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녹색 판별하는 ‘택소노미(Taxonomy)’ 초안 둘러싸고 논란

21일, 기후변화 리스크 완화 및 적응 부문 택소노미 가이드라인 초안 발표 녹색에서 제외되다시피 한 천연가스업계 반발하기도

2020-11-27     박란희 chief editor
유럽연합이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녹색 분류법, 택소노미는 2022년 1월 1일자로 시행될 방침이다./픽사베이

 

유럽연합(EU)이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있는 ‘녹색 분류법’, 일명 택소노미(Taxonomy) 중 2개 부문에 관한 가이드라인 초안이 21일(현지시각) 발표됐다.

무엇이 녹색인지, 아닌지 명확한 지침을 제공함으로써, ‘그린 워싱(Green Washing)’을 예방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의 첫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EU의 택소노미는 앞으로 2년 후인 2022년 1월 1일부터 기업과 금융기관에 공식적으로 적용될 예정인 데다, 우리나라도 올 연말까지 ‘한국형(K) 택소노미’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어 어떤 형태로 추진될지 주목을 받고 있다.

유럽연합은 총 6개 분야에서 녹색 분류를 하겠다고 했는데, 이번에 발표된 것은 ▲기후변화 리스크 완화(Mitigation) ▲기후변환 리스크 적응(Adaption) 두 부문이다. 나머지 ▲수자원 및 해양생태계 보호 ▲자원순환 경제로 전환 ▲오염물질 방지 및 관리 ▲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복원 등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유럽연합은 이번 가이드라인 초안에 관한 피드백을 12월 31일까지 받는다고 밝혔다.

☞초안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ec.europa.eu/info/law/better-regulation/have-your-say/initiatives/12302-Climate-change-mitigation-and-adaptation-taxonomy#ISC_WORKFLOW

 

천연가스, "킬로와트시당 100g 이하 탄소 배출 못하면 녹색 안돼"

동유럽 국가들 반발 거셀 듯

한데, 벌써부터 온갖 논란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우선 가장 반발이 큰 업계는 천연가스업계다. 현지 언론인 유로액티브는 “천연가스가 킬로와트시(kWh)당 100g 이하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못하면 녹색 라벨을 붙이지 못하게 되고, 이럴 경우 수십 억 유로의 민간자금 지원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고 밝혔다. 왜냐하면 현재 천연가스는 300~350g의 탄소를 배출하는데, 이는 EU 택소노미 기준보다 훨씬 높다. 이 때문에 석탄 대신 복합천연가스 발전소로의 전환을 진행하고 있는 동유럽 국가들의 반발이 거셀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장 유로가스(Eurogas)의 제임스 왓슨 사무총장은 “천연가스가 녹색에너지로의 전환 활동으로 분류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100g 이하 배출’이라는 임계 값은 결국 천연가스를 녹색으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현지 언론에 반발 목소리를 높였다.

운송 수단 또한 논란이다. 자동차는 2025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0)에 도달하면 녹색으로 간주된다. 이에 대해 그린피스는 “2025년까지 킬로미터(km)당 최대 50g까지 탄소를 배출하는 자동차에도 녹색 라벨을 붙이는 것은 여전히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소형 수력발전소나 바이오매스 에너지 등을 녹색으로 분류할지, 말지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나오고 있다. 세계자연기금(WWF)측은 “화석연료를 제외한 것은 칭찬할만 하지만, 나무를 연소한 바이오 에너지의 경우 석탄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데, 이는 지속가능 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바이오매스의 경우 목재 펠릿을 연소시켜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상당해, 환경단체들 사이에서도 재생에너지인지 아닌지를 두고 논란이 있다.

수력 발전소 또한 해양의 생물다양성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환경단체들은 플라스틱에 관해서도 “지난 버전에 비해 대폭 변경됐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가이드라인 초안에 따르면, ‘플라스틱 폐기물의 기계적 재활용에 따라 완전하게 제조되거나, 혹은 최소 배출기준을 충족할 경우 화학적 재활용 프로세스에 의해 제조될 경우’ 녹색으로 분류된다. ‘제로 웨이스트 유럽(Zero Waste Europe)’은 “이번 가이드라인은 순환경제를 위한 목표를 손상시킬 것이며, 화학적 재활용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따라 여러 허점이 드러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니얼 궤겐(Daniel Guéguen) 유럽대학 교수는 유로 액티브에 “이번 택소노미는 유럽 경제를 총괄하는 관료적 슈퍼파워의 모습을 보여준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기후와 관련된 모든 문제(농업, 임업, 제조업, 에너지, 운송, 건설, 물 관리 등)를 다루는 택소노미 보고서를 작성한 이들이 전문가라는데, 도대체 누구냐? 에너지 부문에서 원자력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자동차, 가정용 전자기기 등 제조업체들은 광고 ‘몇 % 지속가능한 차’ 혹은 ‘몇 % 지속가능한 세탁기’와 같은 언급이 포함되어야 하는지 걱정한다. 이 기술보고서가 무려 420페이지에 달하고, 위임 법률의 두 부속서는 500페이지에 이른다. 이 문서를 주의 깊게 읽어봐도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전문가들은 실물 경제를 대변하는가? 아니다. 그들은 주로 은행, 보험사, 재보험사, 유럽 투자 은행, ECB(유럽중앙은행) 등이다.

택소노미는 ‘경제 녹색화를 위한 유럽의 도구(tool)이다. 따라서 이는 각 부문의 탄소중립을 밝힐 일종의 나침반이자 바로미터다. 이 분류법은 유럽 경제, 산업 프로세스 및 기존 기술 규제 등을 감독하는 관료적 슈퍼파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초안은 4주간의 오픈 피드백 기간을 거쳐, 오는 12월 말까지 채택될 예정이다. 국내에도 올 연말까지 마무리될 K-택소노미를 둘러싸고 비슷한 논란이 벌어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