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ESG 규제 주도…글로벌 기업들, EU 기준으로 전략 수립

2025-06-15     유인영 editor
사진=언스플래쉬

미국이 기후 대응 정책에서 후퇴하고 있는 사이, 유럽연합(EU)이 사실상 글로벌 기후 및 ESG 규제의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아시아 등지의 글로벌 기업들이 EU의 엄격한 지속가능성 기준에 맞춰 자발적으로 경영전략을 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12일(현지 시각) 블룸버그 통신은 “EU의 기후 및 ESG 규제가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서 사실상 세계 공통 경영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U ESG 규제, 글로벌 기업 경영기준으로 확산

독일의 지속가능성 데이터 기업 플랜A(Plan A)는 BMW, KFC, 클로에(Chloé) 등 고객사들이 EU 규제를 글로벌 경영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플랜A의 CEO인 루보밀라 조르다노바(Lubomila Jordanova)는 "지속가능성의 중심은 더 이상 미국이 아니다"라며, "일부 고객사들의 경우 미국과 아시아 계열사들에 EU 기준에 따라 지속가능성 데이터를 보고하도록 요구한다"고 말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기반 공유모빌리티 기업 라임(Lime)도 자발적으로 2030년 넷제로 목표를 설정하고, EU 지속가능성 보고 기준에 맞춰 ESG 데이터 공시를 준비 중이다. 라임 측은 “가장 높은 기준을 충족하면 나머지 지역 규제는 자연스럽게 달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EU의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 산림전용방지법(EUDR), 메탄 배출 규제 등은 역내 기업뿐 아니라 역외 기업도 적용 대상이 된다. 역내에서 일정 수준 이상 매출을 올리는 비EU 기업은 동일한 보고의무를 져야 하며, 공급망 기업조차 에너지 효율 등을 입증해야 한다. 이로 인해 많은 글로벌 기업이 EU 기준을 선제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또한 EU는 ESG 정보를 재무제표와 통합해 공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은 지속가능성 부서가 아닌 재무팀이 ESG 보고에 책임을 지도록 시스템을 바꾸고 있다. 이는 ESG 이슈를 경영의 핵심 리스크로 다루는 구조적 전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영국 친환경 인증기관 카본트러스트(Carbon Trust)는 “기업 내 모든 부서가 ESG를 단순한 부속사항이 아닌, 경영 핵심 요소로 인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규제가 바꾼다”…입법 전부터 대응에 착수하는 기업들

아직 도입되지 않은 규제조차 기업 전략을 선제적으로 바꾸고 있다. 패션 브랜드 프라이마크(Primark), 리버 아일랜드(River Island) 등은 EU가 추진 중인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에 대비해 의류의 내구성을 높이고, 재활용이 용이하도록 디자인 단계부터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미래를 대비하는 전략”이라 설명했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EU는 메탄 배출 규제을 추진 중이며, 이에 미국 천연가스 수출업체들은 누출 감지 시스템 구축과 제3자 인증 확보에 나섰다. 아직 제도화되지 않았지만, 유럽 수출을 위해 사전 이행에 착수한 것이다. 

EU는 과거 개인정보보호법(GDPR)에서 글로벌 규제 표준을 주도한 바 있으며, ESG와 기후 관련 규제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지속가능성 컨설팅사 에잇버사(Eight Versa)는 “대부분의 기업은 규제가 없으면 행동하지 않는다”며, 실효성 있는 ESG 확산에는 규제라는 강제력이 필수임을 강조했다.

EU 역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 저하 흐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최근 과도한 행정 절차가 혁신을 저해한다는 우려에 따라, EU는 기업 지속가능성 의무사항을 축소하고 시행을 연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들어 기후정책이 후퇴하면서, 상대적으로 유럽의 규제 주도권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