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충격에 속수무책… ECB·연준, ‘먹거리발 인플레’ 대응 한계

2025-07-21     송준호 editor

바르셀로나 슈퍼컴퓨팅센터와 유럽중앙은행(ECB) 등으로 구성된 공동 연구진이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 날씨와 전 세계 식료품 가격 급등 사이의 직접적 연관성을 입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가디언, 블룸버그 등이 2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해당 연구는 국제과학학술지인 환경연구(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에 게재됐다.

ChatGPT 생성 이미지/임팩트온

 

극한 기상 현상, 발생 후 2개월 내 식료품 가격 급등

이 연구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18개국에서 발생한 16건의 기상현상을 분석한 결과, 가뭄·홍수·폭염 등이 발생한 지 1~2개월 만에 해당 지역 식료품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는 패턴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호주에서는 2022년 동부 지역 기록적 홍수로 양상추 가격이 개당 2.80호주달러(약 2500원)에서 12호주달러(약 1만원)로 300% 이상 급등했다. 이로 인해 글로벌 패스트푸드 체인 KFC는 햄버거에 양상추 대신 양배추를 사용하기도 했다고 가디언지는 전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전 세계 코코아의 60%를 생산하는 가나와 코트디부아르가 2023년 말과 2024년 초에 극심한 가뭄을 겪었다. 기온이 2024년 2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글로벌 코코아 가격은 3배 올랐다.

아시아 지역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확인됐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여름, 기록적인 폭염으로 배추 가격이 전년도 보다 70% 상승해 정부가 비축 물량을 시장에 방출했다. 일본은 8월 폭염 이후 9월 쌀값이 48% 올랐고, 인도에서는 5월 열파로 양파 가격이 89% 급등했다. 중국에서는 6월부터 9월 사이 채소 가격이 30% 이상 상승했다.

유럽과 미국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났다. 스페인 남부에서는 2022년과 2023년 지속적인 가뭄으로 올리브오일 가격이 50% 뛰었고,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주가 3년간 사상 최악의 가뭄을 겪으면서 2022년 11월 채소 가격이 이전 연도보다 80% 급등했다.

연구 책임자인 맥시밀리언 코츠 바르셀로나 슈퍼컴퓨팅센터 연구원은 "이런 기상 현상들은 역사적 관점에서 완전히 전례가 없는 것들로, 2020년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은행도 속수무책…미국 대선 결과까지 바꿔

연구는 이런 식료품 가격 급등이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억제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은 지난 6월 인플레이션율이 예상을 뛰어넘는 3.6%를 기록했는데,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지목됐다. 코츠 연구원은 "극한 기온이 전체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리는데, 식료품 가격 상승이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에너지기후정보센터(ECIU)의 추산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해 영국 가구당 2022~2023년 식료품비가 361파운드(약 65만원) 추가로 늘어났다. 공동 연구진인 싱크탱크 영국 푸드 파운데이션의 안나 테일러 사무총장은 "수입 식품에 크게 의존하는 영국 같은 나라들은 해외 기후 충격에 특히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식료품 가격 상승이 정치적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나왔다. 코츠 연구원은 "생활비가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AP통신이 지난 11월 12만명 이상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권자 10명 중 7명이 식료품 비용에 대해 매우 우려한다고 답했다. 식료품 가격에 매우 우려한다고 답한 유권자 중 약 60%가 트럼프를 지지한 반면, 해리스 지지율은 40%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연구는 저소득층에 미치는 건강 영향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테일러 사무총장은 "식료품 가격이 오르면 가난한 가정들은 영양가가 낮은 저렴한 음식으로 대체하게 되며, 이런 식단은 암, 당뇨병, 심장병 등과 연관돼 있다"고 경고했다.

연구진은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 증가하는 한 극한 날씨는 더욱 강해지고 빈번해질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온실가스 배출 감축과 지구 온난화 억제가 식료품 가격 인플레이션 위험을 줄이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