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공사 블랙리스트 오른 한전·두산重... 석탄 퇴출리스트 국내기업 31개 포함

2020-11-18     박지영 junior editor

세계 최대 개발금융기관인 국제금융공사(IFC) 블랙리스트에 한국전력공사와 두산중공업이 올랐다. 독일 환경단체 우르게발트(UREWALD)가 발표한 '세계 석탄 퇴출 리스트'(Global Coal Exit List)가 발표되면서다. 

전 세계 400여 곳 넘는 금융 기관과 자산 총액 14조 달러 이상을 대표하는 투자자들도 국내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석탄 산업에 기여하는 투자처를 포트폴리오에서 배제하기 위해서다.

우르게발트의 리스트에는 대규모 석탄발전소를 운영·건설하는 기업과 석탄 광산, 석탄 발전 등 관련 인프라 산업이 매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기업이 올라간다. 올해 발표된 리스트에 따르면 전 세계 935곳의 회사와 1800여 곳의 자회사·협력사가 석탄 발전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에는 94개 회사가 리스트에서 제외되고 303개 회사가 새로 추가됐다. 국내 기업 31개도 이름을 올렸다.

 

정부까지 나선 두산중공업 살리기 

공적자금이 석탄 발전으로 흘러가는 대표적인 사례로 

국내 기업리스트를 보면, 최근 ‘탈석탄’을 선언한 한국전력공사는 전 세계 주요 발전운영사 중 5번째 큰 규모로 석탄발전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인도,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5위였다. 특히 한전은 발전 자회사를 통해 국내 석탄발전소의 대부분을 소유 및 운영하고 있다. 이 외에도 두산중공업, GS E&R, LG상사, 포스코, SK가스 등 모회사 13곳과 자회사·협력사 18곳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우르게발트는 정부가 석탄 산업의 몰락과 함께 위기를 겪고 있는 기업을 지원한 대표 사례로 두산중공업 구제금융 사례를 들었다. 두산중공업 매출의 최대 80%는 석탄발전소 건설로 이뤄지는데, 일감이 떨어지면서 2014년부터 약 5년간 22억4000만달러(한화 약 2조4799억원)의 누적 순손실을 기록했다.

정부는 올해 두산중공업을 구제하기 위해 올해만 3조6000억원을 지원한 바 있다. 금융당국이 올해 지원에 나선 기업 중 최대 규모다. 3월 두산중공업에 긴급 운영자금 1조원을, 5월에는 8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추가로 지원했다. 수출입은행은 두산중공업의 외화채권 5억달러(5868억원)에 대한 대출 전환도 승인해줬다. 6월에는 풍력발전 등 친환경 에너지 기업 전환을 조건으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서 1조2000억원을 또 다시 지원했다. 

그린피스와 기후솔루션, 경남환경운동연합, 마창진 환경운동연합 등 4개 환경단체는 이를 두고 “두산중공업이 내세우는 석탄, 가스발전 사업에 대한 전망이 과대평가된 점이 지원을 이끌었다”며 공익감사를 청구하기도 했다. 기업의 잠재성과 미래가치를 엄격히 판단해 금융지원을 고려해야 하는데, 이번 자금지원은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설립 근거법상 은행의 적립금으로 손실을 보전하지 못하면 정부가 손실을 보전해야 한다.

기후솔루션 김주진 대표는 당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같은 낙후된 금융기관을 제외하고 전 세계 금융기관이 석탄화력 투자를 피하고 있다”며 “석탄화력 신사업도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상황에서 2조4000억원을 대출해준다고 두산중공업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전까지 두산重 살리기?

한전 '탈석탄' 선언에 서둘러 석탄 사업 재편

한전도 두산중공업 살리기에 나섰다는 의혹을 받았다. 두산중공업과 한국전력은 ‘팀 코리아’로 해외 석탄화력발전에 꾸준히 참여해왔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두산중공업을 살리기 위해 이익도 없는 석탄발전에 무리하게 참여하는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실 제공

한전 등 에너지공기업의 두산중공업 지원 규모는 막대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전과 발전 자회사가 참여한 해외 석탄발전사업 총 9건 중 두산중공업이 EPC(설계ㆍ조달ㆍ시공)에 참여하는 사업은 6건에 달한다. 이를 통해 두산중공업과 그 협력사가 얻을 수 있는 총 수입은 44억3000만달러로 우리 돈으로 5조2000억원 규모다. 

두산중공업은 그간 풍력에너지 등 신사업이 자리 잡을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사업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석탄발전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최형희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올해 주주총회에서 “신규 사업에서 본격적인 매출이 발생할 때까지 기존 사업에서 지속적인 매출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투자자 설명자료 및 2020년 주주총회 발표에서도 기존 신규 해외 석탄화력 건설을 지속하고 신산업으로는 가스발전을 삼겠다고 밝혔지만, 해외 연기금들의 압박과 정부의 넷제로 선언에 따라 한전이 ‘탈석탄’을 선언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두산중공업은 최근 탈석탄 대열에 합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전이 해외 신규 석탄발전 사업 추진을 중단한다는 내용을 담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한 날,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은 CA(Change Agent) 간담회에서 “파워서비스BG의 석탄화력발전 설계 등 관련 인력을 재배치할 계획”이라며 탈석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한편, 2015년 파리기후협약 이후에도 석탄화력발전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5년 이후 지금까지 증가된 석탄화력발전의 총설비용량은 137GW로, 독일, 러시아, 일본의 석탄 플랜트를 모두 합친 것과 같은 양이다. 우르게발트는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지속적인 재정지원이 세계의 석탄화력발전소 용량을 137배 성장시켰다”고 말했다.

헤파 슈에킹 우르게발트 대표는 "기후위기 속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탈석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라며 "석탄산업은 파리기후협약을 이행하는 데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금융기관들이 투자해서는 안 되는 블랙리스트 회사 935곳을 정리한 것"이라고 세계 석탄 퇴출 리스트의 취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