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ESG 실사’ 컨퍼런스 성료…공급망 실사 대응 뭐부터 할까
공급망 실사가 유럽에서 법제화되자 기업 실무자들은 대응을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옥스팜과 임팩트온이 15일 개최한 ‘공급망 ESG 실사’ 컨퍼런스에도 200여 명이 넘는 관계자가 신청하면서, 공급망 실사에 대한 실무자들의 높은 관심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장은 기업 실무자, 컨설턴트, 금융업 종사자, 비영리단체 관계자들로 객석이 가득 찼고 플로어에서는 “공급망 관리를 위해 우리는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라는 실무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발표자와 토론자는 이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공급망 ESG 실사에 관한 국내외 동향, 옥스팜의 인권실사 실행 사례, 유럽의 기업공급망실사지침에 대한 분석 내용을 소개했다.
옥스팜, 실사 시스템 A부터 Z까지…기업 파트너십으로 함께 구축한다
옥스팜은 유럽에서 다국적 기업을 대상으로 인권실사 등 기업의 활동이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식별하고 공급망 전반에 걸쳐 바람직한 비즈니스 관행이 도입될 수 있도록 돕는 자문 서비스(OBAS)를 제공하고 있다.
클레어 리사만 옥스팜 비즈니스 총괄은 “옥스팜은 인권 이슈를 파악하는 것으로 끝나는 감사에서 멈추지 않고 인권실사 전 과정에 대한 시스템을 함께 만들어 가는 자문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옥스팜은 인권 영역에서 80년 이상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바텀업 방식의 자문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비스의 목적은 현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이슈를 파악하고 완화, 처방, 지속적인 인권영향 모니터링, 커뮤니케이션의 사이클을 기업과 함께 설계하고 실행하는 데 있다.
엘렌 뉴컴-링 옥스팜 파트너십 매니저는 옥스팜과 20년째 관계를 맺어오고 있는 유니레버 파트너십 담당이다. 옥스팜은 2021년 유니레버 파트너십의 성과와 성공 요인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 뉴컴-링 매니저는 유니레버의 베트남 공급망에서 진행한 실사 사례를 소개했다.
뉴컴-링 매니저는 “유니레버는 옥스팜과의 베트남 공급망 인권 전수조사와 같은 사업을 통해 자사의 글로벌 인권 발자국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며 “실사를 같이 진행하면 공개가 부담스러운 정보들도 확인하게 되는데도 파트너십이 가능했던 이유는 다양한 채널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옥스팜은 실무자들과 식사 및 통화와 같은 일상적인 접촉부터 시작하여 유니레버 고위급 지속가능성 자문위원회의 위원으로 6개월마다 함께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뉴컴-링 매니저는 “버버리, 이케아, 유니레버, 브리티시 에어라인 등 다양한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서비스를 계속해서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옥스팜 코리아 지경영 대표는 "인권실사제도가 강화되는 흐름에서 선제적으로 이를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과 협력해온 옥스팜 사례를 통해 한국기업들과 협력 방안을 강구하고자 이번 포럼을 열었다"며 "기업들의 ESG 실천과 인권경영 내재화를 위해 옥스팜도 글로벌 NGO로서의 역할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공급망 실사 대응, 사례와 실사법 분석에서 시작
박란희 임팩트온 대표는 기업의 리스크와 관련하여 "해결되지 않은 리스크는 반드시 사건사고로 터지고, 외부로 알려지게 된다"면서, 국내 자동차 기업 H사와 해외 기업 네슬레의 인권 리스크 대응 비교를 통해 기업의 인권 문제 대응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했다.
지난해 7월 로이터 통신은 미국의 앨라배마주에 소재한 H기업의 자회사가 아동노동착취 의혹이 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미국 노동부는 H기업을 아동노동법 위반으로 소송을 걸었다. H사는 뒤늦게 문제를 확인하고 아동노동법 혐의를 받은 자회사 두 곳을 모두 매각했다.
반면, 네슬레는 2015년 동남아의 공급망에 대해 인권실사를 수행했는데 태국의 해산물 공급망에서 강제노동을 발견했다. 네슬레는 즉각 공급망 관리를 위한 정보 수집 및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현지 노동자(권리주체)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피해구제 시스템을 구축했다.
박 대표는 “문제가 터졌을 때 국내 기업은 협력업체 두 곳을 과감히 자르고 보도자료를 냈다”며 “H사는 후속조치보다는 부정적인 관계를 단절하는 방향으로 문제에 접근했는데, 이렇게 되면 다음에 비슷한 사건이 벌어져도 더 나은 대응을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토론 패널로 참여한 법무법인(유)지평의 정현찬 전문위원은 “2022년 쏟아져 나온 실사법들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기업들이 당장 무엇을 해야할지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현찬 전문위원은 “우선, 실사법제를 확인해 보면 공급망 관리는 계약 단절과 같은 배제 전략보다는 협력의 방식을 선택하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위원은 독일 공급망 실사법의 규제당국인 독일연방경제수출통제청(BAFA)의 가이던스를 사례로 들었다. 가이던스는 ‘의무기업은 공급업체가 예방조치 이행에 협조하거나 이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업관계를 단절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행사에 참여한 기업 실무자는 정현찬 전문위원에게 기업들이 현재의 변화에 대응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실행한 노력을 인정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그는 “실사법을 보면, 인권경영선언문을 공표하는데 대표이사의 서명이 필요하다는 점, 임원 정도 직위의 인권경영담당관을 지정하고 최고경영진에게 관련 성과를 보고해야 한다는 점 등 실무적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다 명시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정 위원은 “유럽의회가 올해 낸 CSDDD 수정안을 보면, 의무기업의 범위가 확대되고 인권과 환경뿐만 아니라 기후실사도 실행해야 한다는 내용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의 공급망 실사 정책 사례로는 토론 패널로 참석한 하진화 카카오 인권과 기술윤리팀 매니저가 카카오의 사례를 소개했다.
하진화 매니저는 토론에서 카카오도 ‘텔미 카카오’라는 구제 절차에 인권 채널을 마련하고 인권경영선언문을 발표하는 등 인권경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하진화 매니저는 “공급망 실사를 비롯해 인권경영이 활성화되려면 산업별 특성을 반영한 창의성도 필요하다”며 그 사례로 증오 발언 등을 방지하기 위한 윤리적인 이모티콘 창작 가이드라인 및 광고 정책을 소개했다.
이상윤 기획재정부 지속가능경제팀 사무관은 “정부도 CSDDD가 도입되면 발생할 기업의 부담을 이해하고 있다”며 “민관합동 ESG정책협의체를 기반으로 공급망 실사를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고 실사대응정보 플랫폼을 준비하는 등 여러 지원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