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공시 26년 적용, IFRS 도입 경험 반추해야…국회 토론회, 기후공시 압박

2024-07-23     송준호 editor

“정부가 지속가능성 도입 시점과 범위를 정해주지 않으니, 기업은 수능 시험 범위와 시험일이 정해지지 않아 무엇을 얼마나 공부할지 모르는 고3 수험생처럼 답답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는 지난 22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개최된 ‘국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기후 공시 방향 제안’ 토론회에 참석한 한 대기업 ESG 담당자가 한 말이다. 행사는 경제개혁연구소와 그린피스, 녹색전환연구소,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김성환, 민병덕, 이소영 국회의원 등과 함께 주최했다. 

그는 “금융위원회가 2026년 이후로 공시를 시작하자고 발표했었는데, 26년 공시는 2025년의 데이터를 1월부터 12월까지 모아서 공개해야 한다”며 “25년 초에 최종안이 나온다면, 일단 26년 공시는 사실상 어려운 게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기업 실무자들이 ESG 공시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시그널을 요구하는 가운데, 행사에 참석한 패널과 발제자들도 지속가능성 공시 도입 일정을 조속한 시일 내에 발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기후공시 방향 제안 토론회가 7월 2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임팩트온

 

국민연금, 스코프3도 포함해야…연간 다배출 기업도 공시 적용

투자자들도 정부가 지속가능성 공시의 실행 방안을 내고 빠르게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투자자 측 패널들은 각 기준에 대한 의견들도 덧붙였다. 

이동섭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수탁자책임실 실장은 “투자자가 기업가치 향상의 관점에서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하는 것은 국민연금의 책임 투자 방향성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이동섭 실장은 “규모, 산업적 특성, 산업 현황 등을 고려하여 의무 대상 기관을 점진적으로 확대해야 하며, 스코프3와 같이 투자자에게 필요한 정보는 배출량 산정 방식 등을 구체화하고 당장 공시할 수 있는 기업과 아닌 곳을 구분하여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안이 제시한 공시 대상 기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최용환 NH아문디자산운용 ESG리서치팀 팀장은 "공시 사각지대에 있는 기업들의 기후 리스크가 높은 경향이 있다”며 “초안은 최초 공시 대상의 선정 기준을 자산 2조원 이상으로 했지만, 연간 다배출 기업도 공시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 팀장은 “기후공시와 관련해 지나친 우려는 지양하고 법제화를 통해 재무공시와 같이 분기별로 진행하거나 최소 반기(Half-Year) 공시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토론은 정준혁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좌장을 맡고, 이동섭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수탁자책임실 실장, 김민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 배희은 AIGCC 이사, 최용환 NH아문디 자산운용 팀장, 박태성 국가인권위원회 사무관, 이웅희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 부위원장, 최치연 금융위원회 공정시장과 과장이 패널로 참석했다./임팩트온

공시가 기업 경쟁력을 제고하고 더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는 데 꼭 필요하다는 의견들도 제시됐다. 

배희은 아시아 기후변화 투자자 그룹(Asia Investor Group on Climate Change, AIGCC) 이사는 “지난 5년간 한전, 포스코, SK이노베이션에 주주관여 활동을 했는데, 세 기업과 글로벌 150개 기업, 아시아 33개 기업의 공시 수준을 비교해 보니 우리나라 기업들도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며 “공시를 빠르게 진행하는 게 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AIGCC는 27조달러(약 4경원)를 운용하는 70여개 회원사로 구성되어 있다. 

김민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 대표는 “포스코가 공시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분석해 보니, 특히 2030년까지의 목표와 관련하여 일관성과 구체성에서 문제되는 사항들이 발견됐다”며 “이는 아직 자발적 공시에 그쳐 발생하는 문제로 투자자가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법적 공시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빅웨이브는 포스코를 대상으로 개인 투자자들의 의견을 모아 주주 행동주의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2026년 기후 공시 시작해야…강력한 정부 의지로 IFRS 도입한 경험 반추해야

발제자들은 2026년에는 기후공시 의무화가 시작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신지윤 그린피스 전문위원은 “글로벌 정합성을 고려할 때 2026년에는 기후공시 의무화가 시작돼야 한다. 금융위가 공시 로드맵 확정을 미룸에 따라 의무화 도입 시점도 밀리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신 전문위원은 구체적 방안으로 ▲자산 2조원 이상 상장기업을 시작으로 의무화 대상의 단계적 확산 ▲사업보고서를 통한 공시 ▲스코프 3 배출량 보고 포함 등을 꼽았다. 그는 "지속가능성 관련 공시 의무화를 명문화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선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변호사는 “기후 관련 정보 공개는 기업의 기후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이자 글로벌 스탠더드”라며 "수출이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한국의 무역 의존도는 2019년 기준 68.8%에 달하므로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 2026년에 기후 공시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가 발표한 국가별 공시기준 현황 자료. 지현영 변호사는  ▲시행일 ▲보고 기업(대상) ▲보고 위치 ▲보고 시기 ▲스코프3 배출량이 국내에서 아직 미정인 상태로 남아있다고 설명했다./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

공시가 빠르게 정착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빠른 결단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 변호사는 “주요국에서 기후공시 의무화가 표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계속 말 바꾸기와 입장 숨기기, 계획 지연을 이어가고 있다”며 정부의 부족한 대응을 꼬집었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수석연구원은 "현재 벌어지는 지속가능성 공시에 대한 일부 반대는 이전 국내 IFRS 도입 과정에서도 반복되었던 양상”이라며, “당시 정부의 기조가 IFRS 안착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에 비추어 볼 때, 지속가능성 공시에 대한 정부의 일관적인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IFRS는 국제회계기준위원회에서 마련해 공표하는 회계기준이다. 정부는 이를 도입하기 위해 2006년 추진단을 만들고 2007년에 로드맵 냈으며 2008년 상장사 전부를 대상으로 의무화했다. 기업들은 유예 의견을 냈지만 정부는 거절한 바 있다.

이웅희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 부위원장은 “공시 기준에 대한 170개 기업들의 피드백을 받고 있는데 공시 시작 시점을 26년부터 28년까지 선택한 기업들이 약 78%에 달한다”라며 “기업들은 공시를 미루기보다는 정부의 인프라 정책 지원과 약간의 준비 시간을 원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 측 패널은 이에 명확한 답을 주지는 못했다. 최치연 금융위원회 공정시장과 과장은 “정부는 지난 10월 2026년 이후로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인 도입 시기는 기업 준비기간과 상황들을 고려해서 검토하겠다”며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