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영국 주택에너지 효율 사례처럼 산업규제와 ESG 연계 눈여겨봐야"
기후위기 시대, 금융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지난 9일 열린 세계경제연구원-KB금융그룹 국제컨퍼런스 ‘2020 ESG 글로벌 서밋’ 토론에서는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KB금융지주 등 기후금융을 둘러싼 정부기관, 기업, 금융권 등 다양한 목소리가 등장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이세훈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은 “선진국에서는 금융권이 ESG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지난 7월 (녹색금융추진) 태스크포스가 만들어졌고 투자 현황은 매우 초보적이고 더딘 추세”라며 “금융권의 ESG 투자 걸림돌에는 두 가지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 국장이 밝힌 걸림돌 첫 번째는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가’와 관련된 것이다. 현재 녹색금융에 관한 분류체계(K-택소노미)를 만들고는 있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예를 들면, 자동차 핸들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가솔린차에 납품하면 반녹색기업이요, 전기차에 납품하면 녹색기업으로 분류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녹색금융 투자를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분류기준’이 빨리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국장은 이와 함께 “기후변화, 저탄소 사회, ESG 투자, 녹색성장(Green Growth), 지속가능한 투자, 지속가능한 성장 등 여러 개념이 혼용돼서 쓰이지만, 각 개념이 추구하는 점에선 차이가 있다”며 “지속가능한 성장과 기후변화 대응은 더 상위개념이고, 이를 위한 수단으로 ESG 투자와 탈탄소(Carbon-free)가 있음에도 지금은 수단이 목적처럼 인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의 궁극적인 지향점과 비전을 사회 구성원과 합의해가는 과정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두 번째 걸림돌은 ‘왜 ESG에 투자해야 하는가’라고 설명했다. 이 국장은 “금융투자의 목적함수가 기존의 ‘수익성’에서 이제 ‘ESG’라는 새로운 목적함수가 생겼다고 한다면, 현장에서 두 가지의 목적함수가 조화될 지 의문”이라며 “돈을 따라 움직이는 금융의 특성상 ESG 투자를 어떻게 돈이 되도록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영국 사례를 통해 ▲산업 규제체계를 바꿔 ESG 분야의 수익성이 높아지도록 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사회적 압박(peer-pressure)을 통해 개별 금융투자자들이 평판 때문에 수익이 나빠진다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의 ‘주택 에너지 효율과 관련된 규제 체계’다. 영국은 최근 주택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도록 규제 체계를 과감히 바꿨다. 이 때문에 에너지 효율이 높은 주택담보저당채권 풀과 낮은 채권 풀을 비교한 결과, 전자의 수익률이 시장에서 높게 평가됐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주택의 매매가능성이 높아져, 그 결과가 시장 평가에 반영된 것이다. 이 국장은 “금융규제와 산업규제를 같이 연계해야 ESG 투자가 늘어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이 국장은 “환경이나 기후변화와 같은 변화는 일부 엘리트나 톱다운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국민 모두의 인식 전환이 함께 이뤄져야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태스크포스에서도 탄소배출과 관련, 석탄 금융을 지원할지 말지에 관해 의견이 첨예하게 부딪혔다고 한다.
이 국장은 “석탄금융 반대 논리를 들어보면 우리 사회가 가야하는 방향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지난 50년간 탄소 배출을 통해 경제성장을 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반녹색으로 찍혀 손가락질 받는 데 대한 억울함이 많다”며 “환경과 관련한 논의를 끌어갈 때 반녹색을 배척하는 게 아니라 포용해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KB금융지주, 거래 기업 ESG 반영한 신용평가체계 개선 중
정문철 KB금융지주 홍보·브랜드총괄 대표(국민은행 브랜드ESG그룹대표 상무)는 “ESG 경영을 추진하다보면, 어떤 경우에는 기업의 일부 비즈니스 기회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고 시간이나 비용 투입 대비 효과도 빨리 안 나기 때문에 최고경영진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KB금융지주에서 이사회 내 ESG위원회를 만든 이유라는 것이다.
정 상무는 “우리 조직은 2만7000명 직원이 전체 약 13만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데, 국가 탄소배출량 감축목표에 기여하기 위해 2030년 2도씨 기준으로 수립한 목표를 최근에는 1.5도로 수정하려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가장 중요한 비중은 거래 파트너(고객)의 탄소배출량 감축이라고 했다. 탄소배출량이 큰 산업에 대한 대출을 줄이고, 투자나 대출자산 기후 리스크 평가해 이해관계자에게 공시하는 등의 역할이다. 정 상무는 “지난 9월말 금융그룹 최초로 탈석탄을 선언할 당시, 반대 의견도 많았으나 그린뉴딜에 주목해 5가지 핵심분야(그린 리모델링, 그린에너지, 친환경 모빌리티 등) 등에 10조원을 투자함으로써 새로운 기회를 발굴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KB금융지주는 특히 거래기업의 신용평가 체계 고쳐 나가도록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환경과 사회 부문에서 비재무적 요소로 일부 평가에 반영했지만, 앞으로는 신용평가체계에 녹여서 신용 등급, 금리, 한도 등에 ESG 요소를 반영할 계획이다. 또 적도원칙(환경, 사회문제를 일으키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는 원칙)에 지난 7월 가입을 선언했고, 내년 1월 가입을 목표로 준비중이라고 했다.
정 상무는 “TCFD(기후변화재무정보 공개 태스크포스)에 따라 공시하려면, 우리와 거래하는 기업의 대출자산, 투자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총배출량을 산출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며 “이와 함께 기후변화 1.5도씨, 2도씨에 따라 우리의 자산에 어떤 재무적 영향이 있는지 추정하고, 과학적 기반에 근거해 탄소 감축 목표량을 설정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대출과 투자 포트폴리오를 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는 것이다.
정 상무는 “거래하는 기업들의 ‘과학적 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cience Based Targets Innitiative,SBTi)’에 가입하도록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지원한다”며 “거래 기업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밝혔다.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위원장, "RE100 6~7개월 내부 설득 과정"
한편, 정신동 금융감독원 거시건전성감독국장은 “결국 기후변화 복원력을 지닌 산업구조를 만들어 가야하는데, 그 핵심은 그린 투자와 기후변화 리스크 관리”라고 밝혔다. 지난 9월 금융감독원은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모형을 자체개발한 후, 탄소배출량 감축노력이 없을 경우 우리나라가 2030년까지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4%대로 하락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고 한다. 국내 주요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이 8% 이하로 떨어진다고 했다. 금감원은 이와 관련,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 모형개발 등 기후금융 업무를 보다 적극 수행하기 위해 영국 대사관과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이형희 SK 수펙스추구협의회 SV위원회 위원장은 “RE100을 선언하기까지 6~7개월 동안 내부에서 두려워하고 힘들어하는 목소리를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부에 코드 맞춘 것 아니냐” “주가 관리나 하지,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라” 등등 각종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정부의 직접적인 요구도 없었고, 세계 경제의 흐름 속에서 (ESG를 하지 않으면) 파트너들이 우리를 상대 안 해준다”며 “ESG를 하지 않으면 주가가 나빠질 것이라고 설득했다”고 밝혔다.
수요만큼 공급이 될지에 관한 ‘회의론’에 대해, 이 위원장은 “정부의 계획대로 된다면 충분히 공급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녹색요금제와 같은 비싼 가격으로 재생에너지를 사는 것에 대한 논란과 관련, “녹색요금제는 임시 방편일뿐, 결국 재생에너지 확대로 간다”는 입장도 밝혔다. 기술 발전으로 재생에너지 가격은 떨어지고, 탄소 가격은 계속 높아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이날 토론에 나온 신진영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은 “환경 관련 실물투자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녹색채권(그린본드)의 활성화가 필요하며, 녹색채권에 관한 기준 제정, 인증 등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조용성 원장은 “울산은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업종이 모여 있는 곳으로, 자동차는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조선은 원유수송선에서 가스·수소 운반선으로 바꾸는 등 산업구조 개선을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며 “당장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금지 선언 등이 이어지는 등 울산의 4대 정유업체는 매우 큰 위기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에 산업구조에 맞는 에너지 고도화, 맞춤형 정책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넷제로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그린에너지 통합시스템’ 등에 관한 단기, 중장기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