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피격 후폭풍… 미 기업들, ‘정치적 올바름’ 목표 삭제 중

미국 기업들이 정치적 올바름(PC)에 따른 인센티브 정책을 폐지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공화당의 정치적 압박 가운데  기업들이 임원 보너스 지급 기준에서 다양성, 공정성 및 포용성(DEI) 목표를 삭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DEI 목표는 조직 내에서 성별, 국적, 인종, 장애 여부 등 다양한 배경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환영하고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반도체기업 AMD, 통신제조기업 모토로라, 금융기업 리전스파이낸셜(RF) 등 미국의 주요 기업들이 DEI 목표를 경영진 보수 계획에서 삭제했다.

FT 보도에 따르면, 반(反) ESG를 표방하는 미국의 자산관리업체 스트라이브(Strive)는 주주투표 등을 통해 압력을 행사, 기업들의 DEI 목표를 제거하거나 축소시켰다. 실제로 60개 기업들이 임원 보수 계획에서 ESG 및 DEI 목표에 따른 인센티브 조항을 삭제했다.

스트라이브는 미국 공화당 소속 정치인이자 기업인인 비벡 라마스와미(Vivek Ramaswamy)가 2023년 5월 설립한 자산운용사로, 16억달러(약 2조2211억원) 이상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스트라이브 최고경영자(CEO) 매트 콜(Matt Cole)은 기업들이 "DEI와 ESG 조치에서 벗어난 것에 박수를 보내며, 이러한 결정이 경영진의 인센티브에 보다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DEI와 ESG 목표가 경영진의 인센티브 구조에 포함될 경우, 경영진이 기업의 재무 성과와 관련이 낮은 목표를 추구하게 되어, 기업의 비즈니스 목표에 방해가 된다는 주장이다.

농기계 제조업체 디어(Deere)는 16일(현지시각) “사회적 또는 문화적 인식을 높이기 위한 행사와 소수자 할당제, 성 중립적 대명사 정책(그/그녀 대신 ‘그들’ 등을 사용하는 것)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이번 디어의 성명은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피격 사건 후에 나왔다. 공화당이 미국 비밀경호국(Secret Service)의 경호 실패 원인 중 하나로 DEI 정책을 지목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지나친 다양성 채용이 비밀경호국을 포함한 여러 정부기관의 효율성을 떨어뜨렸다고 주장했다. 17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 등 현지 매체는 SNS에서 공화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여성 요원 채용 자체를 비판하는 성차별적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고(故) 존 매케인(John McCain) 상원의원의 딸 메건 매케인(Meghan McCain)은 “비밀 경호국에 여성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경호원들은 최고여야 하는데 이 직업에 최고인 여성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비밀경호국 국장 킴벌리 치틀(Kimberly Cheatle)은 비밀경호국의 역대 두 번째 여성 리더로, 2030년까지 신임 직원의 30%를 여성으로 채용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현재 비밀경호국의 전체 직원 중 여성 비율은 약 4분의 1이다.

22일(현지시각) AP통신은 킴벌리 치틀 국장이 경호 실패로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있다며  공화당은 치틀 국장의 사임을 촉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DEI에 따른 임원 보수 규정에 대한 비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9조달러(약 1경2493조원) 이상을 운용하는 글로벌 자산운용사 뱅가드(Vanguard)는 지난해 “잘못된 ESG 목표는 성과에 비해 과도한 임원 보수 책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3월 스타벅스 주주들 또한 경영진 인센티브 기준 중  DEI 목표를 삭제하고 이를 직원 교육, 생산성 향상, 보건안전 등 일반적인 인력관리 목표로 대체시켰다. 2023년 기준 전체 경영진 보너스의 7.5%를 차지하던 DEI 목표가 삭제된 것이다. 블룸버그는 해당 결의안에 찬성한 주주는 92%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스타벅스는 2020년 10월 DEI를 임원 보상 체계에 포함시키겠다고 처음 발표한 바 있다.

DEI 정책을 후퇴시킨 것은 스타벅스만이 아니다. ESG 데이터 분석업체 이에스게이지(ESGauge)와 비영리 싱크탱크 컨퍼런스 보드(Conference Board)의 연구에 따르면, S&P 500 기업 중 경영진 보수 체계에 DEI 지표를 포함하고 있는 비중은 2024년 6월 기준 66%로, 지난 2023년 75%보다 하락했다. 

컨설팅업체 EY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기고한 보고서에서 명확하지 않은 ESG 성과 측정은 주주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며 경영진 급여와 ESG 목표 연계 제도는 감사가 가능해야 하며, 가급적 기존 공시 기준에 따라 공개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컨설팅업체 페이거버넌스(Pay Governance)의 파트너 마이클 케스너(Michael Kesner)는 기업들이 DEI 목표를 축소하거나 삭제한 이유로 자산운용사들의 까다로운 정량화 요구를 지목했다. 공화당 중심의 ESG에 대한 정치적 압력에 계속됨에 따라 자산운용사들이 DEI에 대한 목표도 구체적으로 계량화할 것을 요구하자 기업들이 이를 부담스럽게 여겨 회피했다는 것이다. 

다만 케스너 파트너는 "DEI 목표를 제거하는 기업들은 직원과 고객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며, 이에 대한 리스크도 감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