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자연부채교환' 제도…자연보호·국가·금융권 ‘윈윈’할까
유럽투자은행, 올해 말부터 거래 시작할 전망…개도국 부채 부담 줄인다
유럽연합(EU)의 핵심 대출기관인 유럽투자은행(EIB)이 생물다양성 보호 활동에 나서면서 올해 내로 '자연부채교환(DNS, Debt for Nature Swap)' 제도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지난 21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이 전망했다.
자연부채교환 제도는 개발도상국에서 자연환경 보호를 위한 재정을 책정하면, 그 대가로 해당국의 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부채 부담을 줄이는 방식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다자간개발은행에서 현금이 부족한 정부에 신용 보증을 제공하고, 생태계 보호에 마련된 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자연부채교환 제도, 대규모 거래 가능성 높아져
현재 전 세계 금리가 급등하면서 개발도상국 국가의 부담도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현재 21개국의 개발도상국의 부채는 약 2400억 달러(약 311조8000억원)다.
가디언에 따르면 자연부채교환은 1980년대에 ‘생물다양성 분야의 아버지’라 불린 토마스 러브조이(Thomas E. Lovejoy)가 토대를 제시한 개념으로, 금융·국가·환경단체가 모두 합의할 만한 제도로 평가를 받았다.
최초의 자연부채교환 거래는 지난 1987년 세계자연기금(WWF) 및 국제자연보호협회(TNC)가 에콰도르 정부와 체결한 거래로, 이후 지난 35년간 약 140건이 성사됐다. 로이터통신은 자연부채교환의 누적 거래금액은 약 50억 달러(약 6조5000억원)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지난달 에콰도르 정부는 갈라파고스 군도의 해양 생태계 보호를 위해 오는 20년간 연간 약 1800만 달러(약 234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이에 스위스의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Credit Suisse)는 매입한 에콰도르 국채를 6억5000만 달러(약 8444억원) 상당의 ‘갈라파고스 채권’으로 전환하면서 전 세계가 주목한 바 있다.
크레디트스위스 외에도 미주개발은행(IDB), 미국국제개발금융공사(USIDFC)도 신용 보증을 제공하면서 갈라파고스 채권의 발행금리는 5.645%로, 에콰도르 국채 금리가 최소 17%인 데에 반해 낮은 수준으로 책정됐다.
유럽투자은행, 12개월 내로 거래 시작할 것
EU의 핵심 대출기관인 유럽투자은행에서도 자연부채교환을 시작한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시장이 크게 확대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유럽투자은행 대출 부문의 마리아 쇼 바라간(Mariah Shaw- Barragan) 이사는 ‘국가나 액수를 특정하면 채권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언급을 피했다.
유럽투자은행은 현재 채무 불이행 상태에 놓인 국가와는 거래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동시에 채권을 매입한 국가의 정부가 보유한 단기 부채를 약 10년 수준의 신규 부채로 대체하도록 도움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로이터통신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5~10개 지역에서 거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클 것으로 추정했다. 유럽투자은행의 쇼 바라간 이사는 빠르면 올해 말에서 늦어도 오는 2024년 초에 시작해, 향후 12개월 이내에 거래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밝혔다.
가디언과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생물다양성의 급격한 감소 추세를 막는 사안이 전 세계 지도자들에게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향후 자연부채교환 거래가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