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탄소배출권 구매 중단... 웹사이트에서도 '탄소 중립' 삭제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구찌가 탄소배출권 구매를 중단하고 웹사이트에서도 ‘탄소 중립’ 문구를 삭제했다고 지난 20일(현지시각) 환경에너지리더(Environment+Energy Leader)가 보도했다. 구찌는 2019년 웹사이트에 ‘탄소 중립’을 선언한 바 있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 배출 규제가 심화되면서 자발적 탄소시장(VCM)도 가파르게 성장했다. 자발적 탄소시장이란 국가가 직접 온실가스 감축 여부를 검증하는 '규제 탄소시장'과 달리 기업이나 비영리단체 등 민간이 탄소 감축 사업을 실행하고, 여기서 발생한 탄소 상쇄 크레딧(Carbon offset credits)을 거래하는 시장을 말한다. 이러한 탄소 상쇄 방식을 통한 탄소 감축은 생성된 탄소 크레딧의 정확한 측정이 어려워 그린 워싱이 쉽다는 지적이 있다.
지난 1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세계 최대 탄소 감축 인증기관 베라(Verra)가 수행한 열대우림 보존 프로젝트(REDD+)를 분석한 결과, 전체 탄소 감축 프로젝트 중 90% 이상이 환경 보호 효과가 없는 유령 크레딧(Phantom credits)이었다고 보도했다. 베라는 전 세계 자발적 탄소배출권의 4분 3을 인증했으며, 그중 40%가 열대우림 보존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발급됐다.
세계 최대 탄소 감축 인증기관 베라, 탄소 감축 효과 과장 논란
구찌가 탄소 크레딧을 구매한 업체는 세계 최대 탄소 크레딧 판매업체인 사우스폴이다. 사우스폴의 가장 큰 사업은 짐바브웨에 위치한 카리바 열대우림 보호 프로젝트다. 블룸버그의 보고서에 따르면, 카리바 프로젝트는 탄소 감축 효과가 크게 과장됐으며, 투자금 1억9000달러(약 2459억원) 대부분이 지역사회가 아닌 사우스폴과 그 파트너사인 카본 그린 인베스트먼트(CGI, Carbon Green Investments)로 돌아갔다. 사우스폴은 블룸버그 보도를 반박하며, "카본 그린 인베스트먼트는 탄소 크레딧이 판매되지 않은 기간에도 열대우림 보존 프로젝트를 유지시킨 핵심 동력이며, 지역사회와 카본 그린 인베스트먼트가 탄소 크레딧 판매 수익을 함께 받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영국과 유럽 일대에서 그린워싱 광고에 대한 압력이 강해진 것이 구찌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영국 광고심의위원회(ASA)는 기업들이 기후에 완벽하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탄소 중립’, ‘넷제로’ 등과 같은 광고 문구 사용을 금지했다. 스웨덴 또한 유럽의 주요 유제품 기업인 알라(Arla)의 ‘넷제로 기후 발자국’이라는 광고 문구 사용을 금지했다. 스웨덴 법원은 소비자들에게 해당 제품이 기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오해의 소지를 준다고 판단했다.
구찌는 웹사이트에서 '탄소 중립' 문구를 삭제하고 사우스폴과의 파트너십도 중단했다.
한편, 탄소 상쇄 크레딧에 대한 효용성 논란은 자발적 탄소시장의 거래량 감소로 이어졌다. 세계 최대 탄소 크레딧 거래소 중 하나인 엑스팬시브(Xpansiv)에 따르면, 2023년 1분기에 거래된 삼림 프로젝트 기반 탄소배출권 거래량은 900만톤으로 지난 2022년 1분기의 4700만톤에 비해 대폭 감소했다.
비영리단체 열대우림그룹(Rainforest group)의 편집자 켄 실버스타인은 “자발적 탄소시장은 열대우림 국가들의 생존 자금 일부를 조달할 수 있다”며 탄소시장의 투명성 제고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