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talktalk】 ESG 공시, 모호함은 언제 해결되나

2023-09-04     박란희 chief editor

안녕하세요. 요즘 저를 만나는 사람들은 두 가지를 많이 묻습니다. ESG 분야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있는 분들은 “요즘 뉴스에도 ESG 뉴스가 거의 안 나오고, ESG 이슈가 죽은 것 아니냐”고 묻습니다(ESG 이슈는 안 죽었습니다. 이 기사를 참고하세요). 

현업에서 ESG를 하는 분들은 “ESG 공시가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묻습니다. 마치 ESG 생태계에는 ESG 공시 의무화 이슈만 있는 것처럼, 온통 ESG 공시에 관한 이야기가 빙글빙글 돌고 있습니다. 지난주인가는 밤에 잠도 안와서 6~7개의 회계컨설팅법인의 ISSB(국제회계공시기준위원회) 공시초안에 관한 웨비나를 모조리 다 봤습니다.

IFRS 홈페이지

그리고도 궁금함을 이기지 못해 평소 친분이 있던 회계학과 교수님을 찾아가서 ESG 공시기준이 재무회계에 적용되는지, 적용되면 어떤 형태일지, 어떤 내용이 어려운 점이 될지 등등을 물어보고 2시간 개인과외까지 받았습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이제 막 발걸음을 내딛었지만, 재무회계처럼 ESG가 통일된 회계기준으로 사업보고서에 특정 항목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매~~~우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금융위가 9~10월에 발표하기로 한 ESG 공시기준 의무화 방안도 연말까지로 미뤄졌다는 보도가 나왔듯이, 금융위의 고민 또한 상당히 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공시 의무화 정부 발표 늦어지고, 내부 데이터 관리 기준 통일성 없어

‘Vague(애매모호함)’. 현 상황은 이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만난 대기업 ESG담당 임원한테 ESG 공시 관련 진행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몇가지 포인트가 있었습니다. 

첫째, 정부 발표가 너무 늦어져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2025년 의무화를 하려면 적어도 2024년에 한번은 시뮬레이션해봐야 하는데, 2023년 하반기에 공시 의무화에 관한 지침이 만들어지고 2025년에 바로 적용한다면 시뮬레이션해볼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이 임원은 꽤 오래 전에 정부가 IFRS 기준을 도입할 당시에 해당 업무를 맡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도 너무 막판에 기준을 정해서 ‘내리꽂는’ 바람에 조직 내부 반발이 많아 담당자로서 매우 힘들었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높아 큰 걱정을 하더군요. 시행해보면서 수정하더라도, 지침이 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둘째, (다른 기업에서) 다들 하니까 하고, 외부에서 하라니까 공시를 준비하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현재 대부분의 대기업은 수억원부터 10억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서 클라우드형 혹은 기업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에 ESG 데이터 수집기능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데이터 보안이 우려되는 대기업들의 경우 자체적으로 이를 구축하는 경향이 많고, 중견중소기업의 경우 클라우드형 구독으로 이를 도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데이터를 모으는 행위만으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전에는 엑셀을 통해 수동으로 모은데다, 담당자들이 바뀌면 데이터 오류가 나기도 하는 등, 이러한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될 지언정, 진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데이터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저희만 해도 공통지표 130개, ESG평가를 위한 나머지 지표까지 합치면 데이터포인트가 300개가 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데이터가 경영전략을 짜는데 뭘 의미하는지 현재 상태로는 알 수가 없어요.” 

예를 들면 각각의 데이터(지표)별로 기준이 통일돼있지 않아서 경쟁기업 대비 우리 회사가 잘하고 있는지를 비교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는 겁니다. 또 어느 정도로 데이터를 관리해야 잘하는 것인지도 오리무중이라, 그냥 해외기업 중에서 가장 잘하는 것으로 보이는 기업을 찾아서 해당 기업 사례를 기준점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ESG 평가기준도 제각각, ESG 공시에 사용하는 데이터 기준도 제각각인 상황에서 ‘일단은 그냥 평가대응하고,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하는’ 상태가 꽤 오래 지속되는데 따른 피로감이 커보였습니다. 

 

ESG, 사업 혁신부터 해볼까?

금융위의 대응은 늦는데, 공정위나 환경부의 대응은 빨라서일까요? 아직 공시 의무화의 가이드라인은 안나왔는데, 그린워싱 가이드라인부터 나오다보니 기업들은 이래저래 곤혹스럽습니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나 인스타그램 등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활동에 대한 그린워싱 모니터링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ESG나 지속가능성에 관한 미숙련된 담당자가 많고, 외부 컨설팅기관에 의지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는 사례가 다수여서일까요. 보고서에 등장하는 ‘주장’이 위험해보이는 경우도 제법 있습니다. 생물다양성 파트의 경우, 일부 기업의 경우 복사해 붙여넣기를 한 것처럼 비슷비슷한 내용이 포함돼있기도 합니다. 

기다리다 지친 이 ESG담당임원은 아예 사업을 혁신하는 쪽으로 업무를 조금 틀었다고 했습니다. ESG 관련 사업을 통해 실제 사업부서에서 혁신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모델사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습니다. 저는 “강력히 응원한다”고 했습니다.

 P&G의 CSO 버지니 헬리아스/자신의 링크드인

지난 주말, CSO 관련해 읽은 해외자료 중 P&G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0년 넘게 P&G의 지속가능성 파트의 업무를 해오고 있는 버지니 헬리아스(Virginie Helias) CSO 이야기입니다. 조직 내부에서 별 관심 없던 지속가능성 업무에 대한 관심이 쏠린 것은 2017년 다보스 포럼 때 발표한 헤드앤숄더 병이라고 합니다. 재활용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높이기 위해 프랑스 해변에서 수거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최초의 헤드앤숄더 플라스틱병을 출시했다고 합니다. 브랜드의 컬러도 기존의 흰색-파란색에서 회색으로 변경하는 과감한 도전을 한 것이지요. 다보스포럼에서 이 병을 들고 기자회견을 한 사진이 SNS를 통해 널리 공유되고 좋아요를 많이 받아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가장 큰 변화는 내부의 브랜드 담당자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더라는 겁니다. “해변의 재활용 플라스틱병이 일반 병보다 40배 더 비싸다는 것 아시죠?” 라고 해도, 브랜드 담당자들은 “괜찮아요. 좋은 브랜드 아이디어로서 해볼만해요”라고 하더라는 것이죠. 

또 하나는 아리엘 콜드워시(Ariel Coldwash) 스토리입니다. 찬물을 이용해 얼룩을 제거하는 세제입니다. 즉 성능도 높고 탄소발자국도 줄이는 매출도 늘리는, ‘강력한 지속가능성 혁신’ 사례의 성공은 조직 안에서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어? 이게 가능하네!’ 라는 사업부 담당자들의 변화인 것이지요. 

그녀는 책에서 3가지를 조언하더군요. 첫째 우리 회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파트가 어디인지 파악할 것, 둘째 혼자 하지 말것(협업할 것-그녀는 자신의 실적을 브랜드 담당자에게 돌렸습니다), 셋째 용기있는 리더십의 롤 모델이 될 것입니다. 조직 안에서 오늘도 외롭지만 열심히 날개짓을 하는 ESG 담당자님들, 화이팅입니다. 

※이 칼럼은 한주 전 수요일 발송되는 뉴스레터입니다. 칼럼을 좀 빨리 읽고 싶은 분은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