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TalkTalk】 보험 대재앙, 삼성전자 보고서, 시카고 열지도
안녕하세요. 6월말부터 7월초까지 영국 옥스팜에 ‘기업 공급망 지속가능성 실사’에 관한 논의를 하기 위해 방문을 하고 왔습니다. 9월에 영국 옥스팜 관계자를 초청해 컨퍼런스도 할 계획인데요. 이래저래 뉴스레터를 못쓰고 있었습니다. 사실, 3년 동안 ESG 관련 기사를 쓰다보니 요즘 해외에서도 그렇고 국내에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뭔가 새로운 뉴스나 소식은 없고 업계가 좀 조용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저 또한 좀 지치는 감이 있습니다.
ESG 공시 대응을 하고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내는 것만이 ESG팀의 핵심업무는 아닐텐데, 어찌된 일인지 ESG 단톡방에도 사람들은 늘어나는데 예전만큼의 활력은 없어진 것 같습니다. ESG가 조직 내에서 내재화되어야 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ESG가 “마케팅화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기업이나 컨설팅, 금융 분야에서 ESG 업무를 총괄하는 분들과 대화를 많이 했는데, “기업 경영에 ESG가 통합(integration)되기보다는 겉돌거나 따로 노는 것 같아 걱정이다”라고 공통적으로 이야기합니다.
한번 묻고 싶습니다. 해당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나온 숫자(예를 들면 온실가스)의 의미, 이것이 제조원가에 어느 정도의 부담이 되는지 이걸 따져서 살펴보고 관리하는 기업이 많이 있나요? 그렇다면,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이러한 내용, 즉 해당 숫자가 가진 의미를 해석만 해줘도 될텐데, 100페이지 넘는 보고서에서 이런 해석은 좀처럼 찾을 수 없습니다. 맥락이 사라진 단편적인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요.
저도 CEO이지만, CEO는 기업의 재무 상태에 이득이 되거나 손해가 나는 상황이 되면 본능적으로 민감해집니다. 돈을 벌거나, 돈을 잃지 않거나(비용을 줄이거나) 해야 하니까요. 여러분의 ESG 조직은 돈 버는 영역(기회), 비용 줄이는 영역(리스크) 중 어디에 포커싱되어 있으신가요? ESG팀의 역할이 경영 지원 업무, 전략기획 업무, 리스크 대응(컴플라이언스) 업무, 신사업 개발 업무 등 너무 넓은 것도 이걸 처음 접하는 이들을 헷갈리게 하는 요소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포지셔닝할지 애매한 것이지요.
결국 이 업무는 CEO나 의사결정자의 업무가 맞는데, CEO는 단기적인 성과를 추구하는 반면, ESG 업무는 성격상 장기적인 성과이다보니 결국 ‘오너십을 가진 주인’ 말고는 신경쓸 필요가 없게 됩니다. 수해가 아무리 터진다고 하더라도, 지자체 공무원들의 업무에 ‘예방’이라는 업무가 중요 KPI에 없거나 이 업무가 최고 우선순위가 되지 않는 한, 10년이 지나도 대부분의 업무는 ‘수해 대응’에 포커싱될 게 뻔합니다. 기업의 ESG 업무도 이와 비슷하지요.
업계를 더 깊이 알수록,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왜 이런 가치 지향적인 업무를 선택했을까’ 때로 부담스럽기도 하지요. ESG 업무는 업무의 특성상, 일정 정도 가치 지향성을 띠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러다보면 ESG를 이용해서 한탕 하는 사례를 보면 마음 한켠이 좀 괴롭기도 하고 ‘그러는 너는 잘하고 있니’ 묻는다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아 반성이 되기도 합니다.
캘리포니아, 16개 보험사 사업 철수하기도
너무 사변적인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는 최근의 ESG 이슈를 좀 퀵하게 전달하고, 제 생각을 곁들여보겠습니다. 먼저 ‘보험회사의 리스크 현실화’에 대한 내용입니다. 국내의 ‘재난상황 그 후’를 예측해보는 기사이기도 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최대 주택보험사인 올스테이트(Allstate)와 스테이트팜(State Farm)이 산불 위험 증가로 더이상 보험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동시에 스테이트팜은 “현재 보험 가입자에 대해서는 평균 28.1% 보험료를 인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캘리포니아뿐 아닙니다. 매년 허리케인과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를 반복적으로 입어왔던 플로리다에서는 지난 18개월 동안 무려 16개의 손해보험사가 사업을 철수했으며, 최근에도 파머스 인슈어런스그룹과 AIG 두 곳이 “플로리다에서 신규 주택보험 사업을 중단한다”고 밝히며 철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에서는 이제 허리케인, 홍수, 폭염, 가뭄 등 자연재해로 인해 손실이 날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나라는 수해가 나면 반복적으로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서 정부예산이 투입되거나 개인이 이를 해결해야 하지만, 미국에서는 주택보험을 통해 이를 해결해왔는데 이제 보험 가입이 거절되는 ‘보험 대재앙’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미국에서는 주정부에서 ‘재보험’을 가입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콜로라도주에서는 ‘공공보험사’ 설립을 투표에 부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즉 기업과 무관하지 않지요. 직원의 근무환경이 될 수도 있고, 소비자들의 이슈이기도 하니까요. 기업에서는 앞으로 자신들의 사업장에 대한 물리적 리스크를 매우 중요하게 파악해야 할 상황이 올 것입니다.
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기대 충족? 실망?
두 번째 주제는 삼성전자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국내에서는 팩트 위주의 기사(삼성전자 온실가스 1000만톤 줄였다, 재생에너지 사용량 65% 늘었다 등)가 보도되었는데,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카운터포인트 리서치의 얀 스트리야크 Associate Director가 블로그에 쓴 분석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그는 올해 삼성전자가 순환경제의 핵심 분야인 생산, 사용, 수명 만료에서 몇 가지 진전을 보였음을 설명합니다. ▲플라스틱 부품 재활용 수지 사용 3배 증가 ▲갤럭시 S23시리즈 볼륨 키, 사이드 키 등 28% 프리 컨슈머 알루미늄 스크랩으로 제작, 전면 스크린과 후면 커버에 22% 프리 컨슈머 재활용 유리 포함 ▲갤럭시 S23 포장박스 100% 재생지, 재활용된 어망 갤럭시 S23시리즈 6개 부품에 사용 ▲2022년 60만톤 전자폐기물 수집(9% 증가) 등입니다.
그는 “일부는 경쟁사보다 낫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며 “재활용 소재, 수리성(repairability)의 경우 갤럭시 S시리즈에 한정되는데, 삼성전자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A시리즈 스마트폰 환경 개선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재활용 소재 사용과 관련해서도, 구글의 픽셀 1/1 Pro는 100% 재활용 소재로 만든 알루미늄 인클로저를, 노키아 X20 5G는 100% 재활용 알루미늄과 65%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제작되었고, 페어폰4(Fairphone4)는 100% 재활용 플라스틱 후면 커버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그는 “삼성전자가 2022년 50톤 이상의 버려진 소재, 즉 폐어망을 재활용한 것과 관련해, 매년 폐기되는 64만톤에 비하면 이는 0.01%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훌륭한 이니셔티브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할까 생각한다”며 좋은 진전이기는 하지만 조금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재활용 소재와 관련해서는 추후 진척을 이뤄가면 되겠지만, 폐어망에 대한 지적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보통 기업의 홍보나 커뮤니케이션 PR담당부서에서는 마케팅과 홍보 차원에서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면 이를 강조합니다. 그러다보면 마치 그 사업이 해당 기업의 대표사업처럼 인식되기도 합니다. 삼성전자의 폐어망 재활용도 그런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폐어망 재활용 내용을 여러 군데서 보다보니 대표사업처럼 인식됐는데, 50톤에 불과했다니 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네요. 자칫하면 그린워싱으로 비난받을 소지도 있어 보입니다. 그린워싱 규제가 워낙 강력해지다보니, 이처럼 ‘부분이 전체처럼 커 보이는’(상충효과 감추기, hidden trade-off) 사항은 기업 내부에서도 매우 민감하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열은 공평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본 인상적인 내용 하나 공유하고 내용을 마칠게요. 저는 기후변화 대응뿐 아니라 앞으로 기후변화 ‘적응’이 매우 중요해질 것으로 봅니다. 저뿐 아니라 전문가들의 공통된 내용이고, 수년 전에 기후변화 공부할 때 네덜란드 사례를 봤던 기억이 이번 침수 사건을 겪으면서 또 떠올랐습니다. 이제 우리도 기후 적응시대를 본격 준비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와 관련해서, 시카고 기후환경 형평성 연구소(Chicago’s Office of Climate and Environmental Equity)의 고문인 키라 우즈(Kyra Woods)는 시카고의 ‘열지도(heat map)’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고 합니다. 시카고는 1995년 5일 동안 700명 이상이 폭염으로 사망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폭염이 매우 늘어나는 이 시기에, 이러한 열지도는 매우 중요할 겁니다. 미국 108개 도시지역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흔히 ‘레드라인’으로 불리는 지역의 표면온도는 약 2.6도로 다른 지역보다 5도(화씨) 높다고 합니다. 백인보다는 흑인, 라틴계가 많이 사는 지역입니다. 열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마존의 제프베조스펀드가 도심의 녹지공간 개선을 위해 4억 달러(약 5000억원)를 녹지공간 개선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는 ‘그리닝 아메리카 시티(Greening America’s City)’ 이니셔티브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도심에 더 많은 공원, 나무, 정원을 만듦으로써 폭염과 기후 영향에 대한 지역사회의 회복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입니다.
우리 기업의 사회공헌 사업이나 캠페인도 기후와 지역사회를 결합한 S(사회) 문제 해결에 좀더 집중해보는 건 어떨까요. 한주도 평안하세요.
※이 칼럼은 한주 전 수요일 발송되는 뉴스레터입니다. 칼럼을 좀 빨리 읽고 싶은 분은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참고로, 저의 들쑥날쑥한 뉴스레터를 읽어주시는 독자여러분께 너무 감사드리고 죄송합니다. 도저히 마감 없이 계속하다가는 너무 큰 신뢰 상실을 드릴 것 같아서. 저의 원고마감을 임팩트온 내부 스탭에게 부탁드렸습니다. 마감과 채찍질이 없으면 원고가 안나옵니다. 앞으로 2주에 한번씩 수요일에 안정적으로 출고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