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이어 일본도 ‘2050년 넷제로’... 한국만 쏙 빠지나
일본도 ‘2050년 탄소배출 제로(Net-zero)‘를 선언할 예정이다. 일본경제신문에 따르면, 스가 요시히데 일본총리는 24일에 있을 첫 의원 연설에서 이 같은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2050년까지 모든 탄소 배출량을 순제로(0)로 줄이는 방안을 발표하고 재생에너지 활성화 방안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일본 정부는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탄소 배출 제로를 달성하겠다며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며,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 80% 감축을 선언했었다. 하지만 이번 넷제로 선언을 통해 100%로 목표치를 늘리며 획기적인 변화를 줬다. 탄소 배출과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주력 전원'으로 규정하고,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 수급체계 전환을 추진하기로 했다.
일본경제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그동안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국이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일본이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잇따랐다. 올해 초 한국의 그린뉴딜 선언에 이어 최근 중국도 유엔총회 연설에서 "2060년 이전에 실질 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겠다"고 표명하며 일본 내에서도 ‘명확한 장기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일본 환경 NGO인 키코 네트워크 히라타 기미코 국제 이사는 "이것은 중요한 진전"이라며 "국내 정책 결정과 기업 및 금융 기관에 한 단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의 압박도 일본의 넷제로 선언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들은 꾸준히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며 석탄 금융 투자를 줄여나가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투자자들의 압박은 주요국들이 줄줄이 2050년 넷제로 선언을 하도록 이끌었다. 2017년 기준 일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2억 8900만톤으로 세계 5위 온실가스 다배출 국가다. 이 때문에 일본은 전 세계적으로 ‘기후악당’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아직 석탄발전 의존도 높은 일본
넷제로 선언으로 탈석탄 속도 빨라질까
다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탈석탄’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할 것으로 예측된다. 재생에너지 비율을 늘리겠다고는 했지만, 일본의 2030년 에너지 계획에 따르면 석탄·석유·가스 의존도는 56%에 달한다. 반면 재생 에너지는 발전량의 22~24%, 원자력은 약 22~20%를 차지한다.
일본 정부는 높은 석탄발전 의존도로 완전한 결별엔 다소 소극적이었다. 작년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를 제시할 당시 석탄발전소 폐지 방안도 제안됐지만, 경제 전문가의 반대로 인해 이 같은 내용이 담기진 않았다. 일본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탓에 탈석탄 선언 대신 “의존도를 가능한 낮춘다”는 모호한 표현만 쓰였다. 대신, 탄소 포획과 저장장치 사용으로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2050년 넷제로라는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하면서 구체적인 퇴출 계획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일본의 환경단체들은 구체적인 탈석탄 퇴출 시한이 설정되지 않으면 2050년 넷제로 달성은 어렵다고 보고 있다. 뉴클라이머 연구소의 기후 정책 연구원인 타케시 쿠라모치는 "2030년까지 석탄 비중을 26%로 줄이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비효율적인 석탄발전소를 폐쇄해야 한다"며 "석탄 발전량 감축은 정부가 논의해온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석탄 발전량을) 26%보다 더 줄여 산업부문 전체 배출량을 줄이는 게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발표 이후 탈석탄 움직임이 빨라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키코 네트워크 히라타 기미코 이사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발표했기 때문에 석탄발전의 단계적 폐지 추진이 더욱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도 중국도 넷제로 선언했지만
아직 소극적인 한국 정부
한국 또한 전 세계적으로 ‘기후악당’으로 불리고 있다. 2017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1000만톤으로 세계에서 11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국회는 9월 24일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안’을 의결하며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적극 상향하고, 2050년 온실가스 넷제로를 목표로 책임감 있는 장기저탄소발전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반해 정부의 움직임은 소극적이다. 전 세계 65개국이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반면, 아직 한국은 정책적·기술적·비용적인 측면에서 넷제로를 달성하기 어렵다며 공식선언을 하지 않은 상황이다. 더불어 올해까지 UN에 제출해야 하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계획(NDC) 갱신안에도 ‘2017년 배출량(7억910만톤)보다 24.4% 감축’이라는 소극적인 목표만을 담았다. 2030년에는 5억3600만톤만 내뿜겠다는 뜻인데, 이는 2030년까지 단 1억 7302만톤만 감축하겠다는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의 UN 연설에서도 이 같은 입장이 드러났다. 문 대통령은 제 75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포용성이 강화된 국제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선진국이 수백 년, 수십 년에 걸쳐 걸어온 길을 산업화가 진행 중인 개도국이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선진국 중심의 온실가스 저감 목표를 개도국들이 급격히 따라잡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이를 상쇄할 선진국들의 포용적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국내 외 환경단체들로부터 ‘한국의 기후 악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 같은 견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중국과 일본의 연이은 넷제로 선언으로 한국 또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 일본을 의식한 정부가 올해 말까지 제출해야 하는 2050년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에 ‘넷제로’를 삽입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