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기업 매출세·탄소세로 연 95조 확보…방위·산업 예산 확대에 활용

2025-07-17     송준호 editor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16일(현지시각) 2028~2034년 적용될 총 2조유로(약 3200조원) 규모의 예산안을 발표했다. 이는 현행 예산(1조2100억유로)보다 65% 이상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다.

집행위는 방위산업과 시장 경쟁력 강화를 중심으로 재정 우선순위를 재편하고, 초대형 기업 대상 매출세 등 신규 수입원 도입도 병행했다.

반면 환경예산은 플라스틱 폐기물세와 탄소국경세(CBAM) 등 관련 세수가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어, 정책 우선순위에서 후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예산안을 발표하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European Union

 

EU, 새 수입원 마련…매출세 신설하고 탄소세 수익 전환

집행위는 차기 7개년 예산안을 제안하며, 연간 585억유로(약 95조원)에 달하는 새로운 자체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을 공개했다. 

이번 제안은 총 2조유로 규모의 예산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 특히 연 매출이 1억유로(약 1616억원)를 초과하는 유럽 및 비유럽 기업에 유럽을 위한 기업 기여금(Corporate Resource for Europe·CORE)이라는 매출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핵심이다. 해당 매출세로 연간 약 68억유로(약 11조원)의 세수가 예측된다. 정부기관, 국제기구, 비영리단체 등은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외에도 EU 집행위는 비재활용 플라스틱 포장 폐기물에 대해 무게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해 연간 약 150억유로(약 24조원), 담배에 대한 소비세 확대를 통해 연간 112억유로(약 18조원), EU 배출권거래제의 수익 일부를 전환하여 연간 96억유로(약 16조원),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일부를 EU 예산에 반영해 연간 14억유로(약 2조원)를 확보할 계획이다. 이 신규 수입원은 매출세를 포함해 모두 다섯 가지로 구성됐다.

예산안에는 경제 및 산업 전환을 위한 4090억유로(약 660조8000억원) 규모의 유럽경쟁력기금 신설이 포함되며, 이 중 1310억유로(약 212조원)는 방위산업 및 우주분야에 직접 배정될 예정이다. 이는 현행보다 5배 이상 늘어난 액수다. 이외에는 ▲농업, 어업, 사회 정책 3020억유로(약 488조원) ▲지역개발 2180억유로(약 352조원) ▲글로벌 프로그램에 2000억유로(약 323조원)가 포함됐다. 집행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재건, 거버넌스 강화를 위해 1000억유로(약 161조원)를 예산 외 별도 항목으로 제안했다.

EU 회원국과 유럽의회 내 반응은 엇갈렸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엘코 하이넨 네덜란드 재무장관은 "EU는 우리의 번영에 중요하지만, 이번에 제안된 예산이 과도하다"고 비판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세계주의 관료들이 유럽의 돈을 우크라이나로 흘려보내려 한다"며, "우리 농민들이 자신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들고일어섰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유럽의회의 예산 협상 담당자인 지그프리드 무레산 의원은 "줄어든 예산으로는 늘어난 과제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우선순위에는 그에 맞는 충분한 재원이 필요하며, 기존 정책의 예산을 깎아서 충당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강조했다. 예산안은 27개 회원국의 만장일치와 유럽의회 승인을 거쳐야 최종 확정된다.

 

LIFE 프로그램 폐지로 환경단체 지원 불확실…녹색예산 실질 축소 비판

EU가 2조유로(약 3200조원)로 대폭 증액한 예산안의 구조 속에서 기존 환경예산 구조가 대폭 변경되며, 시민사회와 환경단체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이번 제안에는 EU의 대표적인 환경 전문기금인 LIFE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기후와 생물다양성 예산을 통합 관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집행위는 전체 예산의 35%에 해당하는 약 7000억유로(약 1100조원)를 기후·생물다양성 목표와 연계된 항목에 사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유랙티브는 예산 총액이 커 보일 수 있지만, 2021년부터 2027년까지의 현재 예산에서 기후에 6580억유로(약 1060조원), 생물다양성에 1130억유로(약 180조원)가 별도로 배정된 점을 고려하면 실제 기후·환경 분야에 쓰일 재원이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새 예산안은 유럽경쟁력기금뿐 아니라 경제, 농업, 안보 등 다양한 우선과제에 예산이 폭넓게 배분된다. 이에 따라 생물다양성에 대해 별도로 보장되던 재정 지원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유럽환경국(EEB), 세계자연기금(WWF), 국제자연보호협회(The Nature Conservancy) 등 주요 NGO들은 LIFE 프로그램의 통폐합이 단순한 예산 간소화가 아니라 실질적인 환경정책의 후퇴라고 비판했다.

EEB의 패트릭 텐 브링크 사무총장은 "LIFE 프로그램은 자연, 기후, 공중보건을 위한 목표 지출을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실현하는 수단인데, 이를 없애는 건 간소화가 아니라 훼손"이라며 "이 프로그램을 폐지하면 환경 NGO에 대한 주요 지원 자금이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약 1500만유로(약 242억원) 규모의 NGO 운영비가 LIFE를 통해 지원되고 있으며, 대체 자금을 어떤 기준과 방식으로 배정할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어 시민사회 참여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제자연보호협회의 안드라시 크롤롭 정책 책임자도 "생물다양성 재원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