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업계, 전기차 배터리 화재 대책 미비… 자동차 제조업체 비용 증가에도 영향

2023-07-31     이재영 editor

해양 선박업체들이 전기차 수송 시 발생할 수 있는 배터리 화재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고 지난 27일 로이터가 보도했다. 

보험업계 및 해상운송 업계 관계자들은 다른 물류업계에 비해 선박업계의 전기차 화재 대응 시스템이 미비하다고 지적했다. 

선박업계가 전기차 화재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 픽사베이

자동차 약 3000대 실은 화물선 화재... 원인은 전기차 배터리로 추정

일부 선사, 전기차 수송 거부도

지난 26일 네덜란드 해안을 지나던 화물선 프리맨틀 하이웨이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선원 1명 사망, 다수가 골절, 화상, 호흡기 손상 등 부상을 당했다. 해당 선박은 총 2857대의 차량을 수송 중이었으며, 그중 전기차는 25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네덜란드 방송사 RTL에 따르면, 불길은 전기차 배터리에서 시작됐다.

전기차 수송선 화재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2월 독일 폭스바겐 공장에서 미국으로 향하던 펠리시티 에이스호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다. 이 선박은 포르쉐, 벤틀리, 람보르기니, 아우디 등 전기차를 포함한 총 3965대의 차량을 수송 중이었다. 당시 로이터는 전기차 배터리에 불이 붙어 일반 소화 장비가 아닌 특수 장비를 동원하느라 진화가 늦어졌다고 보도했다. 자동차는 전량 소실됐으며, 이로 인한 피해 규모는 4억3800만달러(약 5602억원)에 이른다.  

이 사고 이후 노르웨이 선사 하빌라 크리스트루텐(Havila Kystruten)은 "배터리 화재 사고에 대한 적절한 안전 시스템이 준비돼 있지 않다"며 전기차, 수소전기차, 하이브리드차 등 배터리 차량 수송을 거부하기도 했다.

 

자동차 수송선, 고온 화재에 대응 어려운 구조…

보험업계, 다른 물류업계에 비해 선박업계 대응 뒤쳐져

자동차 운반선은 떠다니는 주차장과 같다. 선적된 자동차 지붕 위 공간은 1~2피트(약 30~60cm) 정도로 낮다. 자동차 사이 간격도 범퍼가 맞닿을 정도로 좁다. 전기차 화재 진압을 위해서는 배터리가 위치한 차량 하부에 물을 뿌려야 하는데, 비좁은 선내 공간에서는 보호 장비를 착용한 소방관들이 진압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배터리에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온도가 1000도까지 치솟는 ‘열 폭주(Thermal Runaway)’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러한 고온 때문에 화재 현장에 접근도 쉽지 않다.   

네덜란드 왕립 선주협회(KVNR) 대변인 네이선 하버스는 “선박업계 현행 규정으로 전기차 수송 시 화재 위험 대비가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언급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물류업계는 전기차 배터리 화재 위험에 대처하고 있지만, 해양 업계는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해 더욱 큰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해양안전청(The European Maritime Safety Agency)은 지난 3월 보고서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키는 주요 화물 유형에 리튬 이온 배터리가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선주들, 자동차 제조업체에 법적 책임 요구 움직임…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보험료 증가로 이어져

수송선 화재는 비단 선박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험중개업체 마시(Marsh) 전무이사 존 프레이지는 “선주들이 손실을 줄이기 위해 화재 원인이 되는 자동차를 추적, 해당 자동차 제조업체에 법적 책임을 물으려 하고 있다”며 “자동차 제조업체들도 이에 대비하기 위해 별도의 보험에 가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자동차 제조업체의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프레이지 전무는 보험회사가 선박 안전 시스템 강화를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개발 중인 안전 대책 초안에는 불길 진압을 위한 신규 화학 장비, 특수 방화 담요, 배터리를 관통할 수 있는 소방 호스 노즐, 전기차 분리 수송 등이 있다. 

해상 안전 규정을 제정하는 국제기구인 국제해사기구(The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는 “2024년 전기차 운송 선박을 위한 새로운 안전 지침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글로벌 전기차 산업에 대한 데이터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EV 볼륨(EV-Volumes.com)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은 총 8100만 대로, 이중 9.5%가 전기차다.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중국과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전기차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는 지난 4월 2032년까지 전체 신차 판매량에서 전기차 비중을 3분의 2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배출가스 규정 초안을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