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TalkTalk】플라스틱 거래소와 탄소먹는 자판기

2023-05-24     박란희 chief editor

안녕하세요. 한주가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지나갑니다. 차분히 앉아서 원고를 쓸 시간을 확보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네요. 그럼에도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나라도 붙잡고 있어야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다는 저만의 철학을 갖고 있기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글쓰기를 강제로 하게 만들어주는 뉴스레터와 구독자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만의 임상경험이지만, 글쓰기는 정말 치유효과가 높습니다. 스타트업 대표의 상당수가 멘탈에 문제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나마 제가 잘 버티는 건 글을 쓰는 직업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CDP의  플라스틱 공시, 의미는?

이번 주에 먼저 전해드릴 소식은 CDP의 ‘플라스틱 공시’가 도입되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될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CDP는 지난 4월 올해부터 최초로 플라스틱 사용 공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원래 CDP는 설문지 형태의 주관식 답변을 기업이 자발적으로 작성해야 하는데, 플라스틱 설문지에는 기업의 가치 사슬, 직접 운영, 공급망 및 제품과 서비스 운송 등을 둘러싼 플라스틱 매핑에 관한 질문이 포함될 예정입니다. CDP는 또한 기업들에게 플라스틱 관련 리스크가 무엇인지, 플라스틱 폐기물을 어떻게 측정하는지, 폐기물 감축 및 재활용 목표가 무엇인지 등을 공개하기를 원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생산, 포장, 기타 활동이 플라스틱과 어떻게 관련돼있는지 묻고, (처음 생산되는) 버진 플라스틱과 재활용 혹은 산업용 플라스틱의 양을 추적합니다. 결국 탄소와 마찬가지로 플라스틱 데이터에 대한 글로벌 차원의 데이터 수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CDP는 올해 화학, 패션, 식음료, 화석연료 및 포장산업 등 플라스틱과 관련된 영향력이 큰 기업부터 설문조사 참여에 초청했습니다. 거대 기업의 플라스틱 사용 데이터가 추적되고, 투명하게 보고되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탄소배출권 시장에서 탄소 크레딧이 거래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플라스틱 크레딧이 거래되는 시장이 만들어지게 될까요? 그린비즈에 따르면, 탄소시장만큼 큰 시장은 아니지만 이미 플라스틱 거래소 시장은 작은 규모이지만 만들어져있습니다. 필리핀의 펩시코, 콜게이트-팔몰리브, 유니레버, 네슬레 등은 비영리기관인 플라스틱 신용거래소(Plastic Credit Exchange)를 통해 ‘플라스틱 중립’을 추구해오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은행(Plastic Bank)’ 혹은 ‘리퍼포스(RePurpose)’ 등에서도 플라스틱 크레딧을 판매합니다. 자발적 탄소시장의 양대 메이저기관 중 하나인 베라(Verra)에서도 플라스틱 수집을 전 세계적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플라스틱 크레딧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플라스틱 크레딧이 생겨나면, 플라스틱이 줄어들까요? 탄소상쇄시장에 대한 비판이 플라스틱 거래시장에도 똑같이 주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결과는 한참 뒤에나 나오겠지요. 어찌됐든 엄청난 영향을 지닌 CDP에서 플라스틱 공시를 통해 거래를 위한 기초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인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 유럽연합에서는 재활용 포장재 의무화 법안으로 인해, 재활용 원료를 구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거든요. 재활용 플라스틱 가격이 버진 플라스틱 가격보다 더 비싸지면서, 청량음료 업계에서는 “우리는 식음료로 쓰이기 때문에 다른 재활용 부문과 다르다. 페트병 우선 수거권을 달라”고 EU에 로비를 했으나 거부당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규제가 시장의 룰을 정하게 되고, 이러한 규제가 강화되면 강화됐지 더이상 느슨해질 것 같지는 않으니, 그런 점에서 플라스틱 크레딧의 미래를 규제기관에서 쥐고 있는 건가요?

 

EU, 미판매 의류 폐기 금지?

ESG를 공부하면 할수록 규제가 산업의 방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으며, 규제 따로, 비즈니스 기회 따로 접근할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강의에서 “ESG는 규제에 대한 리스크 대응이면서, ESG를 잘 해나가다보면 새로운 사업의 기회이자 경쟁력이 된다”고 들어왔는데요. 최근의 흐름을 보면, 그냥 ESG는 규제가 만들어가는 산업이며, 이 규제는 산업의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미래에 다가올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현재 ESG 경영을 잘하고 있으면 어느날 규제가 다가왔을 때 모범생이 되는 게 아니라, 규제는 현재진행형이며 사업적 기회는 기회가 아니라 그냥 ‘디폴트 옵션’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예를 들어, 지난 13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즈에서 보도된 기사를 하나 소개해드리면 이렇습니다. 유럽연합에서 팔리지 않은 의류를 폐기하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EU 회원국에서는 EU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섬유산업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억제하기 위해 미판매 의류 폐기 금지를 지지했습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따르면, 매년 거의 600만톤의 섬유가 버려지는데 이 중 4분의 1만 재활용됩니다. 이번 금지정책에 대해 에마뉘엘 마크로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에서 너무 많은 환경 규제 때문에 경제까지 억누른다”며 “규제 일시 중지”까지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FT에 따르면, 영국 버버리는 2018년에만 2860만파운드 어치의 미판매 상품을 태웠는데, 이러한 관행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강력한 반발이 터져나온 후 중단됐습니다. 명품이나 디자이너 브랜드의 경우 재고가 암시장에 떠돌아다닐 경우 브랜드 가치가 손상되기 때문에 불태워버리는 경우가 많지요. 특히 유럽에서는 온라인 판매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섬유와 신발 등 미판매 소비재의 파괴가 광범위한 환경문제로 커졌다고 합니다. EU 집행위원회는 일단 폐기 금지까지는 요청하지 않았고, 대신 모든 대기업들에 대해 폐기된 재고의 양을 보고하도록 요구하는 것으로 절충했습니다. 미판매 제품의 재활용이 의무화되면 의류산업의 밸류체인, 제품의 디자인, 소재 등 상당히 많은 부분들이 바뀌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탄소먹는 자판기의 등장

일본의 '탄소 흡수 자판기'/ NHK 홈페이지 캡처

마지막으로 ‘아! 이런 일도’라는 흥미로운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블룸버그에서 나온 기사인데, 이미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서 먼저 소개되는 바람에 우리나라에서도 기사화가 되었네요. 일본의 대표적인 음료 제조업체인 아사히그룹홀딩스의 청량음료부분은 다음달쯤 ‘탄소 흡수 자판기’를 시험 도입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아니 어떻게 자판기가 탄소를 흡수한다는 것일까요? 자판기 하부에 분말 형태의 흡수재를 넣어 CO2를 빨아들이는 것인데, 아사히음료는 자판기 사용 전력으로 인한 CO2 배출량의 최대 20%를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하는 자판기’로 특허 출원까지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아사히음료가 자체 개발한 흡수재 분말은 자연유래 광물을 원료로 하는데, 일반 흡수재 대비 9배의 흡입력을 가진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탄소 흡수(포집)하는 콘크리트는 봤지만, 탄소 포집 자판기는 처음이네요. 탄소를 흡수한 분말은 향후 지자체나 기업과 연계해 비료나 콘크리트 등에 배합해 산업용 원료로 재활용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탄소 먹는 자판기는 다음달부터 관동, 관서 지역에서 시범 운영되며, 실내나 지하철 역사 등 탄소 농도가 높다고 예측되는 장소에 30대를 설치해 탄소 흡수량과 흡수 속도를 검증한다고 합니다. 
참, 신기한 세상입니다. 5월인데 벌써 한여름처럼 덥네요. 이번 한주도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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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란희 대표 &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