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 미 재계와의 법정 싸움에서 승리... “의결권 자문사, 기업에 주주 권고사항 미리 알려줄 의무 없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미국상공회의소와의 법정 싸움에서 승소했다.
11일(현지시각) 미국 제6연방순회항소법원은 SEC의 의결권 자문사에 대한 규제 폐지 조치가 합법적이었다고 판결했다.
2022년 SEC는 의결권 자문사가 주주에게 제공해야 하는 권고사항을 기업에 먼저 알려줘야 한다는 규정을 폐지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 의결권 자문사에 "기업에 주주권고사항 먼저 알려줘라"
바이든 행정부, 해당 규제 폐지
의결권 자문사는 주로 기관 투자자들이 상장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주주총회 안건 분석 및 투표 방향 권고, 기업 지배구조 평가 등이 대표적이다. 의결권 자문사가 신임을 얻기 위해서는 정치권 및 재계로부터 독립적인 의견을 주주에게 제공해줄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은 일찍이 의결권 자문시장이 발달해왔으며,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와 글래스 루이스(Glass Lewis)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실제로 기관투자자들은 양대 의결권 자문사의 투표 권고에 높은 의존도를 보이고 있다.
기업들은 의결권 자문시장이 독과점 구조를 보이고 있으며, 기관투자자들에 대한 양대 의결권 자문사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높다며 불만을 제기해왔다.
이에 2020년 트럼프 행정부 시절 SEC는 의결권 자문의 투명성과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규제를 도입했다. 해당 규제는 의결권 자문사가 주주 권고안을 기업에 미리 제공하고, 기업이 대비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기업은 미리 확보한 권고 내용을 바탕으로 주주총회 전략을 조정하거나 주주들에게 해명 및 설명 자료 준비, 언론 소통 등 불리한 권고가 나갈 경우에도 대응 방안을 미리 마련해놓을 수 있다.
그런데 이후 들어선 바이든 행정부의 SEC는 이러한 규제가 의결권 자문사의 독립성을 해치고 불필요한 행정적 부담을 야기시킬 뿐 아니라, 자문사의 신속한 정보 제공을 방해한다며 우려를 제기했다. 결국 2022년 바이든 정부하에 SEC는 의결권 자문사에 대한 규제를 철회했다.
기업들은 즉시 반발했다. 미국상공회의소,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BRT, 미국 내 200대 대기업 협의체) 등 미국 재계를 대변하는 단체들은 SEC가 규제를 철회하면서 미국 행정절차법을 위반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행정절차법에 따르면, 정부 기관이 규제를 변경하거나 철회할 때는 그 결정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하며, 정책 변경의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기업 단체들은 규제 철회에 대한 SEC의 근거가 불충분하고 정당성이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법원마다 판결 다르게 내려...
SEC 의결권 자문사 규제 소송, 대법원 갈 듯
이후 법적 공방은 복잡하게 흘러갔다. 2023년 6월 제5순회항소법원은 미국 제조업협회(NAM) 등 재계 단체가 SEC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SEC가 규제를 철회하면서 충분한 설명과 정당성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반면 11일(현지시각) 제6순회항소법원은 미국 상공회의소와 BRT 등이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SEC의 규제 철회가 합법적이라고 본 것이다. 제6순회항소법원은 의결권 자문사의 독립성과 효율성을 고려해 SEC가 관련 규제를 철회할 정당한 권한이 있으며, 철회하는 과정에서 합법적 절차를 밟았다고 판결했다.
블룸버그는 두 법원이 SEC의 의결권 자문사에 대한 규제 철회에 대해 상반된 판결을 내렸다며, 이 사안이 대법원까지 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이에 미 상공회의소 대변인은 “우리는 SEC의 불법적인 규제 철회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한 법적 방안을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BRT 측 또한 “(법원의) 이번 결정에 실망했으며 주주 투표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