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TalkTalk】 ESG의 쓸모
안녕하세요. 여러분. 정말 감사한 일 한가지를 알려드릴게요. 임팩트온이 창간 3주년을 맞아서 옥스팜과 함께 ‘공급망 ESG 실사’ 컨퍼런스를 개최했습니다. 200분 선착순이라고 했는데, 211분이나 신청을 해서 마감을 하였습니다. 3년 된 미디어가 80년 역사의 명망있는 글로벌 NGO 연사를 모시고 컨퍼런스를 하게 되다니요. 인권 실사를 준비하거나 대응해야 하는 기업분들이 매우 많은 걸 보고 놀랐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세 가지로 나눠볼게요. 국내 ESG 공시 이슈, 글로벌 이슈, ESG 쓸모에 관한 생각입니다.
ESG 공시, 투명성은 어디로?
먼저, 국내 기업의 가장 큰 현안인 ESG 공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20년째 공무원인 남편과 살고 있는 저는 신혼 초부터 남편과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었습니다. 공무원과 언론을 바라보는 입장 차이입니다. 공무원인 남편의 언론관은 ‘되도록 언론을 피하자’ 주의이며, 저의 공무원관은 ‘되도록 투명하게 오픈하자’ 주의입니다. ESG 공시라는 민감한 현안을 처리하는 공무원의 입장이 된다고 가정해보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조율해야 할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비판은 쉽지만, 실행은 어려운 법이지요.
하지만 정책 하나가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늘공’으로 계속 살다보면 그 민감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면 정책 하나를 추진할 때 이해관계자들을 5번 만날 걸 1-2번만 만나고, 소수의 집단과 논의를 밀도있게 하고 싶어집니다. 이해관계자들은 늘 시끄럽고 피곤하니까요. 시끄럽고 피곤한 걸 ‘직업적인 소명’ 혹은 ‘직업윤리’로 생각해야 할텐데, 모든 공무원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요.
ESG 공시에 관해서, 기업 관계자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몇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정부의 ESG 공시가 ‘깜깜이’에서 ‘의무화 강제’로 진행될까봐 두려워합니다. 얼마 전 기업관계자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정부 관계자가 “연결기준으로 ESG 공시하는 게 뭐가 어렵냐. 그냥 모두 끌어모아서 공시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해서, 현장에 있던 이들이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고 합니다.
1차 협력사들조차 온실가스 측정을 어려워하는 마당에, 정부가 가이드라인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공시시점만 계속 논의되는 게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기업 담당자들은 EU의 ESRS(의무공시)와 ISSB에 관한 내용도 컨설팅사의 도움을 받아가며, 이제 파악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업들은 회계기준원에서 ISSB 번역본이라도 빨리 제공해주면 좋겠다고 합니다)
둘째, 기업들은 금융위에서 의견 수렴이 제대로 되는지, 프로세스에 대한 답답함이 큽니다. ‘징징대니까 사탕 하나 준다’는 식으로 1년 유예한다는 것은 현장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어차피 글로벌 기업들은 EU와 미국의 공시 시점에 맞춰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정부의 공시가 또다른 법적 부담이 될지 아닐지 염려하는 것이지요.
해외 규제와 국내 규제가 정합성을 가져야 할텐데, 국제적인 기준인 IFRS(ISSB), ESRS, GRI 등으로 공시하는 것을 인정해줄지 아닐지, 공시 범위는 자회사까지인지 관계사까지인지, 연결기준인지 별도기준인지 등도 지금으로선 “아무 것도 결정된 게 없다”인 겁니다. 이런 상태로 공시 시점만 미뤄져봤자, 별 의미가 없겠지요.
꼭 필요기준(디폴트기준)은 정해주되, 일정 기간은 기업의 자율성을 주는 방식이 되었든, 해외 자회사에는 적어도 강한 자율성을 주든, 1안부터 4안까지 선택지를 줘서 자율공시에 대한 가이드를 마련하는 등 자율공시와 의무공시에 관한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논의는 도대체 누가 하고 있는 걸까요?
여러 루트를 통해 취재해보니, 금융위의 TF 회의는 형식적인 듯 합니다. 금융위 공무원들이 중요한 틀을 만들고, 민간 태스크포스(TF)로 참여한 분들은 회의 당일에 참석해 그저 형식적으로 돌아가면서 한두마디 하는 겁니다. 그럼 이런 중요한 틀을 누군가는 만들어야 할테니, 소수의 이해관계자들이 공무원들과 자주 논의를 하는 테이블에 앉게 될 겁니다. 소수의 이해관계자 몇몇에 의해 정책이 결정되고, 그 소수의 이해관계자가 누구인지, 이해상충은 없는지 등은 검증할 수도 없지요. TF 위원회 위원들 중에는 SASB 기준조차 잘 모르는 교수님들도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13일(수) 환경부에서 제3차 온실가스 배출권과 관련해서 온라인으로 유튜브 공청회를 하더군요. ESG 공시는 왜 그런 식으로 하면 안될까요? 현장에 이렇게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있고, 이들을 한꺼번에 모을 수 없으니, 유튜브로 관련 내용을 송출하고 오픈된 상태에서 많은 이들의 의견을 받아보는 건 어떨까요?
얼마 전 국내의 대표적인 경제단체에서 하는 ESG 아카데미 실무과정(3차)의 강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1차부터 3차까지 모두 같은 곳에서 담당했는데, 해당 강사진은 대부분 특정 컨설팅사 출신이고, 또 한 곳은 특정 컨설팅사 출신이 관여한다는 의혹이 있는 기업이더군요. 이 신생기업은 어떻게 국내 대표 경제단체의 공급망 ESG 관련한 교육부터 ESG 아카데미 실무과정까지 도맡게 되었을까요. 관련 내용을 아는 분들은 특정 인사가 연관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더군요. 이런 식의 현상은 공공과 민간, 어디에서나 벌어질 수 있습니다. ESG 생태계 내에서 보다 건강한 논의, 보다 투명한 과정을 통한 정책 결정 현장을 보고 싶습니다.
스코프3 포함 캘리포니아 기후공시, SEC안보다 먼저 통과?
첫번째 이야기가 좀 길었습니다. 글로벌 이슈로는 ‘캘리포니아 기후 공시’ 이야기를 간단히 해보겠습니다. 어쩌면 캘리포니아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보다 더 빨리 기후 공시를 시작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지지된 법안이 개빈 뉴섬 주지사의 책상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가 서명하면, 캘리포니아의 미국 기업들은 사상 처음 스코프3 배출, 즉 자신이 배출한 온실가스뿐만 아니라 협력업체와 고객 등 밸류체인 전체의 온실가스를 보고해야 합니다.
이 법안을 제출한 민주당 상원의원 스콧 위너는 “목표는 기업의 탄소배출 투명성을 만드는 것이며, 이는 기업들이 탄소발자국을 줄일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게 할 것”이라고 블룸버그에 밝혔습니다. 블룸버그는 “유니레버와 월마트 등 많은 회사들이 자발적으로 이 데이터를 공개하고 있지만, 표준화된 공시 기준은 더 많은 투명성을 제공할 것”이라며 “반대론자들은 공시 비용과 부담이 너무 크고 복잡하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연간 10억 매출을 기록한 5300개 기업에 영향을 미칩니다. ‘동반자 플랜(A companion plan)’은 연간 매출 5억 달러 이상인 기업이 기후 관련 위험을 공표하도록 요구하며, 이는 약 1만개 기업에 영향을 미칠 전망입니다. 기업들은 2026년까지 스코프 1과 2, 2027년까지 스코프3를 공시해야 합니다.
결국 MS, 아마존부터 웰스파고, 타이슨푸드 등 캘리포니아에서 사업을 하는 모든 회사는 이를 준수하거나 최대 50만 달러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대형 사업장으로는 애플, 알파벳(구글), 셰브론, 메타, 웰스파고, 디즈니, TD 시넥스(TD Synnex), 시스코, HP, 인텔 등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2045년까지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선언했으며, 미국 전체 배출량의 6%를 차지하며, 텍사스 다음으로 많은 배출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SEC의 논의는 아직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80여명의 의회 민주당원들이 지난 8월 SEC의 규칙을 신속히 확정할 것으로 촉구했지만, 공화당원들은 이 제안에 대해 연방정부의 규정 제정 권한을 넘어선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상공회의소에서는 “지금 현재 시점에서 스코프3를 계산하는 것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예술에 가깝다”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공급망의 중소기업들에게는 ‘대재앙’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기후공시 논의는 어떤 결론을 맺게 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SG의 쓸모란?
마지막 세번째 이야기는 짧게 할게요. 최근 만난 기업 ESG팀 팀장은 “요즘 회사에서 ESG의 쓸모를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글로 답을 대신합니다. 제가 한두 번 인용한 적 있는 팀 모힌(Tim Mohin) 전 GRI 대표(인텔, 애플, AMD 등의 CSO 출신)의 책에서 나온 얘기를 요약해볼게요.
“기업의 모든 부서는 자신의 투자수익률을 증명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주류’ 부서는 이 정도로 철저한 검증은 거치지 않는다. 오랜 기간 존재하면서 그 사이에 본질적인 가치가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마케팅 부서는 가시성이 낮은 성과(예: 브랜딩)에 비용을 많이 사용하지만, 매출과 명성에 필요한 요소로 인식된다. 지속가능경영부서도 브랜딩처럼 측정하기 어려운 가치를 다루는 데다, 신생 분야다. ‘투자 수익률의 함정’에 빠지지 말자. 부서의 존재 권리를 옹호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하다는 시각을 쉽게 강화할 수 있다. 지나친 열의와 방어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설득 효과를 오히려 낮출 수 있다. 지속가능성은 마케팅처럼 측정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지속가능성이나 ESG에) 회의적인 사람들을 잘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고집스러운 반대자의 경우, 대화를 종결하되, 관심있는 이들에겐 전도자가 되자!”
이번 한주도 모두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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