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권 거래제, 정상적인 시장 아니다"

박찬종 국제배출권거래제협의회 이사 "정부 개입 말고 시장에 맡겨야” 산업통상부 컨퍼런스서 지적 목소리

2020-12-04     박지영 junior editor

배출권 거래제도가 아직 정상적인 시장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다. 시장은 시장에게 맡기고, 정부의 인위적 시장 개입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배출권거래협회 박찬종 이사는 산업통상자원부가 개최한 ‘2020 기후변화대응 컨퍼런스’에 참여해 이같이 말했다. 박 이사는 “지금 배출권 거래제는 할당업체만 참여하고 있다”며 “배출권 거래제는 할당업체가 아닌 제3자가 만들어가는 시장”이라고 지적했다.

국제배출권거래협의회 박찬종 이사는 이날 SESSION 1: 지속가능한 경제시스템 선도를 위한 탄소시장 및 기후금융 활용방안에서 기조발언을 진행했다. /2020 기후변화대응 컨퍼런스

배출권 거래제도는 2015년 도입돼 내년에 3기가 시작된다. 3기부터는 시장조성자 외 제3자 참여가 가능해진다. 20개 내외 증권회사가 시장에 참여하고, 개인거래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배출권 거래제는 할당업체들과 시장조성자(한국산업은행, 중소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만 거래가 가능했다. 3기부터는 제3자 참여로 선물 및 파생상품 도입이 예정돼 있다. 다만 도입 시기는 미정이다.

배출권 거래제를 시장답게 만드는 주체는 ‘제3자’다. EU 배출권 거래제 또한 ‘활발한 제3자의 참여’로 활성화될 수 있었다. EU에서도 할당업체의 50%는 거래 경험이 없고 많아봐야 일 년에 1~4회 거래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트레이딩 전문회사, 금융사 등 제3자가 참여하면서 가격발견 기능 및 가격신호 생성 역할을 하면서 시장을 시장답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박 이사는 "유럽의 전력 유틸리티사들은 자체적으로 카본 데스크(Carbon Desk)라는 전문 부서를 가지고 있다"며 "할당업체인 동시에 제3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시장을 조성해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찬종 이사는 “제3자 개입을 막아놓은 배출권 거래제 시장은 제대로 작동하는 정상적인 시장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며 “할당업체는 제조업체로 본질적으로 거래소 거래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박 이사는 “할당업체 중 15%가 한 번도 거래 경험이 없고 그마저도 필요할 때 1년에 한 두번 정도 거래를 한다고 밝혔다”며 “할당업체끼리만 거래를 허용한다면 탄소거래소 대신 장외 거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할당업체들은 거래를 할 만한 인력, 경험, 시간,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내 배출권거래제 물량. 연평균 6억톤 내외가 거래되고 있다. 

유동성이 부족한 것도 제대로 된 시장 조성을 막고 있다고 봤다. 국내 배출권 거래제 물량(Cap)은 6억톤, EU 배출권 거래제 물량은 18억톤으로 EU의 3분의 1 규모다. EU는 27개국이 모여 시장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보면, 국내 배출권 거래 시장도 작은 편이 아니다. 다만, 연간 거래량은 국내 3000만톤, EU는 60억톤으로 EU 거래량의 0.5% 정도만이 거래되고 있다. 박 이사는 “(배출권 거래) 체결 수가 적어서 시장 가격을 조작하기도 쉽고, 배출권 마감일을 앞두고 돌발적으로 급등하는 경우도 많다”며 활성화도 부족하고 안정적이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배출권 거래제 3기부터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제3자가 도입된다. 시장에 참여하는 금융사들을 위해 환경부에서는 시장조성 및 유동성관리라는 명목으로 5년 간 2000만톤의 예비물량을 책정한 상태다. 금융기관이 들어오면 ▲시장 조성 및 유동성 증진 ▲할당업체를위한 거래 중개 서비스 ▲할당업체의 리스크 상쇄와 자금운용 유연성 증진 ▲개인 참여자를 위한 거래 플랫폼 조성 등의 장점이 생길 수 있다.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는 핵심은 선물 도입이다. 지금 배출권 시장은 현물 거래 방식으로 거래할 때 반드시 현금이 필요한데, 할당업체들은 거래 전 자금 집행에 대한 결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자금 운용도 불리하다. 현실과 괴리가 있는 방식 때문에 결국 배출권을 구매하거나 파는데 소극적이게 된다. 또 배출권 제출이 가까워지면 가격이 급등하는 등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배출권 구매 계획을 애초에 세우기 어렵다. 선물 거래의 가장 큰 장점은 변동성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사의 적극적 시장 참여를 위해서도 선물 도입은 필수적이다.

박찬종 이사는 “시장을 시장답게 만들려면, 시장 개방을 가속화하고 시장은 시장에게 맡겨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정부의 인위적 개입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당국의 시장 개입이 너무 잦다”며 “시장에서 배출권을 구하지 못하는 할당업체를 구제하기 위해 개입하고, 가격이 급등했을 때 개입하고, 돌발적인 정책을 내놓으면서 개입한다”며 정부 개입은 불확실성만을 낳아 시장 참여자들이 거래를 꺼리는 악순환을 낳게 된다고 지적했다. 시장을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할당배출권 예비분, 상쇄배출권 및 배출권 비축제도 등 잉여 배출권을 적절하게 확보해주고, 시장이 성숙해질 수 있도록 지켜보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