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금융당국, DEI 규제 폐기…트럼프發 규제 완화 바람 확산
영국 금융당국이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관련 신규 규제안의 도입을 전격 중단했다. 로이터 통신이 12일(현지시간)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DEI 정책 폐지 행보와 궤를 같이하는 조치로 풀이된다.
영국 금융감독청(FCA)과 건전성감독청(PRA)은 이날 공동으로 금융산업 내 다양성과 포용성을 강화하기 위해 제안했던 새로운 규제안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FCA는 2023년 9월에 DEI와 관련한 공개 협의안을 발표했다. 당시 FCA는 24년 최종 규제안을 마련한 후 25년에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으나, 최종안 발표를 계속 미뤄온 것으로 확인된다. 금융당국은 협의안에서 금융회사의 DEI 증대가 내부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리스크 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여 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한 감독체계를 마련한다고 설명했다.
英 감독당국 "DEI 규제, 금융 경쟁력 약화시킬 수 있어”…신규 규제안 전격 중단
샘 우즈 PRA 최고경영자(CEO)는 "DEI에 대한 적절한 관심이 거버넌스와 리스크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여전히 믿지만, 새로운 요구사항은 규제 부담을 줄여 경쟁력을 지원하려는 노력과 충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은 금융서비스 산업에 대한 규제 부담을 완화하는 정책을 빠르게 추진 중이다. 금융산업은 영국 경제의 핵심 축으로, 정부는 특정 규제기관 해체와 은행의 자본금 요건 완화 등 일련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국제 법률사무소 오스본 클라크의 놀린 마테메라 파트너 변호사는 로이터에 "미국의 상황 변화와 영국의 금융당국이 최종 규정의 발표를 반복해서 연기한 점을 고려할 때, 오늘의 발표는 전혀 놀랍지 않다"며 "이것이 영국 금융서비스 분야에서 DEI의 종말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지켜봐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조사 중인 기업명 공개 기준 완화…금융업계 "상식의 승리"
영국 금융감독청(FCA)은 규제 위반 혐의를 받는 기업의 이름을 공개하는 기준에 '공익성'을 추가하려던 계획도 철회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12일(현지시각) 전했다.
'Name and Shame(조사 사항 대외공개)'은 법 위반 혐의로 조사 중인 개인 및 조직의 이름과 위반 사실을 공개하는 규제다. 이는 사명을 밝혀 망신을 준다는 뜻으로 사회적 비판과 평판 리스크를 통해 규제 준수를 유도하는 접근 방식이다. 이는 기업의 평판에 큰 리스크가 되는 만큼 ‘예외적 상황(Exceptional Circumstances)’에서만 기업명을 공개하도록 해왔다.
FCA는 지난해 2월 ‘공익성(Public interest)’ 기준을 추가해, 조사 초기 단계에서도 공익에 부합한다고 판단되면 기업 이름과 조사 내용을 보다 적극적으로 발표하는 안을 제시했다. 당시 영국 정부와 의회, 금융업계는 위법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조사 진행 단계에서 기업명을 공개하면, 추후 무죄로 결론이 나도 이미 발생한 평판 손상을 회복하기 어렵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제레미 헌트 영국 재무장관도 당시 FCA의 제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헌트 장관은 FT와의 인터뷰에서 “FCA가 조사 중인 기업의 사명을 더 많이 공개하려는 정책을 재검토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FCA는 강한 반대에 공익성 기준을 내려놓기로 결정했다. 니킬 라티 FCA CEO는 "규제 대상 기업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방식을 변경하는 데 상당한 우려가 남아 있어, 현재의 방식을 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계는 이 결정을 환영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영국 자산관리자협회(Pimfa)의 리즈 필드 CEO는 "오늘 제시된 접근 방식은 영국의 경쟁력과 경제 성장을 지원한다는 규제 목표와 일치하면서도 산업계의 요구를 고려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금융 자문사 옐로우테일 파이낸셜 플래닝의 설립자 데니스 홀은 “조사가 완료되기 전에 사명을 밝힘으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소비자 피해는 규제 당국이 달성하려고 생각했던 그 어떤 이익보다 크다”며 “(FCA 이번 결정은) 상식의 승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