 B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치관이나 중요도가 다르죠. 만약 B를 중요시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으려면 내가 아무리 A를 중요시여겨도 상대의 가치를 존중해줘야 해요. 그걸 가치화해야만, 인류는 좋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지요. CSES는 이걸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연구원입니다. 사회문제를 더 잘 다루기 위한 곳이죠.”

최 회장은 10년 전인 2013년 다보스포럼에서 ‘사회적 가치’, 좀더 구체적으로는 사회적기업들이 창출하는 사회 성과를 화폐가치로 측정하고 성과에 비례해 현금 보상(인센티브)을 제공해주자는 사회성과인센티브(SPC, Social Progress Credit) 프로그램을 처음 제안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비현실적인 시도’로 여겨지기도 했다.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이를 평가해서, (민간이 우선, 추후엔 공공이)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이러한 가치평가가 활성화되면 거래가 일어날 것이고, 나중엔 ‘사회적가치 거래소’가 만들어지지 않겠느냐는 구상이었다. (어찌 보면 탄소배출권 거래제 또한 존재하지 않았던 탄소에 시장가격을 만들어낸 것이니, 넓은 의미의 사회적가치 거래소는 이미 만들어져있는지도 모른다-편집자 주) 

SK그룹은 2015년부터 매년 SPC기업을 선발해 지금까지 누적해 404개 기업에게 SPC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이들이 창출한 사회성과는 3275억원에 달한다. 2022년에도 42개 기업을 SPC 8기로 선발해 사회성과가 얼마인지를 측정하고 있다. 10년이 지난 2023년, 다보스포럼을 주관하는 세계경제포럼(WEF) 사무국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사회적기업과 파트너십 및 ESG 경영 가속화 성공모델’로 SK의 SPC를 꼽았다. 

 

중국 정부기관, 독일 바스프, 일본과도 공동 연구하고 데이터 공개까지

물론 3275억원의 사회성과는 이해관계자가 100% 동의하기가 참 어렵다. 사회적 가치 측정의 난제가 바로 이 지점인데, 예를 들어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기업 중 청년 대상 주거지원 vs. 청년 대상 심리적지원의 사회성과 중 어떤 사업이 더 사회적 가치가 높은지는 따져봐야 안다. 그걸 자세히 따져보고(측정),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을 늘려야(확산) 한다. CSES가 사회적가치를 측정하고, 확산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내외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CSES는 중국의 국유기업을 관리하는 정부기관인 국무원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이하 국자위)를 포함해 15개의 사회적 가치 측정 및 평가 체계 수립 기관과 협업하고, 독일 기업 바스프 등 26개 기업이 포함되어 있는 글로벌 이니셔티브인 Value Balancing Alliance(VBA)에서 사회적 가치를 화폐로 환산하는 체계를 개발하고 있다. 2018년에는 공공기관 SV 측정협의회의를 조직하여, 지금까지 16개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측정했다. 일본의 임팩트 측정체계와 SPC모델을 비교 분석하여, 일본에도 현지 상황에 맞는 SPC 사업 모델을 개발하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바깥의 이해관계자뿐 아니라 내부의 이해관계자들에게 동의를 받는 것 또한 중요할 수밖에 없다. SK그룹은 주요 관계사 정관까지 바꿔 기업의 목적을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사회적가치도 추구하는 더블바텀라인(DBL, Double Bottom Line)을 강조하면서, 그룹 내 여러 계열사부터 먼저 사회적 성과를 측정해보는 일에 나섰다. CSES는 지난해 5월 SK 15개 멤버사의 2021년 사회적 성과를 측정해 외부에 알리고, SV 관련 214개 지표를 검토하고, SV 측정 세부 산출식과 데이터까지 투명하게 공개했다.

 

CSES, 사회적 가치 생태계 담긴 플랫폼 개발

사회적 가치 확산을 위해서는 플랫폼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외부 이해관계자와의 협업과 관련, “SPC 참여기업은 2019년 188곳에서 404곳으로, 학계 전문가는 460명에서 1447명으로, 협력기관은 50곳에서 73곳으로 늘었다”고 CSES는 밝혔다.

설립 5주년을 맞은 CSES 기념 영상과 지속가능보고서에는 ESG 및 사회적 가치 분야의 학계 전문가들의 피드백이 담겼다. 신현상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려면, ‘사회적 가치 측정’이 선행돼야 한다”며 “사회적 가치는 주관성이 커서 측정이 어려운데, CSES가 가치 측정 기준을 제시하고 실제로 측정한 결과를 밝히면서 이 분야의 지식을 선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김기현 고려대 경영대학 연구교수는 “CSES가 등장하고 ‘사회적 가치’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연구자와 소셜벤처를 포함한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함께 연구할 수 있는 생태계가 마련됐다”며 “해외의 기관, 학회, 학자들과의 네트워크를 더 늘려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CSES는 사회적 가치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 ‘SV Hub’를 운영, 사회적 가치 측정과 연구결과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중들을 위한 ESGame, SV강의와 세미나, 숫자로 보는 사회적 가치 콘텐츠를 제공한다. 숫자로 보는 가치는 ‘직장생활에 숨은 사회적 가치’, ‘우리 밥상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얼마나 될까요?’ 등 우리 생활과 밀접한 사회적 가치를 포착하여 숫자로 재밌게 풀어낸 콘텐츠다.

그럼 다섯 살이 된 CSES 자체의 사회적 가치는 얼마일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 성과인 이해관계자 가치는 36억4000만원, SPC를 통한 사회적 가치는 101억원, 외부 전문가들이 델파이 방식으로 추정한 SV 플랫폼의 자산가치는 301억원이라고 한다.

최태원 회장은 이날 CSES 설립 5주년 기념 선물을 26명 연구원들에게 일일이 나눠주고 사진촬영을 하면서, “앞으로 더 많은 사회 문제를 더 잘 다뤄서 우리 사회의 좋은 토양이 되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기념 선물은 '식구'임을 상징하는 수저세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