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10곳 중 6곳, "감축투자 안한다"...3차 온실가스 배출권 앞둔 기업들 의지 '반토막' 이유는?

대한상공회의소 배출권 거래제 참여기업 364개사 대상 설문조사 결과 발표 감축 투자 아이템 부족하고, 감축기술 지원 없어 투자 필요성 적어

2020-10-27     박지영 junior editor

“온실가스 감축하려 해도 기술이 없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에 참여한 기업 10곳 중 6곳은 “온실가스 감축 투자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배출권거래제 참여기업 364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2015년 도입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벌써 내년 3차 시행시기(2021~2025년)를 앞두고 있지만, 궁극적 목표인 ‘온실가스 감축’에 가닿지 못하고 있다.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투자 계획 여부/대한상공회의소

초창기 배출권 거래제 시행 때만 해도 기업들의 의지는 높았다. 대한상의는 배출권거래제 계획 기간마다 매번 참여 기업의 대응실태를 조사했는데, 1차 계획기간(2015~2017년)에는 10곳 중 7곳(76.3%)이, 2차 계획기간(2018~2020년)에는 10곳 중 6곳(62.9%)이 온실가스 감축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올해 투자계획을 가지고 있는 기업은 10곳 중 단 3곳에 불과했다. 온실가스 감축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힌 기업은 364개사 중 132개사(36.3%) 뿐이었다. 2차 계획기간에 비해선 42.2%, 1차 계획기간에 비해선 52.4% 감소한 수치다. 5년 새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기업 의지는 반 토막이 났다.

내년부터 적극적인 온실가스 감축시기에 들어서지만 기업들은 쉽사리 감축 투자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지난 9월 정부는 ‘3차 배출권 할당계획’을 발표하며 2차 계획기간보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4% 줄이고, 유상할당 비율을 3%에서 10%로 확대하면서 ‘오염자 부담원칙’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의 감축 부담은 더욱 커졌음에도 대응 계획을 세우는 기업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투자하려 해도 아이템 없어...

중장기 비전 빈약해 감축 의지 '반토막'

감축투자 계획 없는 이유/대한상공회의소

“감축 투자 아이템이 부족하다.”

절반이 넘는 기업(59.1%)은 계획을 세우고 싶어도 투자할만한 아이템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한상의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이템 부족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91개 기업(25.1%)은 1·2차 계획기간에서도 투자할 기술이 없었다고 밝혔다. 신기술 개발이 더뎌지면서, 23개의 기업(6.5%)의 기업은 온실가스 감축에 투자하는 대신 차라리 배출권 구매를 선택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감축 기술 지원에 대한 중·장기적인 비전 없이 단순 투자에만 급급하다는 점이다. 한 제조업계 관계자는 "배출권 거래제 1ㆍ2차 계획기간 동안 꾸준한 투자를 통해 동일 업종에서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효율을 갖췄다"며 "온실가스를 더 감축하려면 추가적인 감축 기술의 개발과 상용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아이템이 나오지 않으니, 투자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배출권 거래제 기본계획을 살펴봐도 정부의 기술 개발 로드맵이 빈약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온실가스 감축설비 설치, 관련 기술 개발 등 사업에 대해 금융‧세제지원 및 보조금 지원’(1차 기본계획), ‘감축기술개발 등 친환경 투자 지원 확대’(2차 기본계획)‘ 등 자금 투입 측면으로만 접근해왔다. 3차 계획기간에 들어와서야 해외 기술 조사 및 국내사례 공유를 통한 감축기술 발굴 지원 및 전문 인력 양성 등 종합적으로 접근했지만, 여전히 중장기 로드맵은 확인할 수 없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올해 1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제1차 계획기간의 성과 분석’ 보고서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원천기술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기업들이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기틀을 다져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110개(30.3%)사는 3차 계획기간에 ‘온실가스 감축기술 개발 및 보급’에 앞장서달라고 당부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2030년 국가 감축목표 수립 당시 계획한 온실가스 감축기술의 발전 수준을 점검하고 체계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5대 주요 기간산업(철강·석유화학·시멘트·반도체·디스플레이) 협회 또한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 제2차 산업계 토론회'에서 “온실가스 감축·흡수기술 개발과 적용을 담은 종합적인 로드맵을 장기 저탄소 발전 전략에 포함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출렁이는 배출권 가격에

기업들 "대응 계획 세우기 힘들어"

1·2차 계획기간 배출권 거래제 대응 애로사항/대한상공회의소

한편 지난 1.2차 계획기간 중 기업들이 가장 고충을 겪었던 부분은 ‘배출권 가격 급등락’(25.5%)인 것으로 나타났다. 배출권의 유동성도 부족했다(9.5%)는 의견도 궤를 같이 한다. 배출권 가격은 2015년 1월 8600원으로 시작돼 급등락을 거듭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4월까지는 4만원대로 급등했다가 8월에 1만원 후반 대까지 급락했고, 최근 2만원 중반대로 다시 오른 바 있다.

3차 계획기간을 앞두고 환경부는 배출권 가격의 안정성과 유동성 부족을 잡기 위해 할당대상업체 외 금융기관 등 제3자를 투입하겠다고 밝혔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배출권 가격의 불확실성을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6개 기업(7.3%)은 배출권 가격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감축 투자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지웅 부경대 교수는 “배출권 가격의 변동성이 크면 온실가스 감축투자, 배출권 매매 등 의사결정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28.8%의 기업들은 3차 계획기간에 ‘배출권 가격 안정화’를 잡아달라고 답하기도 했다.

 

'감축만 강요해서 될 일 아니야'...

자금지원 및 인센티브 확대 요구

‘감축투자 자금지원 확대’(23.7%), ‘감축투자 인센티브 확대’(10.9%)도 기업들이 바라는 지점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선 생산 설비를 전면 교체하는 등 적지 않은 재원이 들어가지만, 유인책도 마땅하지 않아 막상 실행에 옮기기는 망설인다고 볼 수 있다. 

해외에서는 온실가스 감축 기술에 막대한 재원을 쏟아 붓고 있다. 유럽연합(EU)는 최근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기술 사업화에 약 100억유로(한화 13조4000억원)를 지원할 계획이다. 더불어 기술 사업화를 위한 혁신펀드를 신설해 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호주 정부 또한 10년 간 180억 호주달러(약 15조1600억원)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담은 ‘기술투자로드맵(Technology Investment Roadmap)’을 발표했다. 

김녹영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센터장은 “지난 1·2차 계획기간이 배출권거래제 시범운영 단계였다면 3차 계획기간부터는 본격시행 단계이므로 감축기술을 육성하고 배출권 가격을 안정화해 기업들이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기업으로부터 징수하는 배출권 유상할당 수익금이 매년 수천억원 이상이므로 이를 온실가스 감축기술의 개발·보급에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