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美 그린잡, 낮은 산업 전환율과 전문 인력 부족 지적
세계 각국이 탄소중립 경제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이 시장을 이끌어갈 녹색 일자리를 의미하는 그린잡(Green Job)이 계속해서 늘고 있다. 글로벌 비영리환경단체인 클라이밋 파워는 지난 2월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발표된 후 미국에 청정에너지 관련 일자리가 10만 개 창출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클라이밋파워가 발표했던, 청정에너지 일자리 수는 지난 7월 17만 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각) IRA 1주년 기념사에서 “이 법안은 이미 17만 개의 청정에너지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향후 10년 안에 약 15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듦과 동시에 국가의 탄소배출량을 크게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말처럼 그린잡은 탄소중립 경제로의 여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그 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화석 연료 기업의 종사자가 해당 직종으로 이직하는 전환율과 그린잡 종사자의 직업 만족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그린잡 전환, 학력 낮고 연령 높을수록 어려워
‘근로자와 녹색 에너지 전환’이라는 연구에 따르면, 기존의 화석연료 산업의 일자리가 그린잡으로 대체되고 있지만, 기존 종사자는 해당 산업으로의 업종 전환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의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 경제학 부교수인 마크 커티스와 펜실베니아 대학교 경제학 조교수인 박지성이 이끄는 대학 연구팀은 노동시장 시장 연구기업 라이트 캐스트와 협력해 미국 근로자 1억 3000만 명의 일자리 변화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탄소 집약적 산업의 종사자가 친환경 일자리로 전환하는 비율이 최근 2005년에 비교하여 10배 증가했다. 전환 비율이 급격히 늘었지만, 2020년 이후로 화석연료 기업을 떠난 근로자는 같은 산업군에서 이직하는 게 대다수였으며 친환경 일자리로 이직하는 경우는 전체의 1%도 되지 않았다.
그린잡으로의 전환은 젊고 고학력인 근로자가 첫 직장으로 선택하는 비중이 높았다. 연령이 55세에서 64세인 근로자가 18세에서 34세인 근로자보다 그린잡으로 이직할 확률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그린잡은 25%가 첫 직장으로 확인된다.
커티스 교수는 "그린잡이 계속 증가하므로, 우리는 탄소 집약적 산업에 종사하던 근로자가 그린잡으로 이직하는 숫자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해야 하지만, 학위가 없거나 고령의 근로자들은 그대로 해당 직종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분석했다.
전문 인력 퇴사자 증가…업무량 늘었지만 보상 적어
그린잡은 탄소중립 시대를 상징하는 일자리이지만, 그린잡이 곧 ‘좋은 일자리’를 보증하지는 않는 것으로 확인된다. 영국의 노동조합 프로스펙트(Prospect)는 기후 및 환경 부문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여 500건 이상의 응답을 받았다고 전했다.
설문에 따르면, 그린잡은 최근 전문 인력의 부족으로 업무량이 급격히 늘었다. 응답자 10명 중 4명은 지난 1년 동안 해당 직종의 전문 인력이 감소했다고 답했으며, 35%는 업무량이 크게 늘었다고 답했다.
한 응답자는 “조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가장 낮은 급여를 받고 있다”며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달 정기적으로 야근을 해야 하다 보니 일과 삶의 균형이 좋지 않고 정신과 육체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이 일이 만들어 내는 가치를 정말 좋아하지만,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거나 관심이 없는 기업으로 이직하면 지금보다 4배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라며 “이 일을 할 사람이 없으면 탄소중립은 달성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응답자의 36%는 전문지식을 갖추지 못한 직원에게 중요한 업무를 할당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그린잡 특성상 고학력 비중이 높음에도 충분한 급여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이 지적됐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0%는 박사 학위, 21%가 석사학위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전체 응답자의 36%의 연봉이 3만파운드(약 5125만원)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해당 직군에서 남성과 여성의 평균 소득도 차이가 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성 근로자의 평균 소득은 2만5000파운드(약 4274만원)에서 3만파운드인데, 남성 근로자는 3만파운드에서 3만5000파운드(약 5983만원)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린잡 종사자들은 넷제로를 달성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부족한 정부 정책을 꼽았다. 응답자의 37%가 부족한 정부 지원 정책을 지적했다. 한 응답자는 “정부가 그린잡 종사자들과 함께 넷제로를 이루려는 의지가 부족하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사기가 떨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스펙트의 수석 사무차장인 수 펀스는 “그린잡 종사자들은 전문 인력들이 축소되면서 점점 지쳐가고 있다”며 “정부는 그린잡의 잠재력에 관해 얘기하고 있지만, 이를 선망의 직업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자금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