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이어 포드·르노 등 5개사 피소…英사법사상 최대 집단소송

2025-10-15     김환이 editor

영국 런던 고등법원에서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을 상대로 한 대규모 배출가스 조작 집단소송이 시작됐다.

로이터통신은 13일(현지시각) 이번 소송이 160만명 이상이 참여한 최대 규모의 집단소송으로, 제조사들이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시험 조건에서만 배출가스를 줄였다는 혐의를 두고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소송은 총 30억파운드(약 5조7000억원) 이상 규모로 추산되며, 손해배상액은 최대 60억파운드(약 11조42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020년 폭스바겐(Volkswagen)이 배상한 1억9300만파운드(약 3672억원) 규모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사진=픽사베이

 

원고 측, "제조사 고의로 불법 행위 저질러"

이번 소송은 2015년 폭스바겐(Volkswagen)의 디젤게이트 사태 이후 10년 만에 벌어지는 후속 공방으로,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 포드(Ford), 닛산(Nissan), 르노(Renault), 푸조(Peugeot), 시트로엥(Citroen) 등 5개 주요 완성차 업체가 피고로 지목됐다.

원고 측 변호사 토머스 드라 메어는 재판에서 “자동차업계는 법을 따르기보다 속임수를 택했다”며 “오염 저감보다 고객 편의, 즉 더 많은 차량 판매를 더 우선시했다”고 주장했다.

원고들은 2012~2017년 사이 생산된 디젤 차량에 불법 배출가스 조작 장치가 장착됐다고 주장했다. 이 장치는 차량이 시험 중임을 감지해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을 법적 기준 이하로 유지하지만, 실제 도로 주행 시에는 배출량이 최대 12배까지 증가하도록 설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원고 측은 이러한 조작이 대기오염을 악화시키고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쳤으며, 제조사들이 고의로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서면 진술에서 드라 메어 변호인은 “업계의 의식적 선택이 결국 공중보건을 해쳤다”며 에너지·청정공기연구센터(Centre for Research on Energy and Clean Air) 보고서를 인용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24년까지 영국과 유럽에서 디젤 차량의 과도한 질소산화물(NOx)의 배출로 조기 사망한 사람이 12만4000명, 천식을 새로 앓게 된 어린이가 9만8000명에 달한다.

 

제조사 “기술적 조정일 뿐 불법 아냐” 전면 반박

제조사들은 “원고 주장에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다”며 전면 반박했다.

이들은 차량의 배출가스 제어 시스템이 주행 조건에 따라 작동 방식이 달라질 수 있으며, 이는 엔진 보호와 안전 확보를 위한 정당한 기술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자동차 엔진의 배출가스 제어 시스템은 온도, 고도, 습도 등 주행 환경에 따라 성능이 달라질 수 있으며, 이런 조정이 모두 불법으로 간주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르노 측 변호인 알렉산더 안텔미는 “원고 측이 문제 삼는 기능은 사실상 잘 설계된 디젤 엔진의 필수 요소”라고 반박했다. 포드 측 변호인 닐 무디도 “산업 전반이 공모했다는 전제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며 “그런 음모론은 논할 가치조차 없다”고 일축했다.

메르세데스는 공식 성명을 통해 “시험에서 사용된 메커니즘은 기술적·법적으로 모두 정당한 절차에 기반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르노, 닛삿, 스텔란티스 역시 “해당 차량들은 판매 당시 모든 규제를 최우선으로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시험 땐 감추고, 주행 땐 방출”… 최대 11조원 배상 가능성

원고들은 이에 맞서, 제조사들이 시험 조건을 인식해 NOx 배출을 인위적으로 낮추고 실제 주행 시에는 저감장치를 비활성화했다고 재반박했다. 이 장치는 차량이 공식 테스트 중임을 감지해 규제 기준에 맞게 작동하지만, 일반 도로에서는 엔진 성능 향상을 위해 저감 기능이 꺼지는 방식이다.

원고 측은 “실제 도로 주행 시 차량이 배출하는 NOx 수치가 시험 조건보다 훨씬 높았다”며, “소비자와 규제 당국이 동시에 기만당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우선 5개 제조사가 생산한 20대의 디젤 차량을 표본으로 선정해, 해당 차량에 불법 장치가 탑재됐는지를 판단할 예정이다. 불법 사용으로 판단될 경우, 손해배상 규모는 최대 60억파운드(약 11조4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은 내년 말까지 이어질 예정이며, 최종 판결은 2026년 중반에 나올 전망이다. 이번 판결은 스텔란티스 산하 복스홀·오펠, BMW 등 나머지 제조사 9곳에 대한 추가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