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출권 리스크, 현실로 다가온다

2020-12-30     박지영 junior editor

현대제철이 사상 첫 ESG 채권 발행에 나선다. 내년 1월 18일 2500억원 규모의 녹색채권 수요예측을 진행, 1월 말 최대 5000억원을 조달할 방침이다. 트렌치는 3·5·7년, 대표 주관사단은 KB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이다. 한국신용평가가 사전검증을 맡았다.

그런데, 이번 녹색채권 발행이 심상찮다. 현대제철은 탄소배출 다배출 업종인 철강이다. 쇳물을 생산할 때 쓰이는 철광석을 고로에서 뜨거운 바람으로 녹일 때 이산화탄소가 다량으로 배출된다. 온실가스 배출 할당량만큼 탄소를 줄이기 위해선 기존의 공법까지 바꿔야 할 정도로 탄소 중립에 큰 부담을 받는 업종이다. 이번 ESG 채권 발행을 그냥 지나쳐선 안 되는 대목이다.

탄소 감축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기업들이 재무적 리스크를 직격으로 맞을 수 있다는 예측이 현실이 되고 있다. 할당량을 초과해 탄소배출권을 구매하게 되면 회계상 배출부채 항목으로 잡힌다. 유동부채에 포함되는 것이다.

현대제철은 2017년부터 사업보고서에 배출부채를 기입하기 시작했다. 현대제철의 배출 부채는 2017년 27억원, 2018년 441억원에 이어 작년 1143억원으로 급증했다. 올 3분기 기준으로는 654억원이다. 현대제철은 국내 상장기업 가운데 두 번째로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포스코가 1위다.

배출부채는 쌓이는데, 영업이익은 줄어만 간다. 현대제철은 올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 176억원을 기록했다. 배출부채가 영업이익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작년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479억원. 코로나19가 없었더라도 배출부채를 감당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현대제철은 이번 녹색채권으로 발행으로 시설 정비에 들어간다. 공정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함이다. 2025년까지 CDQ(코크스 건식 소화 설비)를 설치할 계획이다. 코크스 냉각시 발생하는 폐열을 회수하고 증기와 전력으로 재생산하는 설비다. 간 약 50만톤 이상의 온실가스가 감축되는 효과가 예상된다.

그동안 주로 차환, 유산스(Usance) 결제 목적으로 공모채를 발행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업황이 악화되면서 철강 수요는 감소했다. 오히려 배출부채가 더 큰 재무적 리스크로 다가오면서 친환경으로의 체질 개선을 통한 비용 완화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현대오일뱅크도 내년 1월 발행할 공모채를 ESG 채권으로 발행하기로 했다. ESG 채권으로 조달하는 최대 4000억원은 탈황 인프라 증설과 친환경 신사업 발굴에 활용한다. 온실가스와 대기오염 물질을 저감해주는 시설 보완에도 자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매년 회사채로 수천억원을 조달하는 현대오일뱅크가 ESG 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운영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공모채, 신종자본증권(영구채), 사모채 등을 발행해왔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8월 △탄소 배출량에 대한 단계적 감축 △이산화탄소 제품화 사업 추진 △수소를 비롯한 친환경 에너지 사업 진출 등의 내용을 담은 '탄소중립 그린성장' 전략을 발표했다. 현대오일뱅크의 배출권 부채는 2017년 약 15억원, 2018년 약 964억원, 2019년 약 18억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