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에서 E로, 국민연금·한국투자공사도 환경에 초점
ESG 투자 초기만 해도 G 측면이 상대적으로 부각됐다. 한국의 경우 2018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후 기관투자자들이 책임투자를 강화하면서 기업 지배구조 이슈가 대한 관심이 커지며 ESG에 대한 관심을 견인했다. 그러나 코로나19, 겪어본 적 없는 자연재해를 경험하며 초점은 환경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거버넌스(지배구조)로 ESG를 시작한 국민연금은 최근 아시아기후변화투자그룹(AIGCC)에 가입했다. 국민연금은 “이번 가입은 수탁자 책임활동 로드맵에 따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민연금은 2022년까지 책임투자 적용 자산군 규모를 기금 전체 자산의 절반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계획이 구체적으로 실행된다면, 국민연금의 ESG 관련 투자는 2024년 50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AIGCC 가입으로 국민연금의 ESG 투자 초점은 G(지배구조)에서 E(환경)로 옮겨갈 것으로 예측된다. 원종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투자정책위원장은 “기금 가치보호를 위해 지배구조 측면에서 주주권을 행사해왔지만, 내년부터는 E(환경)와 S(사회) 관련 중점관리사안을 마련해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AIGCC는 싱가포르에 본부를 둔 글로벌 연기금 및 운용사 협의체다. 지난 2016년 기후변화 및 탄소배출 문제에 공동 대응하고자 만들어졌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연기금 및 운용사가 참여 대상이다. 현재 50여 곳의 기관 투자자를 회원으로 두고 있으며 회원사의 운용자산을 합치면 9조 달러가 넘는다. 기후 정책과 관련한 투자자 및 각국 정부 간 대화, 기후 리스크 관련 기업경영 관여활동 촉진, 저탄소 투자기회 및 기후변화 리스크 관리 등에 대해 의견도 교환한다.
주요 회원으로는 미국 최대 연기금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과 호주 최대 연기금 오스트레일리언수퍼를 비롯해 블랙록과 알리안츠, 피델리티, 인베스코 등 주요 운용사, S&P글로벌 및 무디스, MSCI 등 금융분석기관이 있다. 우리나라 기관 중에선 한화자산운용이 가입돼 있으며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도 가입돼 있다.
AIGCC는 탄소 배출 및 기후 변화와 관련한 사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AIGCC의 의견이 구속력을 갖거나 회원들이 반드시 같은 의견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주요 기관 투자자가 회원인 만큼 기업 입장에선 무시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AIGCC는 'Climate 100+' 프로젝트를 조직해 투자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Climate 100+' 프로젝트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모여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80%를 차지하는 기업들에게 탄소 배출을 줄이라고 압박하는 것이 목적이다. 참여하는 운용자산의 규모만 해도 47조 달러에 달한다.
국민연금이 이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AIGCC에 가입한 것은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는 기업에게도 주주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Climate 100+은 해외와 국내에서 적극적으로 기후 변화에 대응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 3월엔 한국전력에 “신규 석탄 프로젝트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위험을 자초하고 있다”는 공동성명서를 보내 투자 철회를 촉구했다. 이 성명에는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을 비롯해 12개 AIGCC 회원 기관이 동참했다.
국민연금은 AIGCC 가입과 함께 진행 상황을 입증해야 하는 의무를 부여받는다. AIGCC 참여 기관들은 기후변화에 관련된 위험과 기회를 투자결정이나 투자자문, 사업운영에 통합했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또한 기후 변화와 관련된 위험과 기회에 대한 인식을 제고했는지도 밝혀야 한다. AIGCC는 “가입 기관은 현재 추진 중이거나 향후 1년 동안 착수하고자 하는 이니셔티브의 예를 제시해야 한다”며 “기후 위기를 투자 전략에 반영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고 가입 신청서에 규정한 바 있다. AIGCC 레베카 미콜라 라이트(Rebecca Mikula-Wright) 이사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금융에 반영하기 위해선 투자자 역량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투자공사도 E(Environment) 강화
‘원플래닛 국부펀드 협의체(OPSWF)’ 가입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도 기후변화 관련 세계 최대 국부펀드 협의체인 '원플래닛 국부펀드 협의체(OPSWF)'에 가입했다. 최희남 KIC 사장은 “OPSWF 가입으로 향후 대응 모범사례(Best Practice)를 통한 투자 수익률 향상이 목표”라며 “책임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공공기관이 되겠다”고 밝혔다. KIC는 가입 당일 기후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TCFD)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OPSWF는 전세계 국부펀드들이 파리기후협정에 규정된 목표에 따라 금융을 지원하기 위해 2017년 12월 설립됐다. 기후 변화 대응 관련 체계를 개발해 회원기관과 투자대상 기업, 위탁운용사들이 이를 채택하도록 하는 게 목표다. 노르웨이 국부펀드 NBIM과 아부다비투자청 등 글로벌 국부펀드가 회원이다. OPSWF에 참여한 투자자 기금 규모는 30조달러(약 3경3000조원)에 이른다.
한국투자공사 또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ESG 행보를 시작했다. 한국투자공사 최진석 투자기획실 차장은 “2016년부터 ESG는 메가 트렌드라고 판단해 국내 금융기관 중 가장 선제적으로 ESG 투자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한국투자공사는 기업의 거버넌스를 중시하는 International Forum of Sovereign Wealth Funds(IFSWF)에 가입하기도 했다.
한국투자공사는 이번 협의체 가입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할 방침이다. 한국투자공사 최희남 사장은 "기후 변화 관련 재무정보가 투자의사결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로 자리매김했다"며 "KIC도 기후변화 관련 투자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작년 전체 의결권 행사 중 48%가 기후변화와 환경 표준과 관련된 건이기도 했다. KIC는 2019년 10월 ESG에 부합하는 기업들로 구성된 3억 달러 규모 ESG전략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내년에는 ESG 요소만을 고려한 펀드도 출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