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팜 인권실사 특집시리즈 ①】 유니레버와 20년 파트너십, 글로벌 톱 NGO 옥스팜의 공급망 지속가능성 전략
EU의 ‘공급망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이 유럽 법사위를 통과하는 등 의무화 흐름이 가시권으로 들어오면서, 국내 기업들 또한 대응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아직 해당 법안이 국내 대상 기업에 미칠 영향이 구체화된 것은 아니지만, 벌써부터 정부는 수출 대기업의 공급망 실사 대응을 위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나섰다.
이에 임팩트온은 글로벌 톱 NGO인 ‘옥스팜(Oxfam)’ 영국 지사를 찾아, 글로벌 기업의 공급망 지속가능 전략을 취재했다. 옥스팜은 8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NGO로서, 공급망 내 인권과 노동권 이슈를 선점하는 기관이다. 윤리무역이니셔티브(ETI) 공동 창립 및 이사회 멤버이며, 공급망 평가 및 감사 플랫폼 세덱스(Sedex) 공동창립기관, 국제노동기구(ILO) ‘Future of Work 위원회’에도 참여한다. 또 옥스팜은 매년 다보스포럼(WEF)에 불평등보고서를 발표하며, 글로브스캔과 서스테이너빌리티가 선정하는 NGO 순위에서 국제개발부문에서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연속 1위를 달성했다.
창간 3년을 맞는 임팩트온은, 오는 9월 14일(목) 옥스팜과 함께 글로벌 기업 공급망 실사에 관한 컨퍼런스를 개최하기에 앞서 옥스팜의 전략을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주
클레어 리사만(Clare Lissaman) 옥스팜 기업 자문 서비스 책임자 인터뷰
클레어 리사만은 옥스팜의 기업 자문서비스(Oxfam Business Advisory Service) 책임자다. 옥스퍼드대 출신으로 공정무역 컨설팅 관련 분야의 경험만 10년이 넘으며, Ethical Fashion Group의 이사를 맡고 있다. 과거에는 ‘The Decent Work & Labor Forum)’과 Fashion Revolution의 운영위원 등을 맡은 바 있다.
“감사 중심의 단기처방은 EU CSDDD 핵심 아냐…
포괄적 인권관리 체계 구축해야”
Q. 한국 기업들은 감사(Audit)와 컴플라이언스(Compliance)를 중심으로 인권 리스크 관리를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의 한계는 무엇이며, 옥스팜이 ‘Beyond Audit(감사를 넘어)’이라는 접근 방식을 추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업인권 관리 분야에서 ‘감사(Audit)’의 역할이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감사와 컴플라이언스 중심으로 갈 경우, 기업이 자사의 잘못된 관행은 돌아보지 않은 채 협력사의 문제를 조사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춰 정작 인권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못볼 수 있다. 특히 감사⠂컴플라이언스 관점에서 협력사와 직원들을 대하면, 이들이 압박감을 느껴 차후 문제가 생겨도 협력이 어렵게 된다. 감사의 역할은 ‘인권 이슈 파악’의 일부분으로 한정되는 것이고, 결국은 현장 직원 중심에서 이슈 파악→완화 → 처방(remedy) → 지속적인 인권영향 모니터링 → 인권 분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사이클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감사를 통해 (드러난) 인권 이슈를 시정 조치하더라도 같은 문제가 계속 발생할 수 있다.”
Q. EU의 공급망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 법안이 요구하는 것의 핵심은 무엇인가.
“EU의 CSDDD 법안이 요구하는 것은 결국 ▲기업이 포괄적인 인권관리체계를 수립하고 ▲자사가 지역사회 및 노동자에 끼치는 인권영향을 관리하라는 것이다. 감사와 컴플라이언스에 포커스를 맞춰, 좁은 시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포괄적인 관점에서 인권관리체계를 수립하면 법안이 요구하는 부분은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다.”
Q. 컨설팅 기관이 아닌 NGO에서 공급망 인권실사를 컨설팅하는 게 국내 기준에서는 매우 생소하다. 옥스팜의 기업 자문 서비스 팀에서는 무엇을 하는가.
“EU CSDDD를 기준으로 인권관리체계를 수립할 때 필수적으로 해야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형식적으로 만드는 ‘고충처리 매커니즘(Grievance Mechanism)’이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식이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찾아 실용적 솔루션을 제공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몇 명의 담당자에게 인권관리 업무를 일임해버리는 게 아니라, 기업의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인권관리를 내재화시키는 것이다. 인권 경영에 대한 조직의 의지가 있으면 생각보다 결과는 금방 따라온다. 옥스팜 기업 자문 서비스팀은 ‘노동자 중심(Worker Oriented)’의 접근방식을 강조한다.”
Q. 옥스팜의 ‘노동자 중심’의 접근방식이란 구체적으로 어떤것을 말하며,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기업이 ‘노동자 중심’의 접근방식을 활용하지 않을 경우, 공급망 현장에서 발생하는 중대 인권침해를 파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권 문제를 해결하고 유사사건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 때문에, 옥스팜은 실제 현장에서 노동자와 직접적으로 관여하는것을 가장 우선시한다. 이를 통해 실제 인권 영향을 파악하고, 공급망 협력업체 노동자의 권리 및 공정한 노동환경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성과 모니터링을 하려면 결국 노동자의 피드백을 받아야 하는데, 처음부터 노동자와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계획을 수립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공급망 인권 개선 사업을 위해서는 결국 노동자와의 신뢰관계 구축이 핵심이다. 이것이 결국 노동자와 기업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클레어 책임자는 이 대목에서 “1대1 인터뷰, 여성 그룹 인터뷰, 다대다 인터뷰, 직급별 인터뷰 등 다양한 인터뷰 방식이 있으며 장소 선정, 시각적 자료 활용 등 상황에 따라 세팅을 다양하게 바꿔볼 수 있지만, 이는 답변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며 “아무리 완벽한 인터뷰 방법론을 활용한다해도 노동자들이 인터뷰 이후에 상급자에게 불려가 무슨 답변을 했는지 밝혀야 한다면, 신뢰성 있는 답변이 나올 수 없기 때문에 현지 노동자와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Q. 수직적 관계 중심의 아시아에서 노동자 중심의 바텀업 접근방식이 통할까.
“아시아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급망 관리의 혁신을 불러왔던 린 생산방식(Lean Production, 인력이나 생산설비 등 생산능력을 필요한 만큼만 유지하면서 생산효율을 극대화하는 생산시스템)은 바텀업 접근방식 중심으로, 일본에서 처음 시작됐다. 이는 현장 노동자의 피드백 수렴을 통해 생산효율 극대화를 도모하는 방식이었다. 서양 기업들도 기본적인 거버넌스 구조는 수직적이다. 때문에 서양 기업들도 임직원 참여형, 커뮤니티 중심의 지속가능성 프로그램에 완전히 익숙하지는 않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옥스팜과 같은 NGO와 파트너십을 맺어 공급망의 노동자들과 신뢰관계를 쌓고 현장의 목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동남아에서 ‘포커스 그룹’ 중심의 노동자 참여형 사업을 오래 수행해왔고, 효과적인 노동자 관여를 이끌어내는 다양한 팁을 갖고 있다.”
Q. 일반적인 컨설팅기관에서도 개발도상국의 로컬파트너와 협력 관계를 맺고 공급망 인권개선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는데, 옥스팜이 이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기업들은 유엔이나 OECD 등의 인권 기준에 따라 감사 항목을 작성한 후에 협력업체를 방문해 각 항목의 부합 여부를 체크하는 방식으로 인권개선활동을 수행한다. 이 과정이 시스템화되어 있지만, 정말 민감하거나 심각한 문제는 잘 보여주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계약조항으로 인해 대부분 협력업체 시설당 반나절 정도 되는 시간만 할애하기 때문이다.
인권리스크 해결을 위해서는 좀 더 긴 타임프레임에서 협력사 관여가 필요한데, 그런 측면에서 옥스팜은 100여개국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오랜 역사를 통해 일회적인 인권 관리가 아니라 보다 지속적인 관리를 도와줄 수 있다. 예를 들면, 기업 인권관리 체계 수립과정에서 ▲지역마다 어떤 이해관계자와 관여하는 것이 좋은지 ▲노동자 관여의 단계별 프로세스는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진실성있는 노동자 피드백과 관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특히, 임금, 젠더(Gender), 빈곤, 아동노동 등 각각의 인권 이슈별로 사업을 수행해오고 있기 때문에, 기업의 중대인권 이슈에 따라 맞춤형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Q. 옥스팜은 장기적 관점에서의 인권관리체계수립을 강조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최근에서야 EU CSDDD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어 인권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단계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기업들이 감사를 넘어 장기적인 인권관리체계를 수립하는 데에 부담을 느낄 것 같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용이나 리소스적인 차원으로 봤을 때 단기적인 감사와 인권관리가 효율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안된 채 나중에 사태가 터지고 이를 수습하게 되면 훨씬 더 큰 손해를 보는 사례가 많다. 제대로 된 고충처리 매커니즘을 수립해, 임직원과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수렴하고, 이를 기반으로 인권 이슈가 중대 문제로 발전하기 전에, 근본적 원인을 발견하면 사건 수습을 위한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된다. 한국 기업들을 보니, 인권 분야에 대한 서약(약속)의 수준은 꽤 높은 편이며, 감사를 통해 데이터 수집과 측정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약과 측정 사이에 행동이 부족해 갭(Gap)이 있는 것 같다.
기업 입장에서 장기적인 관점의 ‘노동자 중심’ 인권관리체계를 수립하는 것이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기업의 근본적인 인권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유럽 공급망 실사법(CSDDD)의 요구사항도 자연스럽게 충족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Q. 유럽 기업들은 EU CSDDD 법안에서 언급하는 인권관리 사항들에 대해 어느 정도로 익숙한가.
“유럽의 경우, 영국의 현대판 노예법, 프랑스의 실사법 등의 인권 관련 법안들이 제정되어왔으며 이는 유럽 기업들이 인권개선행동에 나서는 주요 원인이 됐다. 굳이 법안이 아니더라도, 글로벌 기업의 경우 윤리적 행동강령부터 공정무역까지 약 20년간 인권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기업-NGO-노동조합으로 이뤄지는 3자협력을 자주 경험해본 편이다. 이번에 EU의 CSDDD 법안이 제정된 이유도 들여다보면, 많은 유럽기업들은 높은 수준의 인권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공정한 경쟁의 장에서 모든 기업들이 인권관리를 해야한다고 생각을 많이 해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EU CSDDD는 모든 기업이 인권관리를 수행하도록 하기 위한 ‘최소기준치’에 해당된다. ‘최대기준치’는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Q. 글로벌 공급망의 인권 관리 업무를 하면서 가장 힘들게 느껴졌던 부분은 무엇이 있는가?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기업 구성원들에게 포괄적 인권체계관리 수립의 필요성을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만약 임원들이 이에 대한 필요성을 이해할 경우, 일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다. 반면, 기업의 구성원들이나 협력업체 공장주들이 단순히 해야하기 때문에 인권관리 프로세스를 수행하고 실질적인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적다면 인권 개선이 미진할 수 밖에 없다. CEO와 임원 차원에서 인권관리체계 수립의 필요성을 명확히 인지하고 조직 차원에서 드라이브를 건다면, 현지 파트너, 툴킷(Toolkit) 등의 방법론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금방 가능하다.”
클레어 책임자는 이 대목에서 “옥스팜은 영국에서만 해도 600여곳의 재활용숍과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기에 비즈니스 관점을 이해하고 있어서 비영리적 관점만 가진 다른 NGO와 차별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Q. 옥스팜은 ‘비하인드 더 브랜드’, ‘비하인드 더 바코드’와 같은 대중 캠페인을 통해 기업들의 주요 ESG 이슈를 부각시켰다. 옥스팜은 기업들의 실제적인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활용하는가.
“캠페인을 통해 기업 당사자들이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강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많은 기업들이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파트너를 찾게되고 옥스팜이 여러 추천 행동계획을 제시하기도 한다. ‘비하인드 더 바코드’ 캠페인이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옥스팜이 기업들의 문제점을 부각시켰기 때문만이 아니다. 많은 NGO에서 문제를 부각시키기만 할뿐, 막상 기업 입장에서는 문제가 뭔지 알아도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캠페인에서는 기업의 주요 인권문제를 부각시키면서 동시에 개선점에 대한 실질적인 부분을 이야기했다. 기업이 서약하면, 옥스팜이 개선을 위한 단계별 행동을 조언해줬다. 기업의 인권 개선 우수사례를 공유했고, 지금은 기업이 서약에 따라 취한 인권개선 행동의 사후 결과 모니터링 과정을 수행중이다.
특히 옥스팜은 기업자문서비스팀을 통해 기업이 실질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Q. 기업들이 기업자문서비스팀을 찾는 가장 큰 동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보통 기업자문서비스팀을 찾는 기업들은 자사의 특정 인권 리스크를 파악하고 이를 줄이기 위한 행동의 필요성을 알고 있지만, 실제 행동을 위한 내부 전문성이 부족한 곳들이 많다. 기업들은 옥스팜과 함께 단계별 행동계획을 수립하고 싶어한다.”
Q. 아직 국내에서는 기업의 어느 팀에서 공급망 인권실사를 담당해야 하는지도 고민이다. 옥스팜이 기업과 협력할 때 주로 어떤 팀과 커뮤니케이션하는가.
“유럽도 기업의 거버넌스 구조에 따라 다르다. 최근 많이 보이는 형태는 지속가능성최고책임자(CSO)가 직속으로 작은 규모의 핵심 지속가능성팀을 구성한 후에, 품질/구매/공급망 등 다양한 부서에 지속가능성과 인권업무의 역할을 분담시키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회사의 거버넌스에 따라 HR팀, 구매팀, ESG팀 인권 담당 등 다양한 팀의 구성원과 커뮤니케이션 한다. 예전과 달리 최근에는 지속가능성최고책임자(CSO), 기업 인권 디렉터 등 임원급 레벨에서 인권을 관리하는 포지션이 생기고 있기에, 기업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더 수월해졌다.
인터뷰 진행=박란희 대표 & 편집장
정리= 송선우 editor
☞2023 옥스팜Ⅹ임팩트온 ESG 컨퍼런스를 개최합니다.
글로벌 기업, 인권실사 어떻게 대응하나(유니레버와 옥스팜 사례를 중심으로)
일시: 2023년 9월 14일(목) 오후 2시~5시
행사안내: https://www.oxfam.or.kr/esg-conference-2023/
신청페이지: 컨퍼런스 참가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