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ESG ⑮】좌초자산 처리, LNG 발전소로? 삼성물산의 탈석탄 선언이 우려되는 이유
2주 전 삼성물산과 한국전력의 연이은 탈석탄 선언으로 업계가 떠들썩했다. 비금융사 최초로 탈석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임팩트온>은 이 소식을 전하며 "좌초자산을 어떻게 처리할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물산은 "주력사업인 LNG 복합화력 및 저장 시설, 신재생 에너지(풍력ㆍ태양광) 등을 중심으로 친환경 사업 포트폴리오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고 했고, 한국전력 또한 "LNG 발전소로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미 투자하고 있거나 건설 중인 석탄화력 발전소를 LNG 발전소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선언은 탈석탄의 관점에서 본다면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여전히 좌초자산의 위험성은 지워지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에너지 전환 공백 메우는 LNG
"무탄소 에너지원은 아니야"
국내에서 LNG 발전은 석탄발전을 대체하기 위한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석탄이 1MW당 0.9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할 때, LNG는 0.4톤을 배출하는 등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현 정부도 출범 당시부터 "에너지 전환 시대에 LNG발전 더욱 중요한 발전원"이라며 LNG 발전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11월 말 발표 될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환경급전’이 도입되면서 석탄 발전의 빈자리를 메꿀 대안으로 LNG 발전을 명시했다.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2017년 LNG 발전량은 12만6039GWh, 2018년 15만2924GWh, 2019년 14만4355GWh로 꾸준히 증가해왔다. 발전원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2.8%, 26.8%, 25.6%로 석탄 발전이 감소한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이런 정부의 시그널에 맞춰 LNG 발전소들도 늘고 있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폐쇄 예정인 석탄발전소 30기 중 24기는 LNG 설비로 전환된다. 전력통계시스템의 2019년 4분기 발전소 건설사업 추진현황에 따르면, 건설 중이거나 건설 예정 중인 LNG발전소는 모두 11개다. 정부의 우호적인 시선에 힘입어 SK, 포스코 등 기업들도 속속 LNG 발전에 뛰어들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천과 청주 반도체 공장 옆에 585MW 규모의 LNG열병합발전소를 건설 예정이고, 포스코에너지는 인천 LNG복합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기 중책 맡은 LNG
그러나 좌초자산 위험은 더 크다는 연구도
전력 공백도 메우고, 좌초자산인 석탄을 건질 수 있다고 여겨지는 LNG 발전에 경종을 울리는 보고서가 나왔다. 한국이 지금과 같은 석탄발전을 계속할 경우 '좌초자산'으로 인한 손실액이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연구결과를 공개한 '카본트래커'는 지난 5월 ‘가스발전, 위험한 전환’이라는 보고서를 내면서 “석탄을 구하기 위한 대안으로 LNG 발전을 늘린다면 또 다른 좌초자산을 만들게 되는 셈"이라며 경종을 울렸다.
카본트래커는 “장기적으로 재생에너지가 저렴해지면서 가스발전 비용은 상대적으로 비싼 에너지에 속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존 가스발전 대 신설 재생에너지 값을 비교해봤을 때 태양광은 2023년경, 해상풍력은 2024년경, 육상풍력은 2025년, ESS 연계형 태양광은 2040년경 LNG 발전비용보다 저렴해진다고 전망했다. (건설 계획 중인 6.2GW의 가스발전 설비가 모두 건설∙운영되고 13.7GW 용량의 석탄발전소가 가스발전소로 대체되는 경우를 상정)
카본트래커는 “현재 운영 중이거나 건설 예정인 탄소저감장치(CCS 설비)를 갖추지 못한 가스발전 설비는 2050년까지 퇴출되어야 한다”며 “가스발전에 대한 불필요한 자본투자 및 영업현금흐름 감소로 인한 좌초자산 위험은 2060년경 74조(600억 달러)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반면 석탄화력발전소를 재생에너지 설비로 대체할 경우 좌초자산의 규모는 절반(37조원)으로 줄어든다.
온실가스 감축에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카본트래커는 “운영 중이거나 건설 예정인 가스발전소를 퇴출하지 않는다면 IPCC가 권고한 2도 미만 상승 시나리오는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경부의 에너지원별 발전량 및 배출량 추이를 봐도 LNG가 완벽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018년 전력 수요가 늘어났음에도 석탄발전량은 전년과 비슷했는데,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량은 6.7%나 증가했다.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석탄발전을 줄이는 대신 LNG와 같은 가스 발전량을 늘렸는데, 온실가스 배출량은 줄어들지 않은 것이다.
최근 EU는 “LNG는 지속가능한 에너지가 될 수 없다”며 녹색산업으로 분류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석탄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적지만, 무탄소 에너지원은 아니라는 점에서다. 대신 “킬로와트시(kWh) 당 100그램 이하로 탄소 배출을 감축한다면 지속가능한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카본트래커 역시 ‘탄소저감장치(CCS·탄소포집·저장기술)’을 갖춘다면 LNG도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차선책이다. 에너지 전환의 최상위 목표는 ‘무탄소 배출 전원’으로 전력을 채우는 것이다. “우리가 투자하는 수십억 유로는 EU의 최상위 목표인 넷제로를 달성하는데 절실히 필요한 곳에 투자되어야 한다.” 탄소 감축 없는 LNG 발전에 투자하는 건 그린 워싱이나 다름없다는 게 EU의 설명이다.
신재생에너지 확대보다 LNG냐 석탄이냐 아웅다웅
정부의 진정성 의심되는 대목
신재생에너지를 주축으로 하는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LNG가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지만, 정부의 확실치 않은 에너지 전환 목표가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주고 있다는 점이 우려할 만 하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2020년부터 2034년까지 향후 15년의 전력수급을 결정하는 계획인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화석연료가 절반 넘는 비중을 차지한다. 정부가 내놓은 안에 따르면, 9차 계획의 마지막 해인 2034년에도 석탄과 LNG가 여전히 주력 에너지원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지난해 말까지 발표되었어야 할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첨예한 갈등으로 1년이나 발표가 지연되는 등 시장에 혼란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LNG를 살릴 것인지, 석탄 발전을 살릴 것인지를 결정하는 ‘환경급전’ 도입을 두고 두 부처 간 신경전이 길어지면서 발표가 1년이나 미뤄진 것이다. 신재생에너지라는 목표는 사라지고 어떤 화력발전을 선택할 것인지가 화두가 되면서, 신재생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것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 정부가 일관된 시그널을 시장에 보내며 안정적으로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늘려가고 있다. 작년 기준 일본의 화력발전 비율은 74%, 국내(66%)보다 화력발전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화석연료 의존율이 크게 상승했지만, 신재생에너지를 꾸준히 육성했다는 점에서 국내와 다른 경로를 걷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관된 정책은 '3E+S'로 표현된다. ▲에너지 안정공급 확보(Energy Security) ▲에너지효율 증진(Economic Efficiency) ▲친환경(Environment) ▲에너지안전성 제고(Safety)를 정책 기조로 삼고 친환경 에너지공급을 에너지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그 결과 일본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꾸준히 상승해 2017년 8%, 2018년 17.4%, 2019년 19.1%로 증가했다.
대부분의 에너지를 수입하는 에너지 고립국이면서 제조업이 산업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본은 한국과 닮아있다. 그럼에도 가는 길은 이렇게 달랐다. 기후 변화센터 김소희 사무총장은 "적절한 에너지 믹스가 결정적인 차이를 낳았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5차 에너지 기본계획을 살펴보면 ▲석탄(26%) ▲LNG(27%) ▲원자력(22%) ▲신재생(24%)으로 비슷한 비율로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김 사무총장은 "1:1:1:1의 비율로 에너지를 믹스했기에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확대할 수 있다"며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에너지 자립도도 잡을 수 있었다"고 평했다. 상황은 비슷하지만 해결방법은 이렇게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