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록, 기후 스튜어드십 가이드라인 발간…ESG 주주행동주의 방향은

2024-07-12     송준호 editor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지난 8일(현지시각) 기후와 탈탄소화 스튜어드십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자산운용사가 포트폴리오를 저탄소로 전환하기 위해 중요한 기업들을 선별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주주 관여와 의결권 정책을 담았다. 

블랙록은 최근 1500억달러(약 207조원) 규모의 펀드에 새로운 탄소정책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고 지난 2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한 바 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해당 탄소정책을 포함하고 있으며, 블랙록 투자 연구소(BIS)의 인사이트가 담겨 다른 자산운용사들도 저탄소 전환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블랙록은 밝혔다.

블랙록은 지난 4월 발간한 ‘전환 시나리오 보고서’에서 2030년대 중반까지 에너지 전환에 매년 4조달러(약 5513조원)가 필요하기에, 이에 투입되는 공공 및 민간 자본이 크게 확대돼야 한다며, 전환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블랙록이 발표한 기후와 탈탄소 스튜어드십 가이드라인/블랙록

 

블랙록, 저탄소 전환 위해 적극적 ESG 주주행동 강조

가이드라인은 다섯 가지 원칙을 기반으로 탈탄소화 관리 지침을 설계하도록 설명하고 있다. 대원칙은 저탄소 전환 투자가 중요하며,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에 중요한 부문과 기업을 선별하여 이에 투자하라는 게 핵심이다. 

각 산업과 시장은 정부 정책과 규제, 소비자 수요, 기술 타당성 등의 여러 요소에서 차이가 있으므로 탈탄소화의 속도도 다를 수밖에 없기에 이에 맞는 정보를 기업에 요구해야 하며, 그 정보를 기반으로 주주의 권리를 행사하라는 게 골자다. 한 마디로 ESG 주주 행동주의를 적극적으로 수행하라는 의미다.

블랙록은 기업의 저탄소 전환 전략을 달성하기 위해 특히 경영진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보고, 이에 관해 ▲세이온클라이밋(Say on Climate) ▲기후 관련 주주 제안 ▲임원 보상 ▲기후 및 전환 관련 감사 ▲합병・인수・자산 매각 등에 나타난 기업의 전략과 행동을 주주 투표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겠다고 설명했다. 세이온클라이밋은 주주총회에서 회사의 기후 관련 정보에 대해 주주의 의견을 수렴하거나 심의를 받는 절차를 말한다. 이 제도는 주로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NH-아문디자산운용이 최초로 35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세이온 클라이밋을 수행했다. 

블랙록은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는 기준들을 만족하는 83개의 펀드를 유럽에서 운용 중이다. 해당 목록은 가이드라인과 함께 공개했다. 현재는 유럽에서만 이 지침을 적용하여 투자하고 있지만, 미국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블랙록과 뱅가드, 자산운용사 ESG 의지 예전만 못해…E(환경)에 집중될 전망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가 기후 관련 투자와 주주행동을 활발히 수행하고 있는 듯하지만, 일각에서는 “예전만 못하다”라는 평가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5일(현지시각) 미국 기업의 환경과 사회적 문제에 대한 주주들의 지지가 2년 연속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데이터 제공업체 ISS-코퍼레이트에 따르면, 6월에 기업 연례 주총 시즌이 끝나고 러셀 3000 기업의 환경 및 사회적 주주 제안에 대한 중간 지지율은 각각 21%와 18%로 나타났다. 이는 2021년에 자산운용사들이 보여줬던 ESG 주주제안에 대한 지지율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ISS는 설명했다. 

FT는 블랙록과 뱅가드가 2021년 이후로 ESG 관련 주주제안에 찬성표를 던진 비율이 줄었지만, 그래도 블랙록이 뱅가드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증명하듯 두 자산운용사가 이번 주총에 올라온 ESG 관련 주주제안에서 다른 입장을 취한 사례들이 관측된다.

블랙록은 미국 플로리다주의 감귤 생산업체인 알리코가 이사회의 다양성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사 세 명의 임명에 반대표를 던졌다. 뱅가드는 찬성표를 던졌다.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잭인더박스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목표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보고하도록 요구하는 주주제안을 받았고, 블랙록은 역시 찬성표를 던졌다. 뱅가드는 반대에 투표했다. 두 주주제안은 블랙록의 바람과는 다르게 모두 무산됐다.

최근 엑손모빌이 기후 관련 주주제안을 한 행동주의 투자자를 고소하여 노르웨이 국부펀드를 비롯한 주요 연기금들이 엑손모빌의 이사 임명에 반대표를 던져 화제가 된 사건이 있었는데, 뱅가드는 이 건에 대해서도 찬성표를 행사했다. 이사들은 지난 5월 큰 문제 없이 재임명됐다. 

환경 스튜어드십에 전념한다는 알리코/알리코 홈페이지

컨설팅 회사인 사운드보드 거버넌스의 사장인 더글러스 치아는 “(ESG 주주제안에 대한) 지지율 하락은 블랙록과 뱅가드가 ESG 관련 주주행동주의를 적극적으로 수행했던 때와 비교해서 다소 수동적인 태도로 후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진보적인 미국 캘리포니아와 뉴욕의 연기금과 노르웨이 석유기금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의 ‘기업지배구조 연구 이니셔티브’ 데이비드 라커 소장은 “(자산운용사들이) 다양성과 같은 사회적인 우려보다 기후 문제에만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