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단일 기준으로 TCFD 채택... 2025년 의무화

2020-11-12     박지영 junior editor

“말그대로 마지막 시간이다(at the last hour). 기업들은 자연과 지속가능성을 비즈니스 모델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

찰스 왕세자/그린 호라이즌 서밋 유튜브 캡처

10일(현지시각), 영국의 찰스 왕세자는 그린 호라이즌 서밋(Green Horizon Summit)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10가지 조치를 발표했다. 찰스 왕세자는 "기업의 대차대조표에 대한 천연자본 회계처리를 시작해야한다"며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강조했다. 담화 발표 하루 전, 영국 리시 선악(Rishi Sunak) 재무장관은 2025년부터 주요 기업에 기후위험 공시를 의무화하는 안을 공개하는 내용을 담은 성명을 의회에 제출했다.  

영국은 TCFD 공시를 2025년까지 의무화할 방침이다. 외신에 따르면, 올해 초 영국의 금융감독청(FCA)은 기후 관련 금융 공시에 관한 규정을 마련했다. FCA는 “1월부터 런던 증권거래소(LSE) 프리미엄 부문에 상장(premium listings)된 기업들은 TCFD 프레임워크를 사용해  재무보고서 등에 기후변화에 대한 기업의 대응책을 공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 동안 영국 기업들의 기후관련 정보 및 ESG 관련 공시는 활발했으나 법률과 규정이 산재해 있어 산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FCA 핸드북 및 EU 법률은 '주식의 상장 또는 거래에 필요한 ESG 요소를 포함'하면 공시 기준은 상관이 없다고 제시했고, 영국기업지배구조 코드(UK Corporate Governance Code)는 ESG와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기회와 위험 공시를 추가했다. 영국 기업법(UK Companies Act)은 기후관련 영향 보고에 들어가야 하는 요건을 따로 규정했다. 

이에, LSE 상장기업들 간에도 기후관련 정보의 공개 여부와 범위가 각각 달랐던 것으로 조사됐다. 100개 조사 대상 기업 중 3분의 1만이 TCFD가 권장하는 11개 항목을 모두 공개한 것으로 밝혀졌다. 기업별로 공시 항목이 제각각이었던 탓에, FCA는 'TCFD 기준을 사용하라'며 기준을 일원화 한 것이다. 기준이 일원화 되면 기후관련 정보에 대한 기업간, 국가간 비교가 용이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곧바로 기업분석 및 가치평가에 활용하기 용이해 곧바로 시장에 적용할 수 있다.  

안에 따르면, 2023년부터 영국 내 상장기업은 TCFD 프레임워크를 사용해 기후 변화 대응 노력을 설명해야 한다. 원칙 준수, 예외 설명 방식(comply or explain)을 적용해, 공시하지 않은 기업은 2023년 말까지 이유를 소명해야 한다. 2025년부터는 공시 대상이 넓어지고, 공시 정보의 수준도 깐깐하게(tight) 감독할 예정이다. FCA는 먼저 강제적인 정보 공개보다는 자산운용회사들이 TCFD 권고안에 따라 자발적으로 기후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방법을 권장했다. 이후 2025년부터는 의무화가 적용된다.

영국 재무부는 기후 정보 공시 주체를 넓혀나가겠다고 밝혔다. 상장 기업 외에도 은행, 보험 회사, 자산운용사, 연기금 등도 의무 공시 대상에 포함될 예정이다. 재무장관은 “주요 연금제도, 생명보험, 자산운용사 등으로 흘러가는 막대한 자금들도 기후 관련 공시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의무화 발표에 환영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폴 심슨 CDP(탄소정보공개 프로젝트) 최고경영자(CEO)는 "TCFD 공시를 의무화한 첫 번째 정부로 시장과 다른 정부에 강력한 시그널을 보낸다”며 환영했다. 지속가능경영 얼라이언스인 올더스케이트 그룹(ALDERSGATE GROUP)의 상임이사인 닉 몰로(Nick Molho)는 “TCFD 의무화는 경제 전반에 걸친 기후 관련 공시의 품질, 비교가능성 및 투명성을 개선하는 데 필수적인 단계”라며 “기업 또한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 기후 위험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올더스케이트 그룹에는 영국의 통신사 BT, 가구업체 이케아, 위성TV업체 SKY 등 대기업들이 속해있다. 

반면, 규제의 수위가 약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아넬리제 도드스(Anneliese Dodds) 노동당 총리는 재무장관의 성명에 “2025년도 너무 멀다. 좀 더 빠른 시일 내에 의무화를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해외 석탄발전 자금 조달과 대출도 추가로 금지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전 영국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카스텐 융(Carsten Jung)은 “정보 공개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배출가스 감축에 대한 구속력 있는 목표를 설정하도록 기업들을 강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TCFD “보고는 증가했지만 더 많은 진전 필요해”

TCFD는 지난 10월 3일 3차 연례보고서를 발표하며 지지를 표한 기관은 증가했지만, 정보 공시는 더욱 광범위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TCFD는 “TCFD의 권고안에 지지를 표한 기관은 2019년 이후 85% 이상 증가했다”며 현재까지 1500개 이상의 기관이 지지선언을 했다고 밝혔다. 다만 기업의 정보 공시는 아직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TCFD 공시 자체는 증가했지만, 투자자들이 의사결정을 할 정도로 충분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2020 Status Report/ TCFD 홈페이지

TCFD 권고안은 ▲지배구조 ▲경영전략 ▲위험관리 ▲지표‧목표 설정 4개 축 11개 영역으로 구성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15개 기업 중 1개의 기업만이 TCFD 프레임워크의 핵심인 시나리오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TCFD는 경영전략을 공시할 때 시나리오 기법을 사용해 기업의 회복탄력성을 설명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TCFD 의장인 마이클 블룸버그(Michael R. Bloomberg)는“기업들이 기후변화와 관련된 위험과 기회를 더 많이 공개하고, 투자자들에게 제공하는 정보도 많아져야 효과적으로 자원을 배분하고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TCFD 정보 공시는 보고를 넘어 이해관계자들이 기업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to better understand)”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마다 중점으로 공시하는 내용이 들쑥날쑥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럽 기업의 경우 11개 권고 공시 중 10개 공시를 모두 공개하면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북미 기업은 위험과 기회를 설명하는 위험관리 항목을 중심으로 공개하는 경향이 강했다. 분야별로는 에너지, 건설사, 자재 공급업체가 기후 정보를 가장 많이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록 래리핑크, “미국도 하루 빨리 흐름에 동참해야”

한편, 블랙록의 래리 핑크(Larry Fink) CEO는 영국의 발표를 환영하며“미국 또한 이같은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촉구했다. 런던에서 열린 그린 호라이즌 서밋에서 "어제 발표한 영국 수상의 TCFD 의무 보고에 대해 환영한다"고 밝히면서다. 

미국은 영국에 비해 기후 관련 정보 공개에 미온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2018년, 주요 기관투자자들은 증권거래위원회(SEC)에 ESG 정보 공시에 대한 규제를 마련해달라는 청원을 제출하기도 했지만, SEC은 "ESG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기업의 약점을 노출시킨다"며 부결했다. 또한 SEC 의장은 "개별적인 ESG 항목을 단일 등급으로 결합한 결과는 부정확하며, 의미 있는 투자 분석이 불가능하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국 의회는 작년 7월 상정된 ESG 보고 기준을 담은 법안을 부결하기도 했다. 

이런 미국의 태도에 래리 핑크 CEO는 일침을 놓았다. 미국 규제기관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기업에게  TCFD 필수 요건과 일치하는 명확하고 표준화된 기후 위기 대응 정보를 제공하라고 요청하고, 연방준비제도(Fed)와 중앙은행들이 기후 위기 대응을 감독 과정에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핑크 CEO는 “광범위한 글로벌 공조를 달성 할 수 있도록 미국은 더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