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공시제도 관련 행사가 ‘또’ 개최됐다. 이번에는 무려 4대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상장사협의회가 주최한 행사였지만 소문난 잔치에는 역시 먹을 게 없었다.

경제계는 “ESG 의무공시가 주는 기업 부담이 크니 2029년 이후로 미뤄야 한다”가 핵심 주장이었고, 패널로 참석한 전문가들은 “글로벌 규제 시점이 정해졌기에 2029년 이후는 너무 늦으므로 기준을 유연화하거나 업종별 기준을 마련해서 빠르게 시작해야 한다”라는 의견이다.

ESG 전문 미디어의 기자로 올해도 공시 행사만 수차례 다녀왔는데, 논의는 아직도 “공시를 언제 시작할 거냐?”에서 한 발짝도 더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는 뉴스가 없으니 공시 기사를 쓰기에 민망한 마음도 든다.

올해도 ESG공시 관련 행사를 여러 차례 다녔지만, 논의는 여전히 공시 시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임팩트온

 

ESG 공시, 28년인가 29년인가...기업들도 마냥 미루자는 입장 아냐

경제계 인사인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행사에서 “회사별로 준비 수준이 다르기에, 시행 착오를 줄이려면 대다수 기업이 준비되는 시점에 ESG 공시의무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시 기준 중 기업들에게 부담이 되는 항목에는 유예기간을 부여하는 등 완화가 필요하고 ESG 공시를 수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일준 상근부회장이 말한 ‘대다수 기업이 준비되는 시점’은 언제일까. 한국경제인협회는 21일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공개 초안에 대한 경제계 의견’을 한국회계기준원에 제출했다.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의 상당수가 5년 이상 준비기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근거로는 한경협이 지난 3월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 103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2029년 이후로 도입해야 한다는 기업이 27.2%로 가장 많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2029년이다. 

한국경제인협회를 비롯한 4개 경제단체는 지난 17일 자산 2조원 이상 125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국내 ESG 공시제도 관련 기업의견’을 조사한 결과 2028년 이후가 58.4%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같은 내용의 설문조사가 반복되고 있는데, 이번 설문은 또 시점이 2029년에서 2028년으로 조금 조정됐다. 

보도자료는 2028년 이후를 강조해서 냈으나, 사실 2026년과 27년도 더하면 41.6%로 적지 않은 수의 기업들이 이렇게 응답했다. 설문조사만 봐도 기업들이 마냥 미루자는 것은 또 아닌 듯하다. 

4개 경제단체가 6월 17일 발표한 ESG 공시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대한상공회의소

전문가 패널들은 2029년은 너무 늦다는 의견을 반복했다. 패널로 참석한 김동수 김앤장 ESG 경영연구소장은 “공시 의무화 시점이 2028년이냐 2029년이냐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데, 국내 대기업이 유럽에서 2028년부터 공시를 해야하는 일정을 고려하면 2028년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화우의 김정남 그룹장도 “‘26년이나 27년, 28년에 의무화해도 괜찮다는 기업이 많고, EU의 ESG공시에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기에 미루는 게 최선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IBK 기업은행의 유인식 ESG경영부장은 “다른 나라가 2029년보다 앞서 도입하기에 국제적 정합성을 고려한다면 한국도 이보다 빨리 공시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전에 개최된 공시 행사들도 결국 내용은 똑같았다. 금융위원회가 공시 시점에 대한 결론을 내주지 않으니, 경제계도 전문가도 같은 말만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듯 하다.

 

ESG담당자들 “도돌이표 공시 행사, 이제는 안간다”...금융위가 마침표를 찍어야

ESG 실무 담당자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해 수화기를 들었다. 공시 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해 온 실무자들도 최근에는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대기업 ESG 담당자 A씨는 “이번에는 가지 않았다”며 “6월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ESG평가 대응으로 가장 바쁜 시기이기도 하고 올해 개최된 여러 행사들에 가봤지만 새로운 내용이 없었기에 기대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중견기업 ESG 담당자 B씨는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았고, 다녀온 분들에게 전해 들었는데 역시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고 했다”라며 “실무자에게 도움이 되는 소식은 결론 없이 끝나 무의미한 시점 논의가 아니라, 정부의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B씨의 말처럼 한없이 반복되어 온 혼란은 정부의 결정이 나와야 끝날 듯하다. 

금융업계 관계자 C씨는 “공시 시점을 두고 도돌이표가 무한히 그려지는 이 상황을 끝내줄 곳은 금융위원회”라고 강조했다. 그는 “KSSB에서 이해관계자 의견수렴을 상당 부분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수렴한 의견을 바탕으로 정부는 공시 시점을 포함한 로드맵을 하루빨리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 D씨는 “기업이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는 등 경기가 어렵기에 ESG 경영이 꽃을 피우기도 전에 기업 내부에서는 ESG를 왜 하느냐는 회의론이 나오는 상황”이라며 “업계 최고의 전문가와 기관들이 공개 토론 자리에 모여서 공시 얘기만 끝없이 하고 있는 건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공시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ESG에는 공시만 있는 게 아니다. 정부가 명확한 정책 시그널을 제시해서 불필요한 공시 논쟁을 끝내고 기업 경쟁력에 필요한 실질적인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이제는 결단이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송준호 임팩트온 취재팀장
                               송준호 임팩트온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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