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니켈, 운모까지...광물에 관한 리스판서블 소싱(Responsible Sourcing) 확산
세계최대 광산회사 BHP, '구리마크(Copper Marker)' 서약서 제출 인도네시아 올 1월 니켈 수출 제한, 니켈 가격 향후 70%까지 상승
세계 최대 광산회사인 BHP는 지난 2일(현지시각) 책임감 있는 구리 생산에 대한 국제원칙인 '구리 마크(Copper Mark)'에 서약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구리 마크'는 기업이 책임감 있는 구리를 생산하도록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SDGs 12번(지속가능개발목표) 목표에 기반해 작년 4월 국제구리협회(ICAㆍInternational Copper Association)가 만든 인증 프레임워크다. SDGs 12번은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를 표방한다.
구리 마크는 기업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모든 영역을 고려해 32개 항목으로 기업을 평가한 후 공식적으로 인증마크를 부여한다. 32개 항목으로는 ▲환경(에너지 소비, 온실가스, 담수보호, 폐기물처리, 환경 리스크 관리, 광산 폐쇄 및 매립 등) ▲사회(커뮤니티 보건/안보/개발, 인권, 토착민 인권, 합법적 토지취득, 문화유산 보존 등) ▲지배구조(법적 준수, 성평등, 직원 고충 메커니즘, 자유ㆍ단체교섭권) 등이다.
BHP는 구리 마크 인증을 위한 평가를 받기로 했으며, 우선적으로 칠레의 에스꼰디다( Escondida)와 스펜스(Spence)를 비롯해 호주의 올림픽댐(Olympic Dam)에 있는 자사의 구리 광산을 평가받을 예정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BHP가 지속가능한 구리 생산 원칙을 내세우고, 평가인증을 받으려는 이유에 대해 '경쟁사인 리오 틴트(Rio Tinto) 사건'을 배경으로 꼽고 있다.
호주의 광산업체인 리오 틴트는 철광석, 석탄, 구리 등에서 BHP 다음으로 높은 생산량을 기록하고 있는 기업이다. 지난 5월 호주 서부 필버라 지역의 주칸 고지 동굴에 매장되어 있는 800만톤의 철광석을 캐기 위해 폭파했다. 그런데, 이 동굴은 4만6000년의 역사를 가진 호주의 중요한 유적지 중 하나여서 국내외 투자자들과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리오 틴토는 "이 동굴이 고고학적인 가치가 있는 곳인 줄 몰랐다"고 해명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내부고발로 알려지면서 비난은 더 거세졌다. 이에 따라, 세바스찬 자크(Jean-Sébastien Jacques) 최고경영자와 임원 2명이 책임을 지고 사임하기에 이른다.
책임감있는 광물 조달을 둘러싼 '리스판서블 소싱(Responsible Sourcing)'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면서, 각 기업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금, 주석, 탄탈륨, 텅스텐 같은 '분쟁광물'을 넘어, 다이아몬드, 코발트, 구리, 리튬, 니켈, 운모 등까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광물의 범위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전기차의 핵심소재인 니켈에 관한 환경오염 이슈가 지속되면서 니켈의 주요 생산국인 인도네시아는 올 1월 수출 제한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광물에서 니켈만을 분리한 뒤, 남은 찌꺼기를 바다에 투기하여 해양오염이 발생할 뿐 아니라, 니켈 생산 자체를 위해서도 상당한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테슬라, 볼보 등 전기차 기업이 환경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친환경 자동차 이미지를 갖추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로 인해 니켈의 가격은 계속 상승중이다. 모건스탠리는 전체 니켈 수요에서 전기차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3% 수준에서 10년 뒤인 2030년에는 23%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2030년까지 니켈 가격이 71%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운모(MICA) 또한 가장 이슈가 많은 광물 중 하나다. 운모는 화장품(립스틱, 아이섀도, 블러셔 등)이나 건설업(절연소재, 벽지재료, 단열재 등), 완성차(자동차 외장 페인트 및 코팅 소재) 등에서 흔히 광택용 소재로 쓰이는 광물이다. 전 세계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인도의 운모 광산에서 90%는 아동노동, 70%는 불법광산에서 생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인도 운모광산의 아동노동 철폐를 위한 산업 이니셔티브로 '리스판서블 미카 이니셔티브(Responsible MICA Initiative)'에 글로벌 기업들이 다수 가입하고 있다. 바스프, 크라이슬러 다임러 벤츠, 로레알, 샤넬, H&M, 시셰이도 등 수십개 기업이 참여를 선언했다.
이들은 2022년까지 인도에서 아동노동 없는 운모 공급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운모 공급망의 지속가능성 리스크를 평가하며, 필요할 경우 광산에 대한 현장실사도 벌인다. 운모 공급망에 ISO(국제표준화기구) 혹은 ILO의 업무표준 적용을 권장하고 있다.
올 여름, 세계 최고 쥬얼리 브랜드 '티파니'(Tiffany)는 자사 공급망의 투명성을 확대하기 위해 다이아몬드의 원산지와 공급망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보석 브랜드인 '판도라'의 경우 2025년까지 100% 재활용된 금과 은을 사용하겠다고 계획까지 밝혔다. 광물에 관한 지속가능성을 이미 기업들이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