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폭염시대의 투자법
바야흐로 폭염의 계절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폭염은 주로 한여름인 7~8월에 주로 등장하는 단어였으나, 지구 가열이 계속되면서 5월에도 익숙한 단어가 됐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4월은 전국 평균기온이 13.1도로 평년보다 1도 높아,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로 아홉 번째로 더운 4월이었다. 19일에는 강원도 영월의 최고기온이 30도에 육박하기도 했다. 나무를 심고 꽃피는 4월에 30도라니, 5월에는 30도를 넘는 날이 더욱 빈번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남아에는 ‘괴물폭염’ 강타…대폭염의 시대 도래
사실 올해의 폭염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기는 하다. 2020년부터 시작된 라니냐가 끝나고 엘니뇨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매월 업데이트 되는 미국 해양대기청(NOAA)의 엘니뇨 전망에 따르면, 이미 작년 9월부터 올해 라니냐가 끝날 것임을 예측하고 있었다.
또한,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3월 라니냐가 약화되고 있음을 발표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 NOAA의 발표인 5월 11일 전망에 따르면, 6월부터 엘니뇨 확률이 80% 이상으로 본격적인 엘니뇨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엘니뇨가 오면 지구 평균 기온이 0.2도 오르고, 라니냐에서는 0.2도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엘니뇨에서 따뜻한 바닷물이 더 멀리 퍼지며, 지표면에 더 가깝게 머무르기 때문이다. 작년 WMO의 세계 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은 역사상 5~6번째로 더운 해였는데 이는 장기적인 기온 상승이 지속 중이기 때문에, 라니냐였음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폭염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엘니뇨로 접어들면, 올해와 내년의 폭염의 정도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요제프 루데셔 포츠담 기후연구소 박사는 이번 엘니뇨 이후 지구 온도가 0.2~0.24도 더 높아질 것이라며, 2024년은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예측은 틀리지 않아, 이미 동남아시아는 ‘괴물 폭염’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강렬한 폭염을 맞이했다. 5월 초에 베트남 북부는 44도까지 올랐으며, 라오스와 태국 등 인도차이나반도의 대부분 지역에서 기온이 40도를 웃도는 폭염이 지속됐다. 많이 전문가가 이번 폭염을 기후위기의 암울한 징조로 평가하는 가운데, 대폭염의 시대가 도래하면 세계 경제와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것이다.
기후위기, 물가 상승으로 확대
먼저 가장 큰 우려는 물가이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전쟁의 영향으로 여전히 고물가의 여진이 남아 있는 와중에, 폭염이 지속되면 물가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 온도가 올라가면 냉방설비가 더 많은 전기를 쓰게 되는데, 전기요금이 오르면 전반적인 제조업 생산비에 영향을 줄 것이다. 작년 유럽의 폭염 때 강물 온도가 높아지자 원전의 냉각수 온도가 올라가 원전이 가동하지 못했던 사례나, 냉방용으로 전기를 우선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공장을 가동시키지 못하는 사례는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을 확대할 것이다.
음식료품도 역시 물가 상승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대규모 쌀농사 지역인 동남아시아는 엘니뇨 시기에 강수량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는데, 쌀 생산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설탕 가격은 이미 11년래 최고 수준이다. 기후여건 악화로 설탕의 원재료인 사탕수수 작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대 사탕수수 생산국인 인도는 올해 생산량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고, 브라질 역시 이례적인 우기로 사탕수수 재배가 늦어지고 있다. 내년까지 엘니뇨가 지속된다고 볼 때, 전반적인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폭염, 양의 되먹임 현상…기후위기 가속화
폭염과 같은 이상 기상 현상이 에너지 가격과 식량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는 어느 정도 알려졌는데, 문제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폭염은 기후위기의 결과라 볼 수 있는데, 폭염 자체가 다시 기후위기의 대응 역량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문제다. 마치 기후의 양의 되먹임 현상과 비슷하게, 폭염이 기후위기를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 양의 되먹임 현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빙하의 소멸인데, 더워져서 빙하가 줄어들면 빛을 반사하지 않고 더 많이 흡수하게 되어 기온상승이 가속화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양의 되먹임 현상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면, 인간이 더 이상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더라도 지구 스스로 기온이 오르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노력이 시급하다. 이와 유사하게 폭염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는 탈탄소 전환을 방해하거나 느리게 할 수 있다. 탈탄소 전환이 늦어지면 더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기온상승 억제목표인 1.5도와 2.0도 달성도 어려워진다.
구체적으로 이번 엘니뇨로 폭염과 가뭄 위험에 노출된 동남아시아를 보자. 베트남은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풍력 타워 생산성을 보유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생산한 풍력 타워는 베스타스, 지멘스 등 주요 풍력 터빈 회사에 공급되고 유럽을 비롯한 주요 풍력발전 프로젝트에 설치된다. 타워를 만드는 공정은 조선소와 유사한데, 야외에서 하는 용접 작업이 핵심이다. 당연히 폭염은 노동시간에도 영향을 주고 작업 능률도 저하시킨다. 여름마다 주기적으로 폭염을 경험하는 포르투갈 역시 유럽과 미국의 풍력 프로젝트에 공급하는 타워를 생산한다. 역시 폭염에 취약하므로, 반복된 폭염은 풍력 타워 생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말레이시아의 사라왁주는 풍부하고 저렴한 수력발전 덕분에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제조업이 선호하는 입지다. 이곳에서 태양전지의 원재료인 폴리실리콘과 웨이퍼를 만들고 배터리의 주요 부품인 동박을 만든다. 특히 중국이 폴리실리콘과 웨이퍼의 거의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자 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말레이시아에서 태양광 원재료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게 특히 중요하다. 이화여자대학교 최용상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과거 엘니뇨 때마다 말레이시아 사라왁주는 강수량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혹시 가뭄이 심해진다면 수력발전이 감소할 수 있고, 이는 곧 태양광과 배터리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탈탄소 전환에 있어 미국의 리더십, 그리고 태양광과 배터리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무시할 수 있는 리스크가 아니다.
폭염과 같은 이상 기상 현상은 기후위기의 물리적 리스크라 할 수 있다. 언급한 사례가 다소 과장된 리스크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점점 리스크는 커져가고 있고, 언급한 지역뿐만 아니라 지구상 어디든 예외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최근 코로나19와 같은 이례적인 일이 발생하면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고,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경험했는데, 발생하기 전에 이를 예측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단지 발생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을 인지할 수 있을 뿐인데, 기후위기의 물리적 리스크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최대한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노력이 중요하긴 하나, 기후위기가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에 진짜 중요한 것은 '대응하는 속도'이다. 폭우 때 계곡의 물이 어느 순간 갑자기 불어나기 때문에 신속하게 대피해야 하는 것처럼 물리적 리스크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기 전에 탈탄소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기온상승을 억제하여 최대한 리스크 발생을 지연시키는 것만이 최선이다. 다시 말하면 폭염이 심해지는 지금, 탈탄소 전환의 핵심인 재생에너지, 배터리 등에 더욱더 투자해야 한다. 그것이 곧 대폭염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투자법이다.
☞은기환 한화그린히어로펀드 책임운용역은
은기환 운용역은 2008년 브이아이자산운용에 입사하여, 트러스톤자산운용을 거쳐, 현재 한화자산운용에서 상장주식에 투자하는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기후위기대응, 에너지전환에 집중한 기후투자를 하기 시작했으며, 2020년 한화그린히어로펀드를 기획하여 출시하였으며, 책임운용역으로서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한화그린히어로펀드는 태양광, 풍력, 전기차, 이차전지, ESS, 수소, 히트펌프 등 기후위기대응산업에 투자하는 펀드로서, 전 세계 상장주식에 투자하는 펀드이다. 기후위기대응을 위한 에너지 전환은 수십년 이상 계속될 것이며, 금융시장의 기후리스크는 점점 커질 것이므로, 연금과 같은 장기운용자금에 특히 적합한 펀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