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네덜란드, 스웨덴까지...유럽 反환경 움직임 가속화, '그린래시' 신조어 유행
지난 20일, 리시 수낙(Rishi Sunak) 영국 총리는 내연기관 차량 판매 금지의 시점을 2030년에서 2035년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수낙 총리는 급격한 친환경 전환의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들며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는 유지할 것이지만, 이를 위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접근방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영국은 2030년까지 내연기관 차량 판매중단을 선언해 노르웨이, 네덜란드와 더불어 유럽 내 전기차 전환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수낙 총리의 이번 결정으로 인해 영국의 친환경 전환 정책이 일보 후퇴하게 됐다.
급격한 친환경 전환은 국민의 경제적 부담 vs.
친환경 전환 지연은 사업적 불확실성 가중시켜 전환 비용 늘릴 것
수낙 총리의 전기차 전환 지연 결정으로 인해 영국 내 친환경 전환 속도 조절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영국 집권 보수당은 이번 결정을 환영한다는 의사를 밝힌 가운데, 야당과 환경 단체, 그리고 산업계는 친환경 전환 지연에 강력하게 반발하는 모양새다.
영국 집권 보수당 측은 지난 7월에 시행된 보궐선거의 참패 이유가 높은 세금과 인플레이션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OECD에 따르면, 2023년 영국의 인플레이션율은 7.2%로 G7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데, 영국의 싱크탱크 공공정책연구소(IPPR)는 에너지 시장의 불안정성을 높은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했다. 이에 영국 집권 보수당은 급격한 친환경 전환 시도가 에너지 가격의 상승을 초래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내연기관 차량에 대한 오염세 부과가 국민들로 부터 큰 반발을 불러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집권 보수당은 수낙 정권의 환경 정책 재고려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이에 영국 내무장관 수엘라 브레이버먼은 “지구를 구하려고 영국 국민들을 파산시키지 않을 것”이라며 친환경 전환보다 영국 국민의 경제적 부담완화과 최우선과제라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반면 야당과 환경단체들은 친환경 전환 지연이 산업계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입장이다.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는 “친환경 전환을 지연시킬 경제적 여유가 없다”며 “기업들에게 탄소중립 목표에 대한 확실성을 보장해야한다”고 밝혔다. 또한 그린피스 등의 환경단체들은 “정부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재정을 투입하고,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해야할 의무가 있다”며 내연기관차 판매중단 지연을 막기 위해 법적 분쟁을 시작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산업계 또한 리사 수낙의 환경 정책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지난 7월, 영국 에너지 기업 100여 곳은 공개서한을 통해 “영국의 환경정책 퇴보로 인해 녹색산업에 대한 투자가 EU와 미국으로 이전될 수 있으며, 해외 화석연료 수입의존의 기간이 길어져 경제적 부담 또한 가중될 수 있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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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업계 또한 수낙 총리의 결정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폭스바겐, BMW, 볼보 등의 주요 업체들은 영국의 친환경 전환 어젠다에 따라 2030년까지 내연기관차량 대체를 목표로 전기차에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데, 환경정책이 퇴보하거나 정부의 지원금이 줄어들 경우 친환경 전환으로 인한 비용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영국차량임대협회 (BVRLA) 디렉터, 토비 포스턴(Toby Poston)은 “리시 수낙의 이번 결정은 전쟁에서 병사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렸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본진 복귀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며 “산업계에 친환경 전환에 대한 확실성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큰 경제적 손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친환경 정책에 반발하는 그린래시(Greenlash) 흐름 이어져…
상황 반전 시킬 수 있을까?
영국 뿐만이 아니라 EU에서도 친환경 정책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그동안 EU는 적극적인 친환경정책을 내놓으며 ‘기후변화 리더’의 모습을 보여왔지만, 친환경 전환 비용에 대한 논란이 커지면서 녹색(Green)과 반발(Backlash)을 합친 그린래시(Greenlash)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는 등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린래시’ 양상이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동유럽이다. 서유럽에 비해 경제적 여건이 부족한 동유럽 국가들은 친환경 전환에 대한 산업적 이득이 크지 않고 상대적으로 국민들의 경제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헝가리, 폴란드, 체코는 EU의 내연기관 차량 판매 중단 및 화석연료규제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특히 폴란드는 EU법원을 통해 해당 규제에 대해 항소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서유럽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아산화질소 배출규제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독일에서는 친환경정책에 반대하는 극우정당의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과 벨기에의 알렉산더르 더크로(Alexander De Croo) 총리 또한 EU 친환경 법제화의 ‘일시중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북유럽인 스웨덴 정부 또한 기후변화 대응의 속도 조절을 택했다. 스웨덴은 6년 전 세계 최초로 2045년 탄소중립 목표를 법제화한 나라다. 스웨덴 정부는 지난 20일(현지시각) 의회에 제출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기후변화 대응 및 친환경 정책 관련 예산을 2억 5900만스웨덴크로나(약 310억원) 삭감한다"고 밝혔다. 휘발유 및 경유 등 화석연료 사용에 대한 유류세를 감면해주는 내용도 포함됐다. 엘리자베스 스반테손 재무부 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지금 많은 국민들에게 매우 힘든 시기"라며 기후대응 속도조절을 택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EU 전역에서 그린래시의 움직임이 거세지는 가운데, EU는 친환경 정책에 대한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8월 29일, EU의 신임 환경대책 총책임자로 임명된 마로스 세프코비치(Maros Sefcovic)는 “유럽연합이 기후변화에 맞서기 위한 노력을 약화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세프코비치는 고탄소배출 기업과 친환경 기업과의 대화를 주선해 현재 친환경 전환 과정에서 발생한 애로사항을 해결하고 친환경 공급망 공동 구축, 재생에너지 공동 구매 등을 통해 에너지 시장의 안정화를 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