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첫날을 시작했다. 대선 결과 불복종에 이어 의사당 난입 사태까지 넷플릭스(Netflix)의 <하우스 오브 카드>를 연상케 하는 전대미문의 혼란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이다.

대통령 당선인 신분때부터 조 바이든은 트럼프 지우기에 들어갈 것임을 명확히 밝혔었다. 그러다 보니 향후 정책방향에 대해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글로벌 기업들은 인수위와의 커뮤니케이션 통로를 만들어 각종 문의와 함께 의견개진을 하기에 바쁜 나날을 보냈었다.

선거에서 일방적 승리를 거두지 못한 당선인이 전 시대의 주요 정책을 뒤집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백악관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첫 업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탈퇴한 파리 기후변화협약에 재가입하기 위한 절차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우리 일상에서 수많은 뉴 노멀을 초래하고 있는 코로나19사태는 특히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는데 일등 공신이 되었다. 생산이 멈춰지고 여행이 금지되면서 하늘 빛이 맑아졌다.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이 환경 보존의 중요성을 일깨웠다면, 코로나19사태는 환경 보존의 실현가능성을 확인시켜주었다. 카멀라 해리스가 최초의 여성, 최초의 흑인, 최초의 인도계 부통령이라는 점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 전에 엄연히 존재했던 미국 사회 곳곳의 수많은 차별적 요소를 돌아보게 한다. 

글로벌 사회에서 지금 추진되고 있는 많은 변화들의 성공 여부는 결국 대의명분에 의해 판가름 날것이다. 탄소 중립 대륙을 만들겠다는 유럽 그린딜(Europe Green Deal)은 탄소 순수출국이며 무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기업들에게는 탄소국경세의 부담을 초래할 것이다. IT기반의 몇몇 글로벌 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RE(Renewable Energy)100'은 기존 협력업체에 대해서도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해 만든 제품을 납품하라는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RE100은 공급망 재개편 과정에서 새로운 협력업체의 선정 기준이 되고 있다.

자사의 비즈니스 모델이나 산업의 특성 때문에 많은 기업들에게는 이런 시대적 요구사항이 또다른 ‘사다리 걷어차기’로 비춰질 수 있다. 특히 각종 이니셔티브가 몇몇 글로벌 리딩 기업들에 의해 주도되면서 많은 후발주자들은 ESG시대의 새로운 진입장벽에 봉착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 사회, 지배구조 측면의 기업경영활동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사다리가 완전히 걷어차이기 전에 그 사다리에 올라가는 것 이외의 다른 대안은 없어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전세계적으로 ESG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코스피 상장사 중 시가총액 상위 2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K-ESG 평가가 지난해 12월 종료되었다. 전 산업에 공통으로 적용 가능한 총 61개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업보고서, 기업지배구조보고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 기업 외부에서 접근 가능한 공시자료를 활용하여 객관적으로 평가하였다. 그 결과 평가대상 기업의 평균점수는 35.34점, 표준편차는 14.67점이었다. ESG 시대에 올라가야 할 사다리의 계단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으며, 현재 도달한 위치도 기업마다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ESG와 관련하여 우리 기업들의 관심사는 매우 높다. 2021년 신년사를 살펴보면 주요 대기업들이 ESG 경영을 통한 지속가능성 증진의 필요성을 한 목소리로 강조하였다. .

“ESG를 강화해 더욱 많은 경제적/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기업의 ESG 경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더욱 커지면서…,” “지난해 ESG 평가에서…,” “ESG를 강화해나가는 동시에 우리의 경영활동에서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ESG 경영 고도화를 통해 사랑 받는…”,  “ESG 강화를 요구하는 등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요구…,” “ESG중심의 경영을 필수로 인식하고…,” “전사적으로 ESG 경영체계를 구축해…,” “올해 ESG를 선도하는 친환경 기업으로…,” “전 세계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ESG 강화와 관련해…,” “2021년을 ESG경영 원년으로…," “ESG 경영과 지표는 선택이 아닌 필수”

코로나19사태의 장기화로 인해 수많은 기업들이 성장은 커녕 생존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면서 그 돌파구의 일환으로 ESG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ESG 전문가를 영입하거나 ESG위원회를 신설하는 기업의 숫자가 최근 급증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ESG 때문에 재계가 초비상 상태”, “ESG에 기업들이 승부수를 던졌다”라는 등의 다소 자극적인 표현이 각종 미디어에 등장하고 있다.

ESG 경영에 대한 정부차원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1월 14일 금융위원회에서 기업공시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ESG 책임투자 기반조성’을 강조하였다. 구체적 추진과제로는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의무화 확대,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공시 활성화,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 검토, 의결권자문사 관련 제도 정비를 제시하였다. 기업의 공시 부담은 줄여주고 투자자 보호는 강화하여 ‘시장친화적인 공시제도’를 수립하겠다는 취지이다.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의무공시 대상은 기존의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에서 단계적 확대를 거쳐 2026년부터는 전코스피 상장사로 확대된다. 반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의 경우 2025년까지 자율공시 활성화를 거쳐 2030년부터 전체 코스피 상장사의 공시의무화가 기본 골자이다.

이렇듯 ESG에 대한 관심이 뒤늦게 나마 한국사회에서 급증한 것은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ESG에 대한 관심이 진정한 ESG경영으로 이어지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ESG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를 함께 고려해서 기업의 경영활동을 총체적으로 진단하는 것이 ESG의 본질이다. 하지만 이번 금융위원회의가 제시한 ESG 책임투자 기반조성 및 관련 추진과제는 ESG에 대해서 ‘따로 또 같이’보다는 기존의 ‘따로’ 접근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배구조(G)와 관련된 정보는 ‘기업지배구조 보고서’에, 환경·사회(ES)와 관련된 정보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포함되는 등 ESG 정보공개의 대상 및 시기가 각기 다르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런 접근방식을 통해 기업의 공시 부담은 줄여주고 투자자 보호는 강화하겠다는 본래의 취지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K-ESG 평가결과는 ESG 각 분야에서 어떤 부분이 시급히 개선되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시가총액 상위 200대 기업의 ESG각 점수를 100점 만점으로 환산했을 때 지배구조(44점)나 사회(37.2점)에 비하여 환경(24.7점)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지구촌에서 RE100, 탄소국경세 등 환경(E) 관련 이슈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기업들은 글로벌 시장 의존도가 매우 높다. 2019년 매출액 기준 상위 10대 기업의 해외매출 비중 평균은 61.3%이며 상위 5개 기업의 경우에는 70.6%에 달한다.

재생에너지 관련 국내정책에 불만이 쌓인 소니(Sony)는 일본정부가 에너지 관련 정책에 큰 변화를 이끌어 내지 않는 한 생산설비를 해외로 이전하겠다고 경고해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2040년까지 전 세계 모든 시설에서 그린에너지를 사용하겠다는 계획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 일본 공장이기 때문이다. 삼성 본사가 한국을 뜬다는 가짜 뉴스와 대비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기업들이 정부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지혜를 모아 ESG경영에 대한 전략적 접근방식이 필요한 이유이다. 


※ 이재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이재혁 교수는 고려대에서 사회적기업센터 소장, 지속가능경영 연구그룹장, 중남미연구소 위원을 맡고 있다. 국민연금 수탁자 책임 전문위원회(책임 투자분과) 위원, 한국전략경영학회 회장, 한국기업지배구조원 기업지배구조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지속경제사회개발원 창립 멤버 및 KOTRA 글로벌 CSR사업 심의위원,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민관합동 T/F위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연구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속가능성 평가(ESG),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지속가능발전목표(SDG), 경영전략 및 글로벌전략을 포함한 여러 관심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 및 저술 활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국제경영학 분야 최고권위의 국제학술지Journal of International Business Studies (JIBS)를 포함 다수의 저널에 논문을 게재했으며, 한국국제경영학회 최우수 해외논문상을 수상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CSR을 넘어 SDG로, 기업 지속가능성을 높여라', 'The Role of Corporate Sustainability in Asia Development: A Case Study Handbook', 'Green Leadership in China: Management Strategies from China’s Most Responsible Companies', '현대기아차 중국 마케팅 사례', '경영교육 환경의 현황과 시사점' 등이 있다. 

중국 내 다국적 기업과 중국기업들을 대상으로 CSR Ranking을 조사 분석해, 그 결과를 <Fortune China>에 발표했다. 최근에는 한국의 시가총액 상위 2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지속가능경영 실태 조사를 위한 ESG 지표개발 및 평가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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