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GRI 엘코 대표, "글로벌 공시 기준 흐름, 데이터와 비즈니스 혁신"
최근 ESG 공시 규제가 전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추세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을 중심으로 ESG 규제·기준·원칙이 마련되고, 스코프3 등 지속가능성 공시 범위도 점점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SEC(미 증권거래위원회), EFRAG(유럽연합 재무보고자문그룹), ISSB(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 ESRS(기업 지속가능성 표준) 등 각종 지속가능성 공시 지침이 난립함에 따라 기업들은 공시 압박과 비용 부담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글로벌 공통 공시 표준화를 위한 작업이 시작됐고, 그 가운데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가 있었다. GRI는 지속가능성 공시 프레임워크로서 25년 이상의 역사를 보유하고 있다. KPMG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글로벌 상위 250개 기업의 96%가 GRI 기반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GRI는 TNFD(자연기반재무정보공개태스크포스), ESRS(EU ESG공시기준) 등 새로운 ESG 관련 표준의 토대로 자리잡았다.
임팩트온은 지난 4월 30일부터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약 4일간 개최된 BCCCC(미국 보스턴칼리지 기업시민센터) 컨퍼런스에서 GRI 대표 엘코 반 데르 엔덴(Eelco van der Enden)을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 만났다.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글로벌 지속가능성 공시 트렌드와 공시 기준 통합 방향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Q. 전 세계적으로 SASBI, IFRS 등 지속가능성 공시 표준이 통합된다는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흐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작년 ISSB와 GRI가 업무 협약을 맺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리더십 문제를 어떻게 할지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우리는 ISSB와 긴밀하게 잘 협력하고 있다. 지속가능성 보고에 대해 글로벌에서 통용되는 공통적인 보고 체계를 마련하고, 기업들의 지속가능성 공시를 돕기 위한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EFRAG(유럽 비재무공시기준 마련을 위한 자문그룹)와도 계속 공동 작업하고 있으며, 기업들이 GRI에 기반한 공시기준인 ESRS를 준수하고 보고 관행 및 프로세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기술 지침을 제공할 예정이다.
Q. 협력 관계에 있을 지라도 공시 기준 간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GRI와 ISSB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GRI는 비즈니스의 사회·경제적 임팩트에 초점을 둔 반면, ISSB는 투자자 관점에 기반해 재정적 임팩트를 중심으로 설계됐다. ISSB가 투자자들이 의사결정을 내리고 기업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재정적 중대성에 집중했다면, GRI의 핵심은 기업들이 사회에 미치는 소셜 임팩트라 할 수 있다. 기업들은 GRI 기반으로 오랫동안 지속가능성을 공시해왔다. 앞으로는 환경·사회·경제·정부 이슈를 고려한 비즈니스의 전략적인 목표를 세워야 하며, 공급망, 기후, 사회분열 등 특정 이슈가 기업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염두해야 한다.
Q. 유럽 공시 기준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중대성 평가 과정에서 차이가 있다. 기업들이 중요한 문제를 파악하는 접근방식이 다르다. 유럽 기준은 기업들이 외부 이해관계자의 요구에 대응하는 아웃사이드인(outside-in) 접근방식이라면, GRI는 인사이드아웃(inside-out) 방식이다.
GRI는 기업이나 사업이 인권, 경제, 환경, 사람에 미칠 수 있는 실질적인 혹은 잠재적인 영향력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기에 인사이드 방식으로 접근한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기업들이 전략적 사업 목표를 추구할 때 이슈를 고려하는가, 사업이 환경, 사회, 경제 통합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기후변화의 영향력은 무엇인가 등 임팩트 공시에 중점을 둔다. 접근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이미 수많은 기업들이 수십년 동안 해왔던 것이기에 새로운 것이라 할 수는 없다.
Q. 지속가능성 공시 표준을 통합하는 흐름에 대해 글로벌 기업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기업들은 공시 기준과 프레임워크가 너무 많다는 불평을 제기한다. 사업을 전 세계적으로 확장할수록, 지속가능성 노력을 더 많이 펼치는 기업일수록 여러 공시 기준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시 표준의 알파벳(GRI->TCFD->TNFD->....) 순으로 지속가능성 공시에 대응해야 하느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공시 규제에 대한 두려움과 규정 준수 비용 등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Q. 이러한 공시 흐름 속에서 GRI의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GRI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GRI는 자발적 공시기준이기에 기업들이 지속가능성을 자발적으로 공시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크게 두 가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지속가능성 데이터를 투명하고 비교 가능한 방식으로 공시하는 기준을 제공할 것이다.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들이 데이터에 기반해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둘째, 외부 검증(assurance)을 통해 지속가능성 공시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것이다.
Q. 새로운 공시 표준의 등장으로 위협을 느끼진 않는가?
GRI는 전 세계 지속가능성 공시 트렌드를 25년 이상 주도해 왔다. 전 세계 78% 이상의 기업들이 GRI 표준을 활용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94.2%, 독일은 90%, 라틴 아메리카는 거의 모든 기업들이 GRI 기반으로 자발적으로 보고한다. 13개국의 언어로 GRI 가이드가 제공된다. 기업과 조직의 절반 이상이 영어 가이드를 다운 받았으며, 1년 이내 터키어, 한국어 가이드가 추가될 예정이다. 이는 GRI가 글로벌 지속가능성 공시 브랜드로서의 안정적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우리는 비영리조직이지만 탄탄한 내부 운영 시스템으로 IT 기반 공시 플랫폼을 운영해 왔기에 앞으로도 기업들이 공시 요구 사항을 잘 충족시킬 수 있도록 GRI 기반 보고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술 지침을 제공할 예정이다.
Q. 기업들이 GRI 기반으로 지속가능성을 공시해왔던 관행과 새로운 공시 흐름과 차이가 있다고 보는가? 공시 기준 변화의 목적은 무엇인가?
공시 기준의 통합은 기업들이 지속가능성을 쉽게 공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주 목적이다. 기업들은 수십년 전부터 기업 조직 구성, 내부 공시 데이터 관리 여부 등을 공시하고 외부 공시 프레임워크에 대응해왔다.
최근 공시 기준의 흐름은 결국 데이터와 비즈니스 혁신에 관한 것이다. 데이터 속에서 기업들을 위한 새로운 사업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기업이 지속가능성이나 환경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탄소, 온실가스 측정에 관한 양적, 질적 데이터로 탄소 거래가 이뤄지는 것이 하나의 예시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기업들은 불안정하고 건강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사업을 운영할 수 없을 것이다. 지속가능성 보고의 궁극 목적은 좋은 비즈니스 운영(doing good business), 이를 넘어 기업 가치 창출(value creation)이라 할 수 있다.
Q.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기업 이사들은 기업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의무를 갖고 있다. 기업에게 위협이 될만한 경영 리스크에 대응하려면 지속가능성 이슈를 잘 다뤄야 한다. 그리고 투자 및 자본 시장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투자자들은 이제 재무·비재무 정보, 공급망 정보까지 요구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이 향후 20-25년 동안 생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변화를 수용해야 경영 리스크와 자본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아시아 지역도 마찬가지다. 특히 동남아시아에 있는 거대 제조업들이 공급망 공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지속가능성을 넘어 전 세계 경제 모델이 변화됐다고 본다.
Q. 공시 기준이 빠르게 도입됨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마다 대응 수준에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시아, 남미, 미국 등 전 세계 기업이 공시 기준에 실제 대응하는 건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본다. ISSB도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지 않을 것임을 확인했고, 일부 표준과 산업 표준은 2-3년 정도 연기될 것이며 표준 변경도 있을 수 있다. 글로벌 지속가능성 공시 표준이 전체적으로 GRI와 ISSB 쪽으로 바뀌기 때문에 앞으로 2-3년 이내 미리 준비하고 이전에 GRI를 준수하는 기업이라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사회나 NGO에 의한 압력과 요구도 있었지만, 지속가능성 보고를 시작하게 된 것은 정부와 규제기관이 아닌 자본 시장, 투자자들이 주도한 민간 이니셔티브임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Q. 지속가능성 공시가 기업에게 주는 기회가 있을까?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사업 효율성 증진. 공급망 현황을 이해하고 이를 개선하면 운영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기업 경쟁우위 확보. 특히 젊은 세대들은 목적을 가진 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기업들이 지속가능성에 집중한다면 미래 세대에게 매력있는 기업으로 다가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규 시장 진출 및 평가 기관에 의한 평가를 받을 시에도 유리할 수 있다. 기업 평가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에 기업과 사업이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데이터와 인사이트를 제공해야 한다. 특히 이 흐름은 앞으로 더욱 압도적일 것이다.
Q. 기업들은 공시 기준을 개별적으로 채택하다 보니 그린워싱 문제가 있었다. 기업들이 임팩트에 관한 정보를 어떻게 잘 공시할 수 있을까?
과거에는 지속가능성 보고가 마케팅의 일환으로 여겨졌고 지속가능성 정보를 부풀리거나 거짓 공시해도 잘 확인되지 않았다. 재무나 회계에 비해 지속가능성 정보를 판단하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의 통합된 글로벌 기준이 마련되면 그린워싱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본다. 지속가능성 정보를 회계 정보와 동일하게 다루면 그린워싱을 쉽게 판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ISSB·GRI 통합이 의미있는 이유다. 하나의 표준으로 통합되면 투명성과 검증을 높일 수 있고, 감독기관이나 회계사들이 공시 검증을 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린워싱 방지 규정을 제시한 유럽 평가 기관과도 협력하고 있다.
Q. 마지막으로 새로운 공시 흐름에 대응해야 하는 기업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기업들은 비재무 및 재무 공시 표준인 ISSB와 GRI만 활용해도 공시 기준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본다. 기업들은 이미 GRI와 IFRS 국제 회계 기준에 따라 오랫동안 공시를 해왔기 때문에 ISSB와의 협력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이 기준을 따르면 EFRAG 같은 유럽 표준도 준수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공시 표준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공시 흐름은 자본 시장 변화에 따른 것이며,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지 기업에게 부담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이면 기업들에게 새로운 사업 기회와 여러 이점을 가져다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