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초자산, 납세자 부담으로 돌아온다… 네덜란드, 석탄발전소에 4000억원 보상금 지불

2023-09-20     이재영 editor

9월 18일(현지시각) 네덜란드 정부가 독일 에너지기업 RWE에 3억3180유로(약 4238억원)를 지불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2~2024년 석탄발전소 생산량을 35%로 제한한 것에 대한 손실 보상금이다.

네덜란드는 2019년 석탄금지법을 통과, 2030년까지 발전용 석탄 사용의 단계적 금지에 나선 바 있다. 2021년 RWE 등 에너지기업들은 이러한 법안에 반발, 네덜란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네덜란드 정부가 석탄발전소 소유 기업들에게 생산량 저하 조치로 인한 배상금을 지불한다. / 픽사베이

8조원 들어간 석탄발전소, 2030년까지 단계적 퇴출 수순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에는 정부, 민간기업, 시민사회 등 영향을 받는 모든 이들의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기후행동은 필연적으로 산업구조의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특히 석탄발전소는 좌초자산(Stranded Asset) 위험이 높은 대표적인 탄소집약적 시설이다. 좌초자산이란, 기후변화 등 환경의 변화로 자산가치가 떨어져 상각되거나 부채로 전환되는 자산을 의미한다.  

실제 석탄은 재생에너지 가격 하락과 탄소비용 상승 등으로 심각한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다. 기후변화 싱크탱크 카본 트래커(Carbon Tracker)는 2019년 EU 내 석탄 생산용량(생산 가능한 최대 부하) 중 62%는 현금 흐름 측면에서 경쟁력이 없어졌으며, 이르면 2025년 EU 내 모든 석탄발전소의 경쟁력이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렇게 범지구적인 기후변화 목표 강화와 석탄시장 악화 추세에도 불구하고, 2015~2016년 사이 독일의 RWE, 유니퍼, 프랑스의 엔지(Engie) 등 에너지기업들은 네덜란드에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3기를 건설했다. IEFA(에너지경제 및 재무분석 연구소)는 2016년 보고서를 내고, 에너지기업들의 네덜란드 화력발전소 건설은 유럽 전력시장 동향과 맞지 않다며, 비경제적이고 근시안적인 투자라고 경고했다. 석탄발전소 3기 건설에 투입된 자본은 총 60억유로(약 8조원) 이상이다.     

불과 4년 뒤인 2019년 7월, 네덜란드 정부는 석탄 사용의 단계적 폐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2030년부터 네덜란드에서는 발전용 석탄 사용이 금지된다. 에너지기업들은 법안에 반발, 에너지헌장조약(ECT)에 따라 네덜란드 정부를 제소했다. RWE는 14억유로(약 2조원), 유니퍼는 8억5천만유로(약 1조원2013억원)에서 10억유로(약 1조4133억원)의 보상금을 요구한 것이다. 2016년 IEFA의 경고가 고스란히 납세자들의 부담으로 돌아온 셈이다.   

사실 석탄발전소의 수익성 저하는 비단 석탄금지법 때문이 아니다. IEFA, Ember(에너지전환 싱크탱크), SOMO(다국적기업 연구센터)가 공동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2019년 석탄금지법 이전부터 석탄발전소의 경제성은 하락하고 있었다. 탄소가격 상승과 저렴해지는 재생에너지 및 가스발전 때문이다. 발전소 세 곳의 발전량은 2016년 이후 감소 추세였으며, 2018년 이후에는 수익도 급감했다. 보고서는 2024년 이후부터는 석탄발전소의 수익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좌초자산, 보상금은 물론 소송 비용까지 납세자의 몫

일련의 과정을 거쳐, 지난 19일(현지시각) 로이터는 네덜란드 정부가 2022~2024년 석탄 생산량을 35%로 제한한 것에 대한 손실 보상금으로 RWE에 3억3180유로(약 4238억원)를 지불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롭 제텐 네덜란드 에너지부 장관은 의회에 보내는 서한에서, RWE, 유니퍼, 오닉스 등 3개 회사에 대한 보상금은 기업들이 요구한 수준인 19억유로(약 2조6847억원)보다는 적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보상금은 결국 세금에서 나온다. 

네덜란드 납세자들은 기업들과의 소송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RWE와 유니퍼는 네덜란드 법정에 국가 소송을 제기하고, 2021년 초 에너지헌장조약에 근거,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중재 요청도 제출했다. 

에너지헌정조약은, 1991년 주로 구소비에트연방국에 대한 원유 및 가스 프로젝트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체결된 것으로, 각종 법령 변경으로 손해를 입은 투자자가 정부를 국제 민간중재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올해 초 EU 집행위원회는 에너지헌정조약이 주로 화석연료 투자자를 보호하고 있다는 점에서 EU 그린딜과 상충된다고 판단, EU 회원국의 일괄 탈퇴를 권고한 바 있다. 

한편 네덜란드 지방 법원은 네덜란드 정부의 석탄금지법이 합법적이며 석탄발전소 소유주들 또한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고 판결했으나, 기업들은 모두 항소했다. SOMO 분석에 의하면, 이러한 국내외 소송 과정에서 이미 540만유로(약 76억원)의 세금이 투입됐다.

SOMO 연구원 바트 자프 베르베크는 "석탄발전 금지는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단계"라며 "작은 국가가 이러한 국제적인 소송 방어를 위해 납세자의 부담으로 수백만 달러를 지불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