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ESG 포트폴리오 내 방산 주식 확대...죄악 산업과 ESG 논쟁 또 고개 드나    

2024-09-04     송준호 editor

유럽연합(EU)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투자 포트폴리오에 방산 주식의 비중을 확대하면서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ESG 투자에서는 전통적으로 환경 파괴, 무기 생산 등 '죄악 산업'으로 불리는 부문을 배제하는 경향이 강했으나, 최근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인해 방위 산업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이러한 경향이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유럽과 영국의 ESG 펀드 중 3분의 1이 해당 부문에 77억유로(약 11조원)를 투자했다고 해외 미디어 파이낸셜 타임스(FT)는 2일(현지시각) 전했다. FT가 시장조사 기관 모닝스타 다이렉트에 의뢰한 분석에 따르면, 2022년 1분기 기준 32억유로(약 5조원)에서 2년만에 투자금이 두 배 이상 뛰었다. 

ChatGPT를 활용한 이미지/임팩트온

 

방산 지분 5% 넘는 유럽 ESG 펀드 3배 늘어…미국도 마찬가지

방산기업에 투자한 유럽 ESG 펀드가 급격히 늘었다. 

모닝스타는 항공우주 및 방위 산업체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유럽 ESG 펀드의 수가 지난 2년 동안 22개에서 66개로 세 배나 증가했다고 전했다. BNP파리바의 ETF(Easy CAC 40® ESG UCITS ETF 포함)는 항공우주 및 방위 부문에서 보유 주식의 10%를 돌파했으며, 아문디의 Index Solutions CAC 40 ESG도 비슷한 수준으로 집계됐다.

이는 방산 기업의 주식 가치가 상승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MSCI 유럽 항공우주 및 방위 지수는 2022년 초부터 주요 계약업체의 주가가 급등하면서 1.8배 상승했다. 금융회사 엘에스이지 리퍼(LSEG Lipper)의 데이터에 따르면, 더 광범위한 투자 시장에서 방위 테마 뮤추얼 펀드와 거래소 상장 펀드의 지분은 2022년 1월의 58억달러(약 8조원)에서 2024년 7월의 176억달러(약 24조원)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유럽의 ESG 펀드가 보유한 방산 주식의 보유량이 2022년 4분기부터 증가 추세를 보였으며, 올해 1분기 급증했다./FT

이런 상황은 미국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다. 모닝스타는 미국에서 항공우주 및 방위 산업에 대한 ESG 펀드 노출 규모는 2022년 2분기 7억7900만유로(약 1조2000억원)에서 2024년 2분기 12억유로(약 1조8000억원)로 증가했다. 

세계 최대 ESG 펀드 중 하나인 블랙록의 iShares ESG Aware MSCI USA에는 미국 방산 대기업 RTX와 노스롭그루먼, 허니웰이 포함되어 있다. RTX와 노스롭그루먼은 미사일과 로켓 모터를 포함해 미국 국방부의 구매 혜택을 봤다. 

모닝스타의 유럽 주식 분석가인 마이클 필드는 “해당 부문이 ESG 영역에서는 지뢰밭으로 여겨졌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투자자들이 마음이 열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많은 투자자들이 이전에는 방산산업을 ‘비교적 흥미롭지 않다’라고 느꼈지만, 이제는 꼭 투자해야 하는 부문으로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투자업계, “방산산업은 반(反) ESG”...투자배제 전략 취해와

방산 산업이 친(親) ESG인지 반(反) ESG인지를 두고 산업계와 금융업계는 논쟁을 벌여왔고, ESG와 거리가 멀다는 게 투자자 사이의 중론이었다. 

투자 배제도 이런 입장을 따랐었다. 일례로 한화는 2020년에 글로벌 연기금에서 투자 배제를 당하면서 분산탄 사업을 매각했다. 독일 방산업체 라인메탈AG도 2022년 독일은행인 LBBW와 바이에른LB가 ESG 우려로 신용거래가 중단됐다고 밝힌 바 있다. 

ESG펀드의 죄악산업 투자 비중이 확대된 데는 2022년 2월 발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방산 기업의 주가가 급등한 데 일부 영향을 받았다. FT는 투자자들이 가만히 있다가 손해를 보기 보다는 죄악산업에 투자하는 리스크를 감당하는 게 낫다는 규제 당국의 입장에 동조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EU 집행위원회는 2022년 2월 15일 발간한 정책 보고서에서 “지속가능금융에 대한 이니셔티브들은 유럽 방위산업이 금융과 투자에 쉽게 접근하도록 돕는 EU의 노력에 부합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고 4일이 지난 2월28일 EU가 소셜 택소노미를 발표하던 때, 방산 산업이 ESG에 포함될지 여부를 두고 큰 논쟁이 있었다. 

EU는 2월 28일 소셜 택소노미 최종 보고서를 발간했다./ EU집행위원회

방산산업계는 EU집행위원회의 지지 입장에 힘을 받아 목소리를 높였다. 한스 크리스토프 아츠포딘(Hans Christoph Atzpodien) 독일 방산업체 BDSV CEO는 소셜 택소노미 발표 후 “방위산업을 ESG택소노미가 규정하는 ‘사회적 지속가능성(Social Sustainability)’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산업으로 인정해 달라”고 촉구했다.

투자자들은 방산업계의 의견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했다. 안체 슈니바이스(Antje Schneeweiß) 독일 교회 투자 그룹 AKI(Arbeitskreis Kirchliche Investoren)의 CEO는 “소셜 택소노미에 따르면, 군비는 ‘소셜(Social)’로 분류될 수 없다”며 방산업계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슈니바이스 CEO는 소셜 택소노미 최종 보고서를 발간한 EU집행위원회 산하의 지속가능금융 플랫폼(PSF, Platform on Sustainable Finance) 하위그룹 4에 보고관으로 참여했다.

 

방산업계, “안보 없이 ESG 논할 수 없어”…투자업계도 한 걸음 뒤로

방산업계는 산업이 성장하면서, ESG에 기여한 바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내고 있다.

영국의 방산기업 BAE 시스템스의 최고재무책임자 브래드 그레브는 해외 미디어 CNBC에 “ESG와 관련해 훌륭한 일을 하고 있더라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는 이런 대화를 나눌 수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그레브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에 사람들의 태도가 크게 변했다. 방산기업이 사회를 보호하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고 부연했다. BAE 시스템스의 주가는 2022년 2월 20일부터 2024년 8월 29일까지 약 130% 상승했다.

스웨덴의 방산기업 사브(Saab)의 CEO인 미카엘 요한손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에 대한 본격적인 침공을 개시하기로 한 결정이 ESG 논쟁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그는 “안보와 억제 효과가 지속가능성의 토대가 된다. 이것이 없이는 ESG에 대해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요한손은 ″이 비극적인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사브에 4만5000명에서 5만명가량의 주주가 있었고, 지금은 17만5000명이 넘었다”고 덧붙였다. 사브의 주가는 2022년 2월 20일부터 2024년 8월 29일까지 330% 급등했다.

사진=BDSV

투자업계도 늘어난 투자 외에 발언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고 방산산업은 곧 반ESG라는 입장에서 다소 물러선 것이 포착된다. 

덴마크 투자은행인 삭소 방크(Saxo Bank)의 상업ESG책임자인 이다 커셔 요하네센은 CNBC에 “무기를 생산하기 때문에 악당이라고 하기는 어려우며, 큰 악당도 있고 그렇게 나쁘지 않은 회사도 있다”며 “방산기업을 모두 악마화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자산운용사 라스본스 그룹(Rathbones Group)의 다중자산 투자 책임자 데이비드 쿰스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지속 가능한 펀드에 방산주를 새롭게 추가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펀드에 대해 수행하는 일반적인 위험 분석의 일부로 ESG 위험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라스본드가 2016년부터 미국의 방산회사 록히드마틴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기간 이 주식의 ESG 리스크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