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의 ‘그린본드’에는 이것이 빠졌다... 글로벌 ESG 투자자들 외면한 이유
미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 뷔나에너지ㆍ에온ㆍ한전 3사 그린본드 비교 수익금 사용, 프로젝트 선정 절차, 수익금 관리 등 불투명해
올 상반기 5억 달러(5500억원 규모) 규모로 발행한 한국전력의 ‘그린본드’가 주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자들로부터 외면 받았다는 해외보고서가 나왔다.
23일(현지시각) 에너지 및 환경 금융 분석기관인 미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는 ‘한전 그린본드, ESG 시장 기대에 못 미치다’라는 브리핑을 통해, 한전 그린본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분석했다. 그린본드(녹색채권)은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ESG 채권’의 하나로, 친환경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된다.
한전 그린본드, 모집액 10배 넘는 돈 몰려 수치상으론 성공
우선, 한전 그린본드는 수치로 보면 성공적이다. 발행금리는 5년 만기 1.188%로, 국내 은행·기업이 발행한 글로벌 달러 채권 5년물 중 역대 최저 수준이었다. 모집액의 10배가 넘는 돈인 52억달러가 몰리면서, 금리도 최초 제시금리보다 낮아졌다고 한다. 한전은 그린본드 발행으로 조달할 자금을 “기존 채권에 대한 차환과 국내외 신재생에너지 사업, 신재생에너지 연계설비 확충, 에너지 효율화사업 등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IEEFA의 분석은 달랐다. ESG 투자를 이끄는 주요 기관들의 참여가 미미했다는 것이다. IEEFA의 크리스티나 엔지 이해관계자 협력팀장은 “한전의 그린본드 발행은 얼핏 긍정적인 발걸음으로 보이고, 실제 채권 공모에 참여한 투자자도 매우 많았다”면서 “이는 ESG투자가 급성장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일뿐, 연구에 따르면 주요 ESG 투자자들은 한전의 그린본드를 외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IEEFA는 세 기관의 그린본드를 비교해, 이를 설명했다. AA 등급인 한전 그린본드, BBB 등급의 뷔나에너지(Vena Energy·아태 최대 태양광풍력발전기업) 그린본드, 그리고 BBB 등급의 에온(E.ON·독일 4대 에너지기업 중 하나) 그린본드였다.
한전의 그린본드는 등급이 낮은 뷔나에너지나 에온의 그린본드보다 몇 가지 측면에서 부족함이 눈에 띈다. 우선, 수익금 사용이다. 재생에너지나 친환경 프로젝트에 사용한다는 점은 비슷했지만, 한전은 적격프로젝트를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심사할 지에 대한 구체성이 빠져 있다. 뷔나에너지는 국제기후채권기구(CBI, Climate Bonds Initiative) 기준에 따라, 에온은 유럽 및 국제적 환경 사회표준에 따라 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프로젝트 선정과정의 전문성과 불투명함도 문제가 됐다. 한전은 재무부서와 기획부서 및 기타 관련부서가 프로젝트를 평가하고 식별하는 반면, 나머지 두 기관은 투자위원회, 지속가능성위원회, 그린본드위원회 등의 선정기관이 따로 있다.
수익금 관리 또한 한전은 재무부서가 담당하고, 순수익금은 재무부서 포트폴리오에 담긴다. 반면, 뷔나에너지의 경우 지속가능성위원회가 관리, 감독하며, 수익금이 전액 배분될 때까지 주기적으로 추적되는전용 그린금융계정에 예치해 관리한다.
보고의 독립성도 문제였다. 수익금이 전액 배분될 때까지 매년 수익 배분 및 영향보고서를 제공하는 면은 세 기관이 같지만, 한전은 독립적인 제3자 보증이 없고 나머지 두 기관은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 한국전력공사(KEPCO) | Vena Energy | E.ON | |
| 수익금 사용 |
재생 에너지; 청정 교통; 에너지 효율; 중소기업 지원 및 일자리 창출 등 (*적격 프로젝트 기준 없음) |
수력; 태양광, 풍력 프로젝트 * 적격 프로젝트는 국제기후채권기구 (CBI, Climate Bonds Initiative) 기준에 따라 정해짐 |
재생 에너지, 에너지 효율성; 청정교통 등 *적격 프로젝트는 해당 국가, 유럽 및 국제적 환경 및 사회 표준과 규정에 따라 정의됨 |
| 프로젝트 선정 과정 | 한전의 재무부서, 기업기획부서 및 기타 관련 부서 및 팀이 기준에 맞는 프로젝트를 평가하고 식별함. |
①투자위원회(IC)가 환경 영향 분석, 재무 모델링 및 실사 등 타당성 조사, 선정된 프로젝트를 사전 승인함. ②투자위원회 승인된 프로젝트를 지속가능성위원회(SC)가 기준에 따른 적격 프로젝트 분류, 최종 프로젝트 선정을 검증함. *지속가능성위원회는 운영 부서, ESG/지속가능성 부서, 재무·금융 부서의 고위급 임원으로 구성됨. *프로젝트의 적격여부 결정은 세 부서 모두의 만장일치 승인이 필요함. |
①EU지침을 준수하는 지속 가능성 지침 및 정책이 프로젝트 선정의 최소 기준. 지속가능성부서(SD)와 본사의 그룹 재무부서가 프로젝트 발굴. ②관리부서 및 재무부서는 지속가능성부서 및 에너지 네트워크 및 고객 솔루션 전문가와 협의하여 적격 프로젝트 목록을 작성함. 지속가능성부서는 적격 프로젝트의 ESG 정책 및 지침 준수 보증 책임 있음. ③그린본드위원회(GBC)가 프로젝트 선정, 자금 규모 결정함. *최초의 적격 그린프로젝트 포트폴리오는 3년을 초과하지 않음. *GBC는 지속가능성, 에너지 네트워크, 고객 솔루션, 그룹 금융 및 해당 분야 전문가로 지명될 당사자들의 대표로 구성됨. GBC 회의는 최소 매년 1회 개최됨. |
| 수익금 관리 |
재무부서가 담당. *순수익금은 재무부서 포트폴리오에 예치됨. *미할당 수익금은 미결제 부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불하는 데 사용될 수 있으며(강조 추가됨), 현금, 현금성자산, 투자등급 유가증권 또는 기타 유가증권 및 단기상품에 일시적으로 투자될 수 있음. |
지속가능성위원회가 관리하고, 보고에 대한 감독을 담당함. *수익금은 전액 배분될 때까지 주기적으로 추적되는 전용 그린금융계정에 예치하여 관리함. *미할당 수익금은 전액 배분될 때까지 재무부서가 현금 또는 현금성자산 계정에 배정하여 관리함. |
배분 결정에 대한 위험관리 조치가 전사적 기획, 보고 및 통제 시스템에 의해 적용됨. *미할당 수익금은 재무유동성 포트폴리오(현금 또는 현금성자산, MMF 등)에 보유 또는 투자됨. |
| 보고 |
수익금이 적격 그린프로젝트에 전액 배분될 때까지 매년 수익 배분 및 영향 보고서를 제공함. *제3자 감사 없음 |
수익금의 전액 배분 시까지, 매년 수익 배분 및 영향 보고서를 제공함. *독립적인 제3자에 의해 매년 감사를 받으며, 보증보고서가 매년 제공됨. |
수익금의 전액 배분 시까지, 매년 수익 배분 및 영향 보고서를 제공함. *제한적 보증보고서가 독립적인 감사인으로부터 매년 발행됨. |
*각 기업 그린본드 프레임워크 보고서/IEEFA
거버넌스(지배구조)를 중요시하는 ESG 투자자들은, 한전 내 재무부서와 기획부서에서 ‘적격 그린 프로젝트’를 평가하는 점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예를 들어, 이들 부서가 지속가능 또는 그린 프로젝트와 관련해 어떤 자격이 있는지, 프로젝트 선정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수익금이 ‘재무 포트폴리오’에 예치된 후, 해당 수익음은 어떻게 추적하며, 회사의 다른 자금과 어떻게 분리하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한전에는 수익금이 전액 배분될 때까지 매년 말 수익금 배분 및 관리에 대한 독립적인 검증보고서를 제공한다는 언급이 없다”고 지적했다.
해외 투자자들, "한쪽에선 석탄, 한쪽에선 그린 프로젝트로는 신뢰 부족"
한전은 해외 석탄사업 투자 때문에 그동안 세계 주요 투자자들로부터 압박을 받아왔다. 올 5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과 영국성공회 재무위원회 등 한전의 주요 해외 주주들은 공개적으로 “신규 석탄발전소 사업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한전은 그린본드를 발행한 지 불과 몇 주 지나지 않은 6월 30일, 인도네시아의 자와 9, 10호기 석탄발전소 투자를 확정했고, 지난 10월 5일에는 베트남 붕앙 2호기 신규 석탄발전소 투자도 확정했다.
IEEFA의 크리스티나 엔지 이해관계자 협력팀장은 “한전이 해외 석탄투자를 지속하는 상황에서 ESG 관련 사안을 대하는 방식을 고려할 때, 한전이 발행한 그린본드를 신뢰하기 어렵다”며 “투자자들은 한쪽에서 신규 석탄사업을 추진하면서, 다른 쪽에서 ‘그린 프로젝트’를 내세우는 기업에는 결코 투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외 석탄발전 비판이 계속되자, 지난 10월 28일 한전은 더 이상의 해외 신규 석탄발전소 사업 참여는 없다고 발표했고, 2050년까지 모든 해외 석탄발전 사업에서 철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추진 중이던 석탄발전 사업을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전환하거나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한전의 첫 수익금 배분 및 영향보고서가 내년 중순에 발행될 예정”이라며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내년에 발간될 보고서가 그린본드 투자자들에게 한전의 명성을 쌓을 수도 있고, 무너뜨릴 수도 있는 보고서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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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nstitute for Energy Economics and Financial Analysis, IEEFA)는 에너지, 환경과 관련된 재정 및 경제 이슈를 연구 분석하는 미국의 싱크탱크다. IEEFA의 임무는 다양하고 지속가능하며 수익성이 높은 에너지 경제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www.ieef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