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ESG 이슈 〈전환 비용만 400조? 文 대통령 넷제로 선언에 기업들은 ‘덜덜’ 〉

2020-11-02     박지영 junior editor

경총,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 기업 실태조사 결과」 발표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2050년 탄소중립(넷제로)’을 최초로 선언하자 환경단체들의 환영 논평과 재계의 우려가 함께 쏟아졌다. 문 대통령의 선언에 대해 엇갈린 반응이 나오는 것은 한국이 국제사회의 탄소 감축 추세에 발맞춰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한편, 유럽·미국과 달리 제조업 비중이 높은 산업구조상 재계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넷제로 선언은 올해 말까지 UN에 제출해야 하는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에 담길 예정이다. 국제 사회에 제출하는 보고서에 넷제로가 명시되는만큼, 감축 규제는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설문조사를 통해 기업들의 우려를 우회적으로 표했다. 경총은 국내 기업 119개를 대상으로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 기업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72.9%가 “환경규제 강화 때문에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답했다. 넷제로 선언이 현실화 되면 재계가 감당해야 할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울 땐 ‘현재 우리나라 기업의 경제, 사회적 상황을 고려’(53.8%)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또한 ‘기업 경쟁력 강화 및 신성장 동력 도출 등 미래 경쟁력 확보가 필요하다’(41.2%)고 답변하기도 했다. 응답 기업의 95%가 ‘현재 우리나라 기업의 상황과 국가 경쟁력을 고려한 감축 목표를 세워야 하는데, 이번 넷제로 선언은 이런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목표’라고 본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에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하향된 감축 목표가 현실적이라고 답했다. 응답기업의 71.2%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50% 감축 목표가 적절하다”고 응답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상 국제 수준의 목표 달성이 어렵기 때문(69.7%)”에 목표를 하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현실성 있는 정책마련(44.1%)’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달라고 답했다. 이어 ‘기업이 원활하게 참여할 수 있는 제반여건을 조성해달라(39.8%)’ ,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신기술 개발 및 보급에 나서달라(15.3%)’고 요청했다. 

 

"정부 `저탄소발전전략` 시행시 기간산업 400조원 비용폭탄 맞는다"

주요 국책 연구기관에 따르면, 재계가 부담해야 될 부담은 약 400조원에 달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난 10월 26일 철강·석유화학·시멘트·반도체·디스플레이 등 5대 주요 기간산업 협회는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 제2차 산업계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 모인 전문가들은 "지금 수준의 대책으로는 국내 제조업의 생존이 위태롭다"며 "저탄소 사회로 전환을 위해 필요한 비용을 정확히 추정하고 재원마련 등의 대책 논의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발표자로 나선 정은미 산업연구원 본부장은 "철강·석유화학·시멘트 3개 업종서만 최소 400조원이 넘는 전환비용이 필요할 것"이라며 "여기에 수명이 남은 기존 설비의 매몰비용까지 고려한다면 비용은 훨씬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임재규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또한 "철강·석유화학·시멘트 산업 등은 자동차, IT, 건설 산업 등에 중간재를 공급하는 소재산업이기 때문에 이들의 경쟁력 저하는 국내 제조업 전체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제조업 비중이 2번째로 높은 국가로 다른 국가들보다 치밀한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동준 연세대학교 교수는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 에너지와 자원을 수입해 제품을 만들고, 이를 다시 해외로 수출할 수 있는 것은 생산효율성을 극대화해 원가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라며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과정에서 과도한 비용부담은 결국 국내 기업이 이룬 원가경쟁력을 무너뜨려 고용 감소는 물론 제조업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저탄소 사회 진입으로 제조업이 감당해야 할 전환비용을 정부가 함께 감당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EU는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10년간 1300조원의 재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제조업 대신 서비스업이 기간 산업을 구축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탄소 배출 저감 부담이 덜한데도 막대한 재원을 투입하는 것이다. 주요 업종 협회 관계자는 "LEDS에는 온실가스 감축·흡수기술 개발과 적용에 있어서 종합적인 로드맵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국, 중국, 일본 등 제조업에서 우리와 경쟁 중인 국가들의 전략을 참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산업연구원 “제조업 중심 한국에 맞는 저탄소화 전략 짜야”

산업연구원은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내 현실을 고려한 장기 전략을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연구원은 25일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을 산업 전환의 기회로 활용해야' 보고서에서 "글로벌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기술적 불확실성과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한 한국형 장기 비전과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6.9%로, 전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제조업 비중이 높다. 특히 철강의 코크스, 석유화학의 나프타 사용 등 온실가스 배출량이 큰 공정의 경우 대체 방안이 없어 기업들도 난감해하는 부분이다. 환경부가 발표한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 확정치에 따르면 제조업과 건설업에서 연료 연소로 인해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국내 온실가스 총 배출량 중 약 30%를 차지한다. 배출량이 많은만큼, 감축 부담도 가장 크다. 환경부가 2018년 발표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계획(NDC)에 따르면, 산업부문은 2030년까지 38억2400만톤을 감축해야 한다. 석탄 발전이 포함된 전환부문(5억7800만톤)과 공공부문(1억5700만톤)보다 더 큰 감축 의무를 지닌 것이다.

산업연구원은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전기·전자가 주력 산업인 국내 여건에서 서비스업 비중이 높은 다른 국가의 저탄소화 경로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우리 산업구조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 전략”이라며 제조업에게 일방적인 감축만을 요구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미 국내 주력산업의 에너지 효율성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인센티브 등 유인책 없이 감축만을 강조하면 기업들이 오롯이 비용 부담을 지게 되고, 비용 부담에 따라 해외로 사업을 이전하는 ‘탄소누출’도 우려된다는 설명이다. 산업연구원은 “생산비용을 낮추고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한계돌파형 기술혁신을 통해 세계 5위권의 제조업 강국으로서의 확고한 입지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