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ESG투자를 보는 눈
2021년은 ‘ESG 원년’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나오는 가운데, 아시아에서의 ESG 흐름 또한 급속히 상승 추세다. ‘펀드유럽’은 서방세계에서 메인스트림으로 자리잡아가는 ESG 투자가 아시아에도 주목할 성장세를 보인다고 짚었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데이터가 확보되지 않은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반 사회책임투자 관련 액티브, 패시브 펀드에 88억 달러(9조5000억원)가 3분기에만 기록적으로 유입됐다. 특히 일본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글로벌ESG고품질성장펀드(High Quality Growth Equity Fund)가 55억달러(5조9000억원)를 끌어 모아 선두를 나타냈다. 대만은 8억달러(8600억원), 호주는 8억1500만달러(8800억원) 등으로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아시아는 급상승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ESG 투자의 11%, 전 세계 지속가능펀드 자산의 3% 등으로 아직 미미한 실정이다. 유럽의 지속가능펀드가 4000개인 반면, 아시아와 미국은 400개에 불과하다. 이처럼 아시아에서 지속가능펀드 실적이 아직 미미한 이유는 역사적, 문화적 환경과 관련이 깊다. 대부분 단기 성과 위주의 운용이 많은데다 지속가능한 장기 성과 위주의 투자 전략에 관한 리소스, 지식, 기술 등이 부족하고, 펀드매니저들은 ESG 매트릭이나 표준, 산업 등에 관한 이해도나 관심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물론 서양에서도 이는 쉬운 일이 아니어서, 끊임없는 토론의 대상이기는 하다.
또 다른 이유는 유럽연합에서는 지속가능투자를 견인하는 강력한 규제 어젠다가 존재하는 반면, 아시아에선 지금까지 이런 흐름이 없었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스미스 애버딘S 아시아 주식투자담당 선임이사는 펀드유럽에 “중국, 홍콩, 싱가포르, 인도 등지에서 지난 3년간 자산운용사 및 투자자들이 ESG 투자에 대한 관심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이는 정부 감독당국과 중앙은행이 녹색금융과 환경규제를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흐름이 반영된 것”이라고 밝혔다.
아시아의 각국은 최근 달라진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인도는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 비해 ESG 투자흐름이 더디긴 하지만, 2년 전 봄베이 증권거래소에서 ESG 공시에 관한 지침을 담은 문서를 발행했다. 이는 500대 대기업에게만 공시 의무사항이 적용될 뿐, 다른 기업은 아직 적용대상이 아니다.
싱가포르 통화당국(MAS)는 올해 싱가포르 경영대학에 녹색금융 연구와 인재양성을 전담하는 최초의 연구소를 지원했다. 또 최근에는 금융기관의 리스크 관리를 위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내놓았고, 지난해 11월 녹색금융 활성화를 위해 20억달러를 투자했다.
홍콩은 2020년 상장사를 대상으로 한 ESG 공시 요건을 업데이트했다. 2025년까지 홍콩 내 금융기관과 상장기업들이 TCFD 기준에 맞춰 정보공개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ESG 관리감독 및 모니터링 과정을 공개하도록 함으로써 이사회를 더욱 책임 있게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다. 기업은 이제 기후변화가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공시해야 한다는 시그널인 셈이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유엔총회에서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공약한 이후, ESG가 급가속화되고 있다. 중국은 3년 전 제19차 당대회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정책을 시작했고, 2019년에는 녹색금융체제로의 개편을 천명했다. 중국 남방자산운용, 중국생명자산운용 등 20여개 중국계 자산운용사는 유엔 책임투자원칙(UN PRI)에 서명하기도 했다.
이스트캐피털의 중국 담당 카린 흔(Karine Hirn)은 “현재 중국 국내 10조달러(1800조원)의 운용자산총액 중 3% 정도만이 외국인 투자자들 비중이지만, 추후 MSCI 지수에 A그룹에 추가 편입되면 장기적으로는 10% 가량으로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중국은 아직 초창기 시장이지만, ESG 이슈를 의사결정 과정에 통합할 경우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고 보는 흐름이 현지 자산운용사들에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 시장에 관한 우려와 불안을 나타내는 의견도 있다. UBS 자산운용의 지속가능투자 전문가인 마르틴 오스터우드 소장은 “아시아에서는 ESG 데이터 가용성이 제한돼있는데, ESG를 잘하는 기업을 파악할 수는 있지만, 약점을 파악할 수 있는 구조가 있는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지배구조(G) 측면에서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는 어려운 한계점도 있다”고 주장한다.
또 환경(E)의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을 측정하는 등 비교적 단순하지만, 사회(S)의 경우 인전자본 관리, 보건 및 안전, 공급망 이슈를 다루기 때문에 기업의 ESG 데이터 관련 신뢰성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공시의 양과 질에 관한 개선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JP자산운용의 오고시 아이사 펀드매니저는 “기업들이 ESG를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며, 각국이 ESG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선진국과 신흥시장이 각각 다를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고 밝혔다. 아시아 또한 서양과 변화의 속도는 다를지라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ESG 투자 로드맵을 만들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