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운용사도 움찔…美SEC 규제에 기업 대화 확 줄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과 뱅가드가 올해 기업 경영진과의 미팅 횟수를 대폭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새 규제가 기후변화와 다양성 등 ESG 이슈 관련 논의를 제한하면서, 자산운용사와 기업 간 대화 창구가 좁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SEC가 마크 우예다 위원장 대행의 주도로 새로운 지침을 발표한 이후 블랙록과 뱅가드가 기업 경영진과의 접촉 방식을 크게 바꿨다고 로이터통신은 1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번 지침은 공시·의결권 자문사 역할 등 기업의 기후 관련 조치를 축소하려는 공화당의 최근 흐름과 맞물려 있다.
SEC 규제 강화에…블랙록·뱅가드, 기업과의 대화 급감
새 SEC 지침은 자산운용사가 경영진에 압력을 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나 투표 연계 행위를 할 경우, 복잡하고 비용이 큰 보고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블랙록과 뱅가드는 막대한 자산을 운용하며 기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함에도, 경영진과의 대화에서는 한층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두 회사는 합산 22조달러(약 2경9800조원)를 운용하며, 다수 기업에서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블랙록 스튜어드십 팀은 2024년 7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전 세계 기업과 2584회 미팅을 진행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28% 감소한 수치다. 뱅가드는 올해 4월부터 6월까지 356개 기업과 만났으며, 이는 2024년 같은 기간 640곳 대비 44% 줄어든 수준이다.
주주총회 대응 자문사 소달리앤코의 수석 매니징 디렉터 폴 슐만은 “이번 감소는 100% SEC 지침 때문”이라며, “자산운용사들이 의결권 행사 계획이나 입장을 드러내는 것을 더욱 꺼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자산운용사, 주주권 행사에 보수적 태도 강화…의결권 개입 자제
블랙록과 뱅가드는 이미 지난 몇 년간 사회·기후 관련 주주제안에 반대하며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올해도 이러한 기조가 이어졌다.
블랙록은 올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기업 경영진의 위험 관리와 기회 포착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대화를 청취했으며, 필요시 주주총회 표결을 통해 우려를 전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이사회·경영진과의 대화를 통해 먼저 문제를 제기한다”고 했던 적극적인 어조와 대조된다.
펜실베이니아에 본사를 둔 뱅가드 역시 “기업과의 대화를 의결권에 개입할 용도로 활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뱅가드는 올해 기업 접촉 감소에 대해 구체적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미국 기업지배구조협회(Society for Corporate Governance)의 폴 워싱턴 CEO는 “새 지침으로 기업들이 주요 투자자들의 생각을 파악하기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협회 회원사 조사에서도 4분의 1 이상이 올해 투자자와의 교류가 더 어려워졌다고 응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